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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안락의 섬이 정말 있으면 좋겠고.
인간의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을 다채롭게 펼쳐 보였다.
특히나 가족관계를 통해서...
부재와 결여, 죄책감, 의무.....
소재의 파고가 높은 편이지만
의외로 읽는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평정심으로 읽었다.
그런 대비가 좋았음.
- 선희가 나에게서 분리되려 한다. 내 젊음과 노동력과 시간을 잡아먹어 홀로 빛나게 된 꽃이 뿌리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꽃은 뿌리 없이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자유를 느낄지언정 곧 말라 죽어버릴 텐데. 그건 나에게도 선희에게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 108
- 역시 운 때문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실력이나 열정은 결과와 비례하지 않을뿐더러 운은 짐작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로는 운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반쪽 머리의 천사, 133
- 내 이름이 우승하인 것도, 이름처럼 전국의 각종 육상 대회에서 상을 휩쓴 것도, 하다못해 출전을 앞두고 발목을 접질렸을 때도 전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주인공의 극적인 성공을 위한 일시적인 시련에 불과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있다고 하더라도, 꼭 모든 사건에 대단한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걸 안다. 세상은 마구잡이로 흘러간다. - 반쪽 머리의 천사, 142
- 갑자기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와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금환일식을 목격한 날이었다. 장난감처럼 생긴 일식 관측용 안경을 끼고서 어두워진 하늘을 빤히 보며 난생처음, 나는 경외감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건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할 정도로 벅차오르지만, 동시에 서글픈 기분이었다. 갑작스레 다른 세계로 동떨어지는 듯함 감각. 그 낯선 외로움에 나는 고개를 쳐든 엄마의 손을 붙잡고 집에 가자고 생떼를 썼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자그마한 나에겐 마냥 거대한 부피감으로 감각되는 대상이 저 우주의 시선으로는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주는 괴리감이 두려웠던 것이다. - 안락의 섬, 313
- 남은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꿈속 플루와 라미를 생각했다. 안락의 섬과 무의미한 바깥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을, 시작과 끝을, 종말과 재건을, 망각과 사랑을 생각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의 기억들. 이 섬에서도 그런 기억은 계속 쌓였으니 나는 아마 그만큼 더 슬퍼질 것이다. 어디선가 하피가, 라미가, 플루가 이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걸 없는 셈 치고 무로 돌아가는 건 너무 슬프지 않아? 기억이란 쇠퇴하지, 그리고 소중한 것은 다시 생겨나. 수수,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어. - 안락의 섬, 324
2025. oct.
#치즈이야기 #조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