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ㅣ 아침달 시집 6
유형진 지음 / 아침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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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절, 비슷한 경험이 묘하게 느껴진다.
세세한 지점에선 분명 멀찍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동화로 완성 되기 전의 시 같은 느낌이다.

<봄, exit>
걸었다
밤이었다
잎도 없는 검은 나뭇가지에
흰 꽃이 피어 있었다
희미한 향기가 소근거렸다
나 지금, 여기 있어
짠물이 흘렀다

텅 빈 학교 운동장
펜스 사이 피어있는 개나리
누군가 돌아오라고 매달아놓은
노란 리본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어디로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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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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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여대 기숙사.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풍경이 현재의 여성 담론안에 모조리 있다. 아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변화도 없이 그래왔다고 할 수 있겠다.
40여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불화의 이야기들.

대학 졸업자 취업률이 96.4퍼센트 였던 시절에도,
그런 호황의 시절에서 조차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인 여성들은 취업률이 26퍼센트였다.

기대한 바에 비하면 감흥은 좀 덜했지만, 그 시절을 겪은 세대에겐 묘한 느낌일지 모르겠다.

- 갑자기 큰 소리로 목청껏 뭔가를 외치고 싶었다. 이를테면 명멸, 여로, 폭풍, 쾌활처럼 내가 말하고 싶었으나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그리고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져버린 수많은 나의 말들. 환희, 명랑, 축복, 낙원, 영원. 하지만 그래봤자 이 옥상의 어둠과 이불의 장막 뒤에 숨어서 혼자 외치는 것뿐이었다. 누구의 귀에도 다가갈 수 없는 말들이었다. - 110

- 그 시절 우리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바위에 부딪쳐 다른 지점에서 구부러지는 계곡물처럼 모두의 시간은 여울을 이루며 함께 흘러갔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막연하나마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다를 거라고 믿었다. - 193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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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돼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80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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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짐승 아시아하기 신간을 읽기 전 읽으려 꺼냈다.

첫 시부터 강렬한 목소리.

돼지로 표상되는 것이 선명하다.

<요리의 순서>라는 시에 언급된 우리나라엔 뚱보 ‘독재자‘가 없다는 말에 건강한 몸마저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의 전씨가 떠오른다. 노추.

많은 키워드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육체, 벌거벗음, 죽음, 시, 사랑, 여성성, 문명, 구원, 신화....


-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가
아무것도 소리치지 않기가
시의 체면을 세워주기가
너무도 힘든 시절이었다 - 시인의 말

- 이 세상은 후손 거라면서 왜 자꾸 셋방살이하는 기분이 들게 해요? - 뒈지는 돼지 중

- 잠든 나를 깨우려고 어깨를 흔들었지만
나는 멀리 흩어져 버렸습니다
먼지만 남았습니다 - 다음은 입자무한 가속기로 만든 것입니다 중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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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철원 ㅣ 창비청소년문학 44
이현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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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다 망할 것만 같은 불안함으로 읽었다.
근현대사가 늘 그래왔기에...

사실 지명으로만 알고 있지 생소하기만 한 철원이 기차역을 중심으로
쫓기는 사람들과 꿈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 점은 매력적이다.


-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경애는 움찔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총성은 이제 철새의 울음처럼 때가 되면 돌아오는 무언가였다. - 376

2019.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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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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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글이라서 가슴을 때리는 한 문장이 자꾸 등장한다. 마주칠 때마다 심쿵하게...

‘어설프고 서글프고 어색하고 부끄러운’이라는 제목이 후보였다는데,
이 글들에 참 어울리긴 하지만, 역시 판매에는 부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해보게 된다.

글안에 등장하는 여러 사회적 사건들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알고 있고
왜 인간이 이룬 사회는 이 따윈가 싶은 절망과 분노가 생기지만,
그 일 들은 조금만 무관심해도 모른채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사실이 섬뜩하다.

내 쪽에 쏘여지는 조명안에서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한다.
나의 부정함에 면죄부를 주고 싶고,
나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고,
나의 도덕심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그런 덕목에 가까워지기를 ...
뭐 그런 일련의 변명들이 모인 것이 산다는 것의 의미인가?

여튼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떠오르는 글.

다만 수긍할 수 없는 나만의 기준이랄까... 그것은 시인이 야빠라는 사실이다. 시와 야구라니...ㅋ
(지극히 나만의 기준이다.)


- 나는 글을 쓰면서 - 그것이 시건 혹은 논문이건 -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고 빠져드는 대상은 단순히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들의 탄식, 좌절, 환호성, 기쁨, 경탄이 어려있는 세계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 8

- 나는 직장에 고독의 무대를 숨겨놓기로 한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유희의 장치들을 발명하고 그것들을 동료들에게 은밀하게 전파한다. 나는 탈퇴하는 마음으로 가입한다. 나는 다이어리에 혼돈의 기록을 남긴다. 나는 회의 때마다 참석자들에게 지구 멸망의 날을 환기시킨다. 나는 모든 이에게 만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된다. 나 자신을 경원시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나의 여가는 남의 여가 훼방놓기다. 나의 데이트는 매번 이별의 리허설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내가 모르는 이와 감동적으로 포옹할 순간을 고대한다. 나는 죽음을 망각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면서 살아간다. - 21

- 내게 소확생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요상해지는 것이었따. 작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컸고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불확실했다. 그 요상함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 100

- 어느 나라나 시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는 소수의 작가와 독자들이 이룬 한줌의 공동체로 근근이 지탱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는 이 세상의 말 중에서 가장 최대치의 자유와 해방의 감각을 발휘하고 있었다. - 136

- 소위 자아를 실현하려는 소망은 겉으로는 고상해 보이지만 일종의 세속적 야심이라 할 수 있다고 논평한다. 그것은 사회적 불안의 발로이며,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이 시대의 개인적 노력들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사회와 문명이 심어놓은 불안이 존재할 지 모른다. 문화와 예술에서는 ‘내가 타인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강박이 작동할지 모른다. - 150

-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나 어떤 목적도 약속도 없이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만남과 대화 자체에 몰입하며 거기서 자연스레 삶과 예술의 형태가 마름질되는 경이를 맛볼 수 있을까? 그럼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한가한 소리하고 있다고. 그럼 나는 말할 것이다. 정확히 봤다고. 내 말이 바로 그거라고. - 155

- 고백하자면 나는 끝까지 신랄할 수 없는 사람이며, 사실은 희망하기 위해 비관하는 사람이다. - 158

- 가까스로 인간적인 삶이 너무나 인간적인 삶이 될 때까지. - 243

- 글이란 불확실성의 극치이다. 글이란 머릿속 문장들의 빅데이터에서 하나씩 골라 옮겨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준비된 문장도 없다. 오로지 무만 존재한다. 모든 문자은 오로지 쓰기라는 활동을 통해서만 무로부터 떠올라 형상을 갖게 된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 325

- 나에게는 세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이다. 이 수수께끼는 내 시에도 나오고 논문에도 나오고 산문에도 등장한다. 알려해도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마음을 그칠수 없는 인생의 화두들이다. 이 화두들을 붙잡고 죽을 때 까지 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기적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 327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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