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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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할 말 잃게 하는 추레함, 불쾌감.

창녀, 약쟁이, 아동학대 방임, 광신도, 성범죄자, 앵벌이....

진짜 정말 별로다.
소설이 그렇다고 쳐도 지젝까지 끌어다 놓는 해설은 기가 찬다.
황홀한 우화 좋아하네. 기가 막혀.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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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개##잡놈의 새끼가 있나....
최고의 악녀 시리즈 어쩌구 하면서 드라마 영화화가 되었다는 광고는 사실 어처구니가 없다.
왠 악녀... 진짜 악당, 악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개과천선 일절없는 도야라는 남자인데.

도야의 내면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것이 도요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면, 도요의 인생 전체를 교묘하게 망가뜨린 부자의 면면은 매우 축소되어 있고, 기괴한 분위기를 덧씌워 악녀로 만드는 것은 어쩐지 일본 특유의 불쾌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도야가 덫에 빠지는 분위기는 초반을 지나면서 부터 쭉 느껴지는데, 어쨌든 자승자박, 자신의 죄가 뒤늦게 벌로 되돌아올 뿐아닌가.
악녀시리즈라는 타이틀로 재생산 된 이 이야기는 너무 일본이라고 느껴진다.

너무 터무니 없이 허술한 도야의 악행은 재미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재미가 상쾌하게 마무리 되는 류는 절대 아니다.

- 그는 자기가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손해도 자기만 당한 듯한 불합리함 밖에 느끼지 못했다.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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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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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읽은 책 중 최고로 꼽은 한국문학은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고 외국문학은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었다. 생각보다 되게 쉽게 두권의 책을 꼽았는데, 서사도 서사지만, 나는 아무래도 문장이 내 멱살을 쥐고 끌고가면 맥없이 항복 항복을 외쳐대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막 엄청 멋진 비유, 끝내주는 명문장이라서가 아닌 현실의 입말과도 거리를 두지 않고 너무 속되지도 않은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문장인데, 그 문장을 끌고가는 화자가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라고 결정하는 그 모든 순간, 화자가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에 완벽하게 몰입하게 하는 힘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 (자신을 주변과 격리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한) 여자 애에게 ‘웃고 다정하고 친절한 ‘행동은 경계심을 품게 하는 행위인 것이 현실인 1970년대 아일랜드의 이야기다. 이 시대와 그 공간의 이야기에 이토록 공감하게 되는 것은 여성을 구조적으로 비하하고 쉽게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주인공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온갖 억측과 소문이 퍼져나가고, 그를 고립시키려는 악의적인 행동들로 인해 고립무원의 상태가 지속될 때, 그렇지만 사회 규범에 근거해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조력자들이 그의 주변에서 멀어지지 않을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이 강타하는데, 속절없이 그 슬픔과 안도에 무너지게 되고 만다.

파렴치하고 피해망상적 고대의 신들 조차 너끈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주인공의 배경은 그렇게 만들어 진다. 누구의 이름도 존재하지 않는 설정은 이 모든 고난에 몰입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고, 이상하고, 요란하고, 과시적이고, 음흉한 주변인들 속에서 조용히 한발씩 어디론가 걸어가는 주인공의 무사를 읽는 내내 기원했다. 대신 망명신청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최소 서른번쯤 생각한 듯 하다.

- 그 때, 열 여덟 살 때, 나는 일촉즉발인이 사회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는 한, 명백한 언어적 모욕이 가해지지 않는 한, 눈 앞에서 조롱당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기본 원칙이었으니,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열 여덟살 때 나는 개인 공간 침해라는게 뭔지 몰랐다. 불편한 느낌은 있었다. 직감이나 어떤 상황 또는 사람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직감과 반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몰랐고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을 꺼리거나 거부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 17

- ‘건너‘ 상징인 자동차의 부품이 걸린 뽑기에 참가하다니 무슨 짓이냐, 하는 말이었다. 역사적 부당함 말이야, 그가 말했다. 압제적 법령 말이야, 그가 말했다. 실행과 조약 말이야, 그가 말했다. 인위적 경계 말이야, 그가 말했다. 부정부패 지원 말이야, 그가 말했다. 긴급체포 말이야, 그가 말했다. 통금 선포 말이야, 그가 말했다. 재판없는 구금 말이야, 그가 말했다. 집회 금지 말이야, 그가 말했다. 사인 규명 금지 말이야, 그가 말했다. 또 주권과 영토의 제도적 침해 말이야, 그가 말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처분 말이야, 그가 말했다. 뭐든지 말이야, 그가 말했다. - 45

- 나는 수치를 몰랐다. 그러니까 ‘수치‘라는 단어를 몰랐다. 그 단어가 우리 공동체의 어휘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치의 감정은 확연히 느꼈고 나 말고 주변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감정을 알았다. 약한 감정도 아니었고 분노 보다도, 증오보다도, 심지어 감정 중에 가장 많이 은폐되는 공포보다도 더 강력한 것 같았다. 그 때는 수치를 해소할 방법도 극복할 방법도 없었다. 수치가 공적인 감정일 때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치의 효과를 증폭하려면 수치를 주는 사람이건 수치를 목격하는 사람이건 수치를 당하는 사람이건 간에 사람이 많아야 했다. 이렇듯 수치는 복잡하고 복합적이고 고도로 발달된 감정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수치를 피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다. 사람을 죽이고, 말로 상처를 주고, 정신적 상처를 주고, 게다가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했다. - 84

-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책 읽으면서 걷는 것을 관두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그만 독서등을 달고 다니는 것도 관두고 위험하고 무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다시 보면 행복해질 거라는 말이죠?˝ ˝행복하고는 상관없어.˝ 셋째 형부가 말했는데 그 말은 그때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내가 들어본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이었다. - 99

- 선생님이 날마다 일몰이 있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데 관에 들어가 땅에 묻힐 필요는 없다. 어둠이 아무리 크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어둠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다. 구습을 떨쳐버려야 한다. 상징과 뜻밖의 해석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또 가슴속에 감추어 둔 것,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꺼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선택을 하세요, 여러분.˝ 선생님은 말했다. ˝그곳에서 나오세요. 지렛목이라고 할까 회전축이라고 할까 전환점이라고 할까 뭐가 됐든 모든 것의 의미가 나타나는 순간이 있을거예요.˝ 이상한 소리였다. - 122

- 나는 고대인에 관심이 많다. 절제되지 않은 감정, 파렴치한 인물들, 신화, 의식, 섬뜩하고 기이하고 피해망상적인 계략, 살인. 신들도 변덕스러운데다, 평범한 사람들은 신에게 탄원해서 적에게 저주를 내리는데 이 적이라는 사람이 사실 가까운 이웃이다. 오만한 황제들이 사과나무와 결혼하고 말을 집정관으로 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세계다. 뭔가 흥미로우면서 미친 것 같고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어서, 용인 가능한 정도로 이상한 정상인만 이해할 수 있다. - 153

- 네가 잊지 않게하기 위해 네가 두려워 하는 것을 열거할 수밖에 없구나. 궁핍함, 매달림, 기이함, 보이지 않음, 보임, 수치를 당함, 기피됨, 기만당함, 괴롭힘 당함, 버려짐, 얻어맞음, 입에 오르내림, 동정받음, 조롱당함, ‘애‘이면서 동시에 ‘늙은이‘로 여겨짐, 분노, 타인, 실수로 저지름, 본능적으로 앎, 슬픔, 외로움, 실패, 상실, 사랑, 죽은에 대해. 죽음이 아니라면 삶 - 육신, 필요, 일부, 대담한 일부, 버려진 일부에 대해. 또 떨림, 진동 떨림과 진동 때문에 다리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해. 1부터 10까지 중에서 우리의 9와 10분의 9는 힘의 상실을 믿고 나약함 앞의 굴복을 빋고 다른 사람의 교활함을 믿어. 우리는 불안정성도 믿어. 9와 10분의 9는 우리가 감시를 당하고 있고 오래된 상처를 되풀이하고 있고 얼굴 표정이 경직되고 불행하고 둔하다고 믿어. 이게 우리의 두려움이야. - 373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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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0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크맨. 이제 정말 들고 읽어야 할 듯요..

hellas 2020-01-06 19:12   좋아요 0 | URL
정말 재밌어요:)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123
정끝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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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놀이에서만 머물지 않는 세계관이 펼쳐지는 시들.
주저앉고 투신하더라고, 나는 춥더라도...

- 함부로 지지 말라고 바람이 졌다 - 겁 많은 여자의 영혼은 거대한 포도밭 중

- 누구도 말 걸지 않았다 아무도 그립지 않았다 해야 할 건 다 했는데 아직도 숨이 차다 어깨가 처지고 손이 풀렸는데 그래도 아침은 되풀이된다 매일이 벌 처럼 - 벌받는 별 중

- 어떤 꽃은 주저앉고 어떤 꽃은 투신한다 중력의 힘이다(...)
너는 모른다 운전대에서 숨을 돌리며 봄이면 가까운 곳을 멀게 다니는 내가 씹힌 카세트테이프처럼 얼마나 멀리 더 멀리를 노래하는지 - 홀리데이 중

- 사랑을 노래하는 카사노바의 입술도 그러할진대, 그게 시라면, 뭇칼질을 건너뛴 일획이, 거듭이 생략된 노래가, 가당키나 할 것인가
그렇게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는가 - 일파 만파 답파 중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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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ㅣ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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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젊은 시절, 불법이던 임신 중단 시술에 대한 기록.
왜 이런 기록을 남겨야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프랑스는 더 이상 임신중단이 불법도 아니고, 사회규범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니까.
그럼에도 그 당시의 자신의 좌절감과 불안을 전하고 싶었을까? 너희가 생명은 소중하다는 공허한 주장을 할 때, 여성인 나는 전 생애와 그에 수반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흔들린다고,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해 위험하고 보장없는 불법 의료행위에 몸을 맡겨야 하는 절망은 그 어느 누구도 더는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고.
인간적으로 모멸감, 당혹감, 낭패감에 휩싸인 채로도 시간과 돈과 그 일을 수행해줄 인력을 찾아 정신없이 뛰어야 한다는 사실은 읽는 내내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도 후반부는 끔찍하다. 건조하게 서술했지만 모든 격정, 감정의 파도가 드러난다.

강력 추천!

- 피임법에 따르면 위험한 시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배속에 ‘그것이 생길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16

- 계속 이어 갈 수 있으리라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일주일 전에 이 글을 시작했다. 그저 그 사건에 대해 쓰고 싶다는 욕망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 년전부터 집필 중인 책을 쓸 때마다 그 욕망이 지속적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생각을 떨칠 수도 없으면서 저항했다. 그 생각에 빠져들면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바로 그 일이었을 거다. 어느 밤, 나는 임신 중절 경험에 대해 쓴 책을 두 손에 들고 있지만, 서점 어디에서도 그 책을 찾을 수 없고, 도서 목록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꿈을 꾸었다. 책 표지 아래에 큰 글씨로 ‘절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꿈이 책을 써야만 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런 경험을 글로 쓰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의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 18

-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20

- 막연하게 내가 태어난 사회 계층과 내게 일어난 일을 연관이어 생각했다. 노동자와 소상공인 가정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첫 번째 수혜자였기에 나는 공장이나 상점 계산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칼로레아 합격도, 프랑스 문학 학사 학위도, 알코올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섹스 때문에 나는 다시 따라잡혔고, 그 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무언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 - 22

- 의사들은 감치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여자들을 죽게 방치하는 법을 위반하느니 차라리 당신들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솔직하게 나서지 않는 한, 임신할 정도로 멍청한 젋은 여자의 아름다운 눈 때문에 자기가 이룬 모든 걸 잃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의 임신 중절을 막더라도, 그녀들이 알아서 방법을 찾아낼 거라 생각했으리라. 부서질지도 모르는 자기들 이력에 비하면, 여자들이 질 속에 뜨개질 바늘을 넣는 건 아무일도 아니었다. - 31

- 이제 ‘이념의 천국‘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 내 육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 어떤 때는 내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볼 수 있길 바랐고, 또 어떤 때는 지식이란 습득해 봐야 결국엔 무너져 내릴 뿐인 허울같은 구조물처럼 보였다. 어쨌든 논문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중절을 해야만 하는 필연성보다 더 끔찍했다. 논문을 쓸 수 없음은, 보이지 않는 내 타락의 명백한 징표였다.(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공부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지식인‘이 아니었다. -33

-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 38

- 어쨌든 그는 내가 패혈증으로 죽는 일만은 막고 싶어했다. 우리 중 누구도 임신 중절이라는 말을 단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언어 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 39

- 뭔가에 쫓기는 듯하던 그녀의 태도를 떠올리며, 어쩌면 그녀도 마찬가지로 두려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의 임신 중절 의지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듯이, 어쩌면 그녀도 자신의 일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돈 문제도 있겠지만, 어쩌면 여성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감정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하루 온종일 환자나 신모의 변기를 비워댔을 그녀는 파사주 카르디네에 있는 방 두칸 짜리 집에서, 고작 인삿말이나 건넸을 의사들과 똑같은 힘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며 비밀스러운 만족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위험부담을 고려하여, 결코 인정받지 못할 기술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받게 될지도 모를 수치심까지 따져 비싼 값을 받아야 했으리라. - 52

- 또 다른 오후, 마른 대로 근처에 위치한 생파트리스 성당에 들어가서 신부에게 임신 중절을 했다고 고해했다. 이내 내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광명을 찾았다고 느꼈는데, 그에게 나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성당을 나오며 나는 종교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 76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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