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누스 시리즈. 의리가 생겨 계속 따라가고 있고, 가끔은 진흙에 한발이 쭉 미끄러지는 것처럼 별 재미를 못볼 때도 있었지만, 이번 편은 뭔가 쇄신한듯 분위기가 좋다.
프로파일링을 적극 활용한 부분이 아마 재미 요소였던거 같지만, 너무 설명적인 부분들은 사족같다는 느낌(취재가 아까워 다쓸거야...)도 조금 든다.
그래서 범죄 전문가들이 ‘유레카‘를 외치기엔 결말이 조금 빤한 면은 있다.

성범죄가 아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이라 최근 본 드라마 ‘유령을 잡아라‘, ‘동백꽃 필 무렵‘과 이다혜기자와 이수정교수가 진행하는 범죄영화에 대한 오디오북 등과의 접점이 많아 더욱 흥미로웠다.

학대받고 방임되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달아 듣고 보았는데, 이번 편에서 그 전형들이 모두 등장한 것은 몰입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심란해지는 것은 도리가 없는 부분.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생존자인 피해자 가족들과의 면담부분은 좋은 장면 중 하나였다.

어쨌든 정의를 실현하는데 후진, 유턴 같은 것 없는 피아 형사는 특출난 미모로 어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더 이상 젊지도 않은 연령대지만, 그 부분이 무척 현실적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래서 판타지같기도 하다.

- 그녀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가 말한 그대로였다. ˝죄송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집 안에 계십시오.˝ - 81

이 부분은 조금 충격이었다. 독일 마저도....라는 느낌일까.
사후에나 움직이는 공권력의 안일함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주역은 아니지만 전 남편 헤닝의 소시오패스적인 직업정신은 이제 유머로 치환해서 좋아할 만큼 이 시리즈의 팬이 되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그 장광설과 훈화말씀 스타일의 종알종알..

모든 등장인물이 얽힌 편이라서 이 다음이 더욱 기대된다. 심지어 이제 엥엘 마저도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으니.:)

- 악은 특별하지 않고 항상 인간적이다. - W.H. 오든

- 인간의 추악한 밑바닥과 대면하면서도 매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것, 보텐슈타인에게 그것은 정의에 대한 갈망이었다. - 154

- 두 사건 모두 주변에 방관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발자에 대한 시선이 두려워서,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무사 안일주의 때문에, 혹은 설마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지 못해서 외면한 사람들 말이다. - 42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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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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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은 입게되는 이 얼룩진 옷을 가리켜 죄책감을 형상화했다고 말하면, 그건 우리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셈이다. 자신의 악행에 쉽게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인간이 자기반성적인 존재는 아니니까. - 33

절대적으로 공감한 유일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도 어쨌건 좋아지지 않은 책이다.
읽은지 오래라 덧붙이 말도 부족하고, 이렇게 기억이 빈틈이 많게 듬성듬성 읽지는 않았는데, 독서의 태도에 조금 반성한다.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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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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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사건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챙겨 걸어나가는 이야기다.
내가 아는 시간과 공간, 사건과 상징되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오히려 영화를 보지 않고 시나리오를 먼저 읽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텐데 하는 두려움이, 익숙한 시공간을 통해 다른 이야기들과는 또 다른 긴장감을 준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내내 조마조마 했지만, 감독은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예상가능한 개인의 불행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던게 아닐까 하는 이해와 믿음이 생긴다.

영지 선생님과 진단서가 필요하냐 물어봐주는 어른들이 있어 더욱 안도했다.

주변의 여러 사람이 언급했던 재밌는 부분은, 천운으로 사고를 피한 수희를 보고 대훈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인데, 주위의 언급은 #니가거기서왜울어 였다.


- 왜 이것은 기억하고, 저것은 기억하지 않는가. 왜 그 과거의 작은 디테일들을 한 주 내내, 한달 내내, 그보다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어둠과 백지상태로 가는가 - 도리스 레싱

- 벌새를 만드는 과정은 집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비로소 집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치유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게 됐다고, 용서를 구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때로 잔혹하고, 서늘하고, 아프고, 그리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었다. - 10, 작가의 말

-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 192

-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안다. 고통은 파도처럼 마음에 들이쳤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쉼 없이 마음으로 들어와서 자국을 내고, 다시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가도 돌아온다. 나의 잘못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노력했는데도, 잘 해 보려고 했는데도 겪어야 하는 상처들이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상처받으면서도 내가 나대로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게는 어느 정도의 힘이 있고, 내 힘으로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낸다면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리라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은희 시절의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상처는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내가 누구에게도 맞설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느껴졌으며,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곧 나 자신의 가치로 여겨져서 작은 일들에도 쉽게 다쳤다. 그건 사소한 일들이 아니었다. (...) 한국 사회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고 강해지는 서사를 환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사람으로 살면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겠지만,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최대한 받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나.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는 가해자에게 언제나 얼마간의 정당성을 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거야. 정말 그런가. 인간은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사랑은 상처가 상처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하도록 두지 않는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과하여 사랑 받아 성장했다. 함부로 대우 받아 성장한 것이 아니라. - 그때의 은희들에게, 최은영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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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선 인상적인 선정성에 (세월이 흘러서도 이차 창작물에서 느껴지듯 여전히) 촛점이 맞춰져 있어 그렇지 무척 사회파 소설이다. 변화하는 세상의 보편의 감정들, 계급과 성차에 대한 통찰이 있다. 계급과 차별에 대해 상당부분 할애해 이야기 하는 것은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라그비의 여주인인 코니. 귀족 계급 여성의 성적 일탈에만 대중의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녀는 자본계급에 속한 자로서 그것의 비호 아래 살아왔으나, 그럼에도 지배계급 안의 여성이라는 피지배층으로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는 역할에 투신하는 캐릭터다.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태도로 눈앞의 사랑에 망설임이 없는 진취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언니 힐더와의 대화를 보면 그저 작가의 사상적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 아닌지 하는 아쉬움도 있기는 하다.

클리퍼드의 무능은 육체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태도에도 있다. 영주로서, 자본가로서 민중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의 대표격인, 철저하게 계급성을 옹호하는 자인 그를 불의의 몸으로 표현한 것은 어떤 상징성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이입이 어려운 캐릭터는 코니로 인해 다시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멜러즈인데 수동적인 남성성이 차라리 남성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측면에서의 당위성은 있지만, 개연성의 측면에서는 좀 와닿지 않는 인물이다. 어쩌면 빈곤이 쪼그라들게 한 인간을 보여준거 아닐까 싶기도.

전형적 여성 역할에 충실한 볼턴 부인이 코니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고 경계심이 없는 부분은 일종의 여성 연대의 모습이 아닐까 확대 해석도 해보게 된다.

오히려 당시의 파격, 섹스씬 묘사는 과한 신성의 부여?로 읽다보면 다른의미로 낯부끄러운 지점이 있다.

가장 거슬리는 것은 멜러즈의 말투를 표현한 방식인데, 자신의 처지에 합당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듯 맞춤법을 무시한 무지랭이 말투가.. 읽는 내내 어색했다. 뭔가 다른 번역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기간은 좀 걸려 완독했지만 재밌었다.

- 아무리 감상적 차원에서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 성관계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지저분한 관계이자 예속 중 하나였다. 이것을 찬미한 시인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항상 뭔가 더 나은 것, 뭐가 더 고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명확하게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 여자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유는 그 어떤 성관계의 사랑보다도 한없이 더 훌륭한 것이었다. 다만 불행한 것은 이 문제에 있어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너무나 멀리 뒤쳐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들은 마치 개처럼 성관계에만 집착했다. - 12

-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임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밀회의 약속에 대한 짜릿한 설렘의 걸음걸이라기 보다는 어떤 분노와 반항심이 가슴속에 불타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그것은 연인을 만나려 가는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뭐든 올테면 오라!‘는 결의에 찬 마음가짐에 가까웠다. - 77

2019. jul-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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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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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게 좀 시간이 지나 버리고.. 기억을 더듬더듬...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데 작가의 시대보다도 조금 앞서게 느껴지는건 아마 앨리트들을 모아놓은 학교의 분위기 때문인것 같다.

선배 작가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영예인 그 시절의 십대들은 순수하지만 그만큼 무모하고 독선적인 면이 있다. 그 인정 하나를 위해 표절도 마다하지 않는 문청이란...

헤밍웨이 대소동이라고 이름붙여도 될 것같은 이야기다.
오독으로 풍성해지는 독서라고 역자 후기에서 말하지만,
그러나 오독이라고 오해받을 만한 구석은 죄다 정답에 가깝고, 그 모든 것을 통과하는 서사가 아닌가 싶다.
문학에 의해 고양되고, 문학을 신성시하고, 어떤 가치와도 교환할 수 없다는 완고함을 지닌 주인공이 결국 그 문학을 배반하는 행위로 인정받는 과정은 젊음의 욕망과 천진한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그 정도의 몰입은 이젠 나에겐 없는 덕목이 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실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 마력의 서사다.


- 어쨌거나 헤밍웨이의 영향에 푹, 귀까지 잠겨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심지어 헤밍웨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가 헤밍웨이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부인하기라도 하듯 우스꽝스럽게 흉내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건 네 침대고, 좋은 침대이며, 너는 그 침대를 정리해야 하고, 잘 정리해야 한다, 하는 식으로. 아니면 이런 식이었다. 오늘은 미트로프의 날이다. 미트로프는 끝내준다. 미트로프는 끝내주지만 미트로프가 사라진 다음에는 미트로프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비극이 될테고 미트로프를 주는 자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든 영향을 받았다. 헤밍웨이든, 커밍스든, 케루악이든, 아니면 그 작가들 전부,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작가들로부터,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으나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 33

- 내가 그랬든 다른 소년들도 작가가 된다는 건 혈연과 계급의 문제에서 탈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가들은 일상의 위계 서열 바깥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특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권력을 얻었다. 체제와는 한 발 거리를 둔 채 그 체제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그럼으로써 체제를 재단할 권력. - 52

- 수전은 내가 자기 소설을 무분별하게 도용한 것이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그놈의 종마 농장에게나 그녀가 신랄한 어조로 ‘아빠‘라고 부른 헤밍웨이에게, 또한 문학을 투우나 권투 같은, 어마어마한 남근중심주의적 사업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에 찬물을 끼얹는 괜찮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이름과 대명사만 몇 개 바꿨는데도 우리 ‘아빠‘로부터, 비할데 없는 남근 감별사께서 -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내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도 안 읽어봤을까봐? - 우리 ‘아빠‘조차도 그게 남자가 쓴 소설인지, 여자가 쓴 소설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 아녜요. 최고위급 남성성 결정권자치고는 너무하잖아. 엉터리를 감지해내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닌 학교들이 자신들의 기이한 존재를 정당화했던 차이, 이른바 성별이라는 기본적인 차이를 봐서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죠.
아주 끝내주는 장난이었어요. 수전이 말했다. 근데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해냈어요? - 284

- 글 계속 쓰세요.
음, 그러고 싶지 않아요. 너무 경박한 일이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글을 쓰면 세상과 분리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말이지 좋을게 하나도 없어요.
그 말은 정말로 충격이었다. 인간은 불경함을 보고 움츠러들 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신성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법이다. 자기 재능을 아무렇지 않게 내버린 수전이 발휘한 게 바로 그런 힘이었다. 수전은 내가 뭔가 말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냥 하찮은 계집의 소견일 뿐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까닥여 보이고 거리로 떠났다. - 288

2019.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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