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로선 인상적인 선정성에 (세월이 흘러서도 이차 창작물에서 느껴지듯 여전히) 촛점이 맞춰져 있어 그렇지 무척 사회파 소설이다. 변화하는 세상의 보편의 감정들, 계급과 성차에 대한 통찰이 있다. 계급과 차별에 대해 상당부분 할애해 이야기 하는 것은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라그비의 여주인인 코니. 귀족 계급 여성의 성적 일탈에만 대중의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녀는 자본계급에 속한 자로서 그것의 비호 아래 살아왔으나, 그럼에도 지배계급 안의 여성이라는 피지배층으로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는 역할에 투신하는 캐릭터다.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태도로 눈앞의 사랑에 망설임이 없는 진취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언니 힐더와의 대화를 보면 그저 작가의 사상적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 아닌지 하는 아쉬움도 있기는 하다.
클리퍼드의 무능은 육체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태도에도 있다. 영주로서, 자본가로서 민중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의 대표격인, 철저하게 계급성을 옹호하는 자인 그를 불의의 몸으로 표현한 것은 어떤 상징성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이입이 어려운 캐릭터는 코니로 인해 다시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멜러즈인데 수동적인 남성성이 차라리 남성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측면에서의 당위성은 있지만, 개연성의 측면에서는 좀 와닿지 않는 인물이다. 어쩌면 빈곤이 쪼그라들게 한 인간을 보여준거 아닐까 싶기도.
전형적 여성 역할에 충실한 볼턴 부인이 코니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고 경계심이 없는 부분은 일종의 여성 연대의 모습이 아닐까 확대 해석도 해보게 된다.
오히려 당시의 파격, 섹스씬 묘사는 과한 신성의 부여?로 읽다보면 다른의미로 낯부끄러운 지점이 있다.
가장 거슬리는 것은 멜러즈의 말투를 표현한 방식인데, 자신의 처지에 합당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듯 맞춤법을 무시한 무지랭이 말투가.. 읽는 내내 어색했다. 뭔가 다른 번역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기간은 좀 걸려 완독했지만 재밌었다.
- 아무리 감상적 차원에서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 성관계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지저분한 관계이자 예속 중 하나였다. 이것을 찬미한 시인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항상 뭔가 더 나은 것, 뭐가 더 고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명확하게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 여자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유는 그 어떤 성관계의 사랑보다도 한없이 더 훌륭한 것이었다. 다만 불행한 것은 이 문제에 있어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너무나 멀리 뒤쳐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들은 마치 개처럼 성관계에만 집착했다. - 12
-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임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밀회의 약속에 대한 짜릿한 설렘의 걸음걸이라기 보다는 어떤 분노와 반항심이 가슴속에 불타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그것은 연인을 만나려 가는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뭐든 올테면 오라!‘는 결의에 찬 마음가짐에 가까웠다. - 77
2019. jul-se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