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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변함없이 반복되는 정원의 순환 주기, 열두 달을 가드닝으로 보내보면 아무래도 인간의 노력과 실패와 이런 것들에 겸손해지게 된다.
해와 바람, 비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되고,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나라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잘 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까.
어쩌다 좀 본격적인 가드닝을 하게 되니,
제일 먼저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어처구니 없게도 소유욕이었다. 예쁘고 멋진 식물, 한번 꼿힌 종류의 식물은 그 종의 구할수 있는 모든 종을 가지고 싶었다.(그건 진짜 그야말로 불가능한데도) 그러나 식물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가 있고, 계절과 지역의 한계로 구하기 어려운 식물이 많으며, 팬데믹 상황에 실내 가드닝의 붐이 일고, 덩달아 일부 수입 식물들은 병해충을 이유로 수입이 제한 금지되고, 몇몇 인기 종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그런 기이하달까 너무 열광적인 식물 가격 인플레이션이 왠지 꺼림직해지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가드닝에 시들해 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잘 돏ㅘ준 식물들이 알람을 띵동띵동 울리면서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고 자라는 모습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계절을 여러번 반복하며, 성장주기가 빠른 식물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식물들의 각각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것은, 책 한권씩 읽었을 때의 기분과도 비슷하다. 아직도 식쇼핑에 마음이 들썩이기도 하지만, 책 한권을 앞장 뒷장만 읽고 독서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이치를 식물에게서도 깨우치게 된달까.
- 인간은 손바닥만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햐 한다. - 154
- 누가 가드닝을 목가적이고 명상적인 일이라고 했나. 마음을 바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가드닝 역시 결코 충족 될 수 없는 열정 그 자체다. - 33
- 정원가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간단하다. 1월의 첫날부터 기온은 딱 영하 0.9도, 적설량은 127밀리미터, 살짝 흐리면서 서풍이 잔잔하게 불어오는 날씨면 더 바랄게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정원가들이 왜 그리 날씨에 온 신경을 쏟는지, 우리가 어떤 날씨를 바라는지에 대해선 도통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이 이 모양인 거다. - 37, 정원가의 1월
- 모든 흙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미끌거리고, 축축하고, 딱딱하고, 차갑고, 척박한 흙을 그저 추하다고, 썩었다고, 구제불능이라고 치부하지 말라. 이를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라 속단하지 말라. 과연 그 존재가 인간의 영혼에 깃든 냉담함과 잔인함과 사악함만큼 추하랴. - 157, 흙
- 정원에 있는 것들은 시시각각 비율이 어그러진다. 그래서 가을이면 식물을 이리저리 옮겨 심게 된다. 정원가가 해마다 여러해살이를 안아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꼭 새끼를 물어 옮기는 어미고양이같다. 그는 뿌듯해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 심었군. 드디어 조화가 딱 맞네!˝ 다음해에도 똑같은 말을 한다.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 - 166, 10월
- 사람들은 스러져버린 과거의 잔여물이 풍기는 쇠락의 냄새는 곧잘 맡는다. 하지만 이처럼 노쇠하고 헐벗은 땅속에서 끝없이 움트는 하얗고 통통한 새싹은 왜 보지 못하는지!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순간이다. - 186
2020. a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