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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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의 스토너 같은 이야기.

스토너를 읽었을 때 느낀 한 인간의 고요하고 뜨거운 삶에 대한 경외감.
그런 느낌을 한 여성 출판인의 인생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잔잔하게 격랑 없는 듯이 흐르는 생이지만 내내 뜨거웠다.

하나의 장르에 전부 쏟아내는 그런 삶에 대한 동의가 있는 편이라면 좋아하게 될 책이다.

-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부모의 삶은 그녀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여백으로 가득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편하거나 풍족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삶은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척하고, 투쟁하고, 쟁취하는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은 삶이 내주는 과제들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방식으로, 기꺼이 감당하는 방식으로 삶에 순종했다. 평생 그악스럽고 억센 것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의 모습은 그런 태도 덕분인 것 같았다. - 29

- 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다. - 87

- 그날, 석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 263

- 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 272

2025. dec.

#오직그녀의것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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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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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용서가 본인에게 가능한 일인가 헷갈리는 청춘.

혼란스럽고 확신 없는 것이 정체성인 지점, 그것을 체념 증후군이라고 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요즘 여성작가의 글들을 여성문학이라고 지칭하지 않듯, 이 작품도 퀴어 문학이라고 딱히 규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 (심사평에 너무 많이 언급되기에 생각함)

그저 이젠 다 괜찮아, 다 흘러갈 거야라고 받아들이는 일이 타인의 일이 아니고,
나는 결코 뛰어넘지 못할 지점이 있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드러나지 않은 엄마의 전사들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점이 재밌달까 예사롭지 않다 느끼기도 했다.

- 사랑했던 기억은 어디로 가나.
어디에도 없는데 어디에나 있는 듯 하다. - 11

- 애초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긴 할까. 나는 나조차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지만 엄마는 나를 낳아준 사람이 아닌가. 나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한때 하나였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이어가다보면 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암담해졌다.
그러게, 왜 살아야 할까. - 13

-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사랑? 용서? 정말로 그런 걸 원했던 것일까. 그게 나한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 70

- 그럼에도 우리가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안의 상처들이 오롯이 엄마의 잘못으로 생긴 게 아님을 알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지만, 그래서 엄마를 안쓰럽게 여기는 순간들도 더러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 어떤 원망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분석하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해소할 수는 없는 것 같다. - 74

- 언젠가 형은 징그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대체 엄마를 어떻게 견디는 거야? 그 나이 먹고 왜 아직도 같이 살아? - 85

-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당연히 홧김에 뱉은 말이었다. 홧김에 속내를 털어놓는 건...... 집안 내력인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불행이 온전히 다른 누구의 탓일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그토록 전면적으로 망쳐놓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를 망치려고 든 적이 있었을까. 정말로 그런 순간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그럴 리가.
무엇보다 자신의 불행이 누구의 탓도 아님을, 그저 제 소관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럴 리가.
대체 우리는 왜 이 모양일까. - 86

- 나는 지나치리만큼 꾸준하게, 가끔은 누구보다 야멸찬 방식으로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한 일이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항상 내 잘못이었다.
내 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내 죄였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늘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신하건대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도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94

- 아마도 나는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 쓰는 것 같은데, 내가 남길 수 있는 게 글뿐이라 쓰는 듯한데, 그것이 나 같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영위했으면 싶은데...... 그래서인지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유서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지금 여기에 쓰는 문장들이 내가 남기는 마지막 편지 같은 것이라고. - 103

- 인간은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지닌 모순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까.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되니까.  - 116

- 엄마는 사십 년 가까이 조각난 천들을 한데 이어붙이며 살아왔다. 하나가 아니었던 것들을 기워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손가락이 바늘에 꿰뚫리곤 했으니 엄마가 지어낸 옷들에 엄마의 피가, 살점이, 영혼이 흩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엄마의 일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재봉질이 내가 하는 글쓰기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그 자리에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186

- 슬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그렇다. - 209

2026. feb.


#어둠뚫기 #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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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0 이판사판
하야시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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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에서 시작된 붕괴된 가족.
중학생 아들의 설명 없는 등교거부로 시작된 히키코모리 문제.

일본 사회에서도 사회 적응에 실패한 청년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대체로 아들인 경우가 많다는 점도 시사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이 이야기에서도 누나인 유이가 동생을 더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자 이기적이라느니, 정신적 문제 운운하는 것이... 좀 많이 거슬리는 부분.
어째서 여전히 아들을 훈육하거나 하는데 감정적으로 더 어려워하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아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법이 같이 복수하자 인 점도... 에휴..
아들과 아버지 캐릭터만 성장하는 듯한 전개로 작가의 일방적인 편애도 느껴졌다.

마사키와 세스코가 방에 틀어박힌 아들을 그냥 방관했다기엔 초반에 노력이 없지 않고,
비협조적인 학교가 가장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양육과 훈육이 부와 모의 어느 한쪽에 부여되는 의무가 아니라는 점도 새삼 느끼게 되고...
어쨌든 문제의 아들 쇼타는 아버지의 각성으로 법적 도움을 받게 되고
상처는 남지만 그래도 세상으로 나오는데 성공한다는 희망적인 편인 결말.

- 7년 전에도 '히키코모리'는 이미 사회문제였지 않은가. 그런데도 내심,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 19

- 저게 바로 8050이라는 거군요. 히키코모리 아들이 늙은 부모의 연금을 파먹으며 들러붙는 거. - 31

- "소송을 결심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기자가 질문했다.
"아들의 잃어버린 삶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일제히 타이핑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였습니다. 8년 전 아들이 등교를 거부할 때, 저는 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상담소에는 데려갔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했던 겁니다. 아들은 학교에서 공격당하고 있었습니다. 범인을 찾아내서 이지메가 범죄임을 깨닫게 하고 멈추는 것. 간단한 일이지만, 그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 431

- 뛰어내리는 순간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었거든. 그러면서 깨달았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구나. 이대로 50살 아저씨가 되는 건 싫어. - 438

2026. may.

#8050 #하야시마리코 #이판사판시리즈 #북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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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콜럼 토빈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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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온 젊은이의 타향 적응, 불현듯 닥치는 향수, 필연처럼 다가오는 사랑...
개인에게는 이 모든 게 엄청나게 큰 사건이고, 또한 책을 읽는 독자에겐 잔잔하게 흘러가는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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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콜럼 토빈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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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은 도시 에니스코시는 불황으로 발전도 희망도 일자리도 지지부진한 곳이다. 엄마와 아일리시를 부양하는 언니 로즈는 동생의 미래를 위한 곳으로 미국을 권유한다. 브루클린의 플러드 신부를 통해 일자리와 거처를 소개받고 자의라기보단 가족들의 미래 설계로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고자 하는 어린 여성 아일리시의 성장기.

고향을 떠나온 젊은이의 타향 적응, 불현듯 닥치는 향수, 필연처럼 다가오는 사랑...
개인에게는 이 모든 게 엄청나게 큰 사건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에겐 잔잔하게 흘러가는 인생 이야기다.

차분히 그 인생을 바라보며 아일리시의 미래가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하숙집과, 아일랜드 공동체, 직장, 회계원이 되기 위한 수업들.
그 안의 인물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서히 성장하는 아일리시.
이탈리안 배관공 토니와의 관계도 대단한 확신이 있는 것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불안이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려진다.

남성 작가가 그리는 여성 서사지만 아일리시의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는데, 다만 젊은 남성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크게 이질감 없이 대체될 수도 있겠다 싶은 느낌은 조금.

낯선 타지로 생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와 현대의 삶의 속도가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그저 막연한 과거의 회상 같기도.


- 아일리시는 이런 생각들이 되도록 빨리 스쳐 가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머릿속이 현실적인 두려움 혹은 불안으로 치달을 때는 생각을 멈췄다. 더 나쁘게는 이 세계를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제 다시는 이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지 못할 거라는, 남은 평생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의 싸움이 될 거라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 57

- 어머니나 친구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는 까닭에 미국에서 보낸 나날들이 고향에서 보내는 이 시간과는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일종의 환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둘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브루클린에서 두 번의 추운 겨울과 힘들었던 숱한 나날에 맞서 싸우고, 사랑에 빠졌던 한 사람과, 어머니의 딸로서 모두가 아는, 아니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는 또 한 사람. - 372

- 문득 잭이 자신의 감정을 아무한테도, 심지어 형들한테도 말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아일리시는 잭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세 오빠 모두 같은 일을 겪었고, 누구 하나가 향수병에 걸리면 눈치껏 알아채고는 서로 도왔을지도 모른다. 반면 자기한테 그런 일이 생기면, 그녀는 철저히 혼자일 것이다. 그래서 아일리시는 자신이 브루클린에 도착해서 마주할 그 어떤 일과 감정에도 모두 맞설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랐다. - 70

- 자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중요한 건 그렇게 보이는 거야. - 218


2026. apr.

#브루클린 #콜럼토빈 #오숙은옮김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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