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시인의 글이라서 가슴을 때리는 한 문장이 자꾸 등장한다. 마주칠 때마다 심쿵하게...
‘어설프고 서글프고 어색하고 부끄러운’이라는 제목이 후보였다는데,
이 글들에 참 어울리긴 하지만, 역시 판매에는 부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해보게 된다.
글안에 등장하는 여러 사회적 사건들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알고 있고
왜 인간이 이룬 사회는 이 따윈가 싶은 절망과 분노가 생기지만,
그 일 들은 조금만 무관심해도 모른채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사실이 섬뜩하다.
내 쪽에 쏘여지는 조명안에서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한다.
나의 부정함에 면죄부를 주고 싶고,
나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고,
나의 도덕심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그런 덕목에 가까워지기를 ...
뭐 그런 일련의 변명들이 모인 것이 산다는 것의 의미인가?
여튼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떠오르는 글.
다만 수긍할 수 없는 나만의 기준이랄까... 그것은 시인이 야빠라는 사실이다. 시와 야구라니...ㅋ
(지극히 나만의 기준이다.)
- 나는 글을 쓰면서 - 그것이 시건 혹은 논문이건 -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고 빠져드는 대상은 단순히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들의 탄식, 좌절, 환호성, 기쁨, 경탄이 어려있는 세계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 8
- 나는 직장에 고독의 무대를 숨겨놓기로 한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유희의 장치들을 발명하고 그것들을 동료들에게 은밀하게 전파한다. 나는 탈퇴하는 마음으로 가입한다. 나는 다이어리에 혼돈의 기록을 남긴다. 나는 회의 때마다 참석자들에게 지구 멸망의 날을 환기시킨다. 나는 모든 이에게 만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된다. 나 자신을 경원시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나의 여가는 남의 여가 훼방놓기다. 나의 데이트는 매번 이별의 리허설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내가 모르는 이와 감동적으로 포옹할 순간을 고대한다. 나는 죽음을 망각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면서 살아간다. - 21
- 내게 소확생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요상해지는 것이었따. 작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컸고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불확실했다. 그 요상함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 100
- 어느 나라나 시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는 소수의 작가와 독자들이 이룬 한줌의 공동체로 근근이 지탱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는 이 세상의 말 중에서 가장 최대치의 자유와 해방의 감각을 발휘하고 있었다. - 136
- 소위 자아를 실현하려는 소망은 겉으로는 고상해 보이지만 일종의 세속적 야심이라 할 수 있다고 논평한다. 그것은 사회적 불안의 발로이며,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이 시대의 개인적 노력들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사회와 문명이 심어놓은 불안이 존재할 지 모른다. 문화와 예술에서는 ‘내가 타인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강박이 작동할지 모른다. - 150
-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나 어떤 목적도 약속도 없이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만남과 대화 자체에 몰입하며 거기서 자연스레 삶과 예술의 형태가 마름질되는 경이를 맛볼 수 있을까? 그럼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한가한 소리하고 있다고. 그럼 나는 말할 것이다. 정확히 봤다고. 내 말이 바로 그거라고. - 155
- 고백하자면 나는 끝까지 신랄할 수 없는 사람이며, 사실은 희망하기 위해 비관하는 사람이다. - 158
- 가까스로 인간적인 삶이 너무나 인간적인 삶이 될 때까지. - 243
- 글이란 불확실성의 극치이다. 글이란 머릿속 문장들의 빅데이터에서 하나씩 골라 옮겨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준비된 문장도 없다. 오로지 무만 존재한다. 모든 문자은 오로지 쓰기라는 활동을 통해서만 무로부터 떠올라 형상을 갖게 된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 325
- 나에게는 세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이다. 이 수수께끼는 내 시에도 나오고 논문에도 나오고 산문에도 등장한다. 알려해도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마음을 그칠수 없는 인생의 화두들이다. 이 화두들을 붙잡고 죽을 때 까지 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기적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 327
2019. 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