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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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책의 개정판으로 나온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 하고 골라든 책인데, 말의 무거움을 새삼 느끼게 된 책이다.
책을 다 읽었구나, 하고 다음 날 시인은 타계하셨다.

아주 친한 누군가의 일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뉴스에 걸리는 부고와는 또 다른 이상한 슬픔이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후의 독후감은 쉽게 써지지가 않았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로운, 이 나비같은 시간들 (서문 중) 이라고 한 시인의 말이 남았다.
멀리 타국에서 투병하며 시인은 불안하고 초조했겠구나 생각하니 그것도 또 먹먹하다.

뭐라뭐라 끄적인 노트의 글들을 여기에 옮길 여력없이, 또 한분 떠나시는 길을 그저 바라볼 뿐 이다.

용하게도 녀석들은 언제나 리본을 달고 나에게로 왔다. 껑충거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나보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리본도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 53, 가소로운 욕심

<시경>을 읽다가 잠이 든 밤에 꿈을 꾼다.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으로 가는데 다리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 도통 움직일 수가 없다. 버둥거리다가 잠이 깬다. 깨어나면 어둡고 조용하다.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섰던가. 어디 그 사무친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길을 나서서는 오래 집으로 가지 않는가. 그리고 여전히 물 한가운데에 있는가...... 나의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행인가? - 60, 어두움, 사무침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극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 131,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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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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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스터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역사 있는 서점이 있다는 것, 그 서점을 구심점으로 미스터리 단편집을 기획할 수 있다 라는 점이 무척 멋있는 일이다.

서점 주인이자 편집자인 오토 펜즐러와 서점이 단편에 꼭 등장하게끔 설정되어 있어서 가본적도, 만난적도 없는 이 서점과 사장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초반 집중이 어려운 것은 단편집에서 늘 겪는 일이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와 미스터리의 결합이라는 점이 매우 도움이 된다.

미스터리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들도 서점이 주 무대인 만큼 책 매니아인 경우가 많았고, 그들이 범죄자이든, 의뢰인이든, 주변인이든 꽤나 동지의식이 느껴져 즐겁게 읽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지어진 설정은 딱히 취향이 아니었고, 막상 시즌이 되면 더욱 읽지 않게 되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예상을 하며 미리 읽은 셈이다.

인간은 시시각각 죽고 벌레들이 그들을 먹어 치운다. 그러나 사랑 때문은 아니다. - 243, 고양이 요정 스피릿 중

2018.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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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 ㅣ 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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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아웃 시리즈. 최은영 작가의 <몫>.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아는척 잘난척, 뭐라도 되는척 하지 않는 작가이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딱 떨어지게 어울리는 단편이다.

주요 3 인물은 매우 비어있는 캐릭터라고 느껴졌다. 부실하다는 의미가 아닌 의도적으로 색채를 지운 듯 생략되있는 부분이 그랬다.
사회가 돌아보기 불편해 하는 것들에 대해 분노라는 감정이 동력이 되어 삶을 던지는 여성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는 하지만, 지켜보는 일 자체가 버겁다.
생략된 그들의 삶의 틈새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그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물 한 살의 당신은 화가 났다. 여자가 맞아서라도 가족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가족주의에, 살려달라고 공권력의 보호를 청했던 수많은 여자들이 결국 살해당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당신은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깨어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배출될 수 없는 독처럼 하루하루 당신 몸에 쌓였다. 당신은 당신의 분노가 무엇하나 바꾸지 못하고, 그저 당신 자신의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때, 심지어 당신 자신을 대할 때 당신은 예전보다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됐다. 짜증을 쉽게 냈고, 작은 일에도 화를 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서 자기 분노 속에 갇혔을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다. 그건 당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 본문 중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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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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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la casa de papel, 종이로 지은집?인가보다.

책을 열정적으로 읽고, 분석하고, 모으고, 또 찾아다니는 그야말로 책 덕후인데, 어느 순간 적정선을 넘어 집착이 되어버리는 이야기.
소유한다라는 것의 가장 부정적 극한의 지점이 소유하고 파괴한다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지점까지 가지않게 스스로의 소유욕을 잘 달래고 어루만져 아름다울수 있는 지점에 멈춰있게 하는 것이 이성적인 사람이 할일.

우루과이 정부가 장서를 사들여 분실, 손상하는 일이 잦았다. -52

책을 물리적으로 망가뜨리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가지 역사 속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전 브라질 박물관 전소라는 비극도 떠오르고.
그저 모아둔 유물과 유산들을 지켜낼 수조차 없었던 정부의 무능함이 혼돈의 남미? 여서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알게 모르게 선진을 자처하는 여러나라들에서도 무지와 방관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 것이다.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을 견지하던 애서가 브라우어씨이기 때문에 가능한 파국일까? 델가도씨는 그 ‘위험한 책’들에게서 안전한 애서가일까? 이미 조용한 파국을 맞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모습에서 알콜 중독자들이 중독자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한 인상을 받았다.

장서들의 힘에 사로잡혀 책 분류의 카오스 속에 살고 식사도 취침도 같이 하는 행동까지 보이는 부라우어는 결국 시멘트 속에 책들을 부어넣고 집을 짓는다.... 라니, 망상과 비극의 완벽한 콜라보다.

그래서 결국 또 한번 집을 파괴하고 책의 집에서 벗어난 그는 어디로 향했을까?

구지 그것이 궁금해서라기 보단 이런 의문으로 끝나는 이야기라서 남기는 질문이다.

책 한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 17

이렇게 손쓸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그는 한동안 도서목록을 새로 정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찾는 책들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일은 자주 벌어졌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찾을 수 없는 책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 53

우리는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우리를 영원히 파괴시켜버릴 수 있는 지극히 실재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입에 올리기를 피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모면할 수 있다는 헛된 상상을 합니다. - 66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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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ㅣ 읽어본다
장으뜸.강윤정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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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시점엔 두 저자를 몰랐고, 아는 저자 순으로 읽어본다 시리즈를 읽다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 사이 나 혼자 저자분들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있다.
sns에서 이리 저리 얽혀 있고 뭐 그랬다는 별 거 아닌 사실들인데, 그래서인가 또 나는 괜한 일방적 친밀감을 느끼며 그들의 독서를 훔쳐보았다.

그림책, 그래픽노블은 잘 안읽어서 그것들을 제외하고는 겹치는 부분이 많은 독서.

더불어 몇권의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일종의 ‘득템’.

이 시리즈는 이렇게 끝난 걸까? 새로운 저자들을 섭외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적극적으로 출판사에 문의해본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참 유익한 시리즈다. 타인의 독서 은근히 궁금하니까.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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