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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운명을 맡기다
지향미 지음 / 프라이데이콤마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드라마에서 이런 말을 한다.
"다 변해도, 돈하고 사람은 안 변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노인의 성찰이라고 보아도 되는 대사이다.
과연 그럴까?
사람은 안 변해도 사람의 감정은 변할 수 있고, 돈은 안 변해도 돈의 쓰임은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변하지 않는 본질이란 무엇일까?
본디 탐욕스런 사람은 돈을 영원히 좋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변화가 보수적인 것은 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책의 내용이나, 쟝르, 혹은 작가의 국적이나 나이등은 유행을 타기도 한다.
그것 역시 최근의 경향이지만, 지금 서점에 나가 깔려있는 책들을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감각적이고 눈길을 확 끄는 표지, 노골적이고 저돌적인 책의 제목, 고급스러운 디자인등을 보면 '의사 전달'이라는 책의 본래의 목적이 전도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비쥬얼 세대이다.
어린 시절부터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면서 자랐고, 컴퓨터 모니터로 세상과 소통하는 세대이다.
그들의 관심을 끌자면 비쥬얼이 강한 책이 필요할 것이다.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하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바람에 운명을 맡기다>는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에 앞서는 아방가르드한 책일지도 모른다.
책의 전체가 책이라기 보다는 한 여성의 다이어리인 듯 이국적인 스탬프와 사진과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한다.
그리고 군데군데 작은 글씨로 글쓴이의 마음이 드러난다.
디자이너, 홍보 등의 요즘 아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는 누구나 동경하는 파리, 런던, 베를린, 앤트워프와 브뤼셀등 가장 감각적이고 고풍스런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멋진 숍과 벼룩 시장을 구경한다.
그리고 시와 음악과 그림을 넘나들면서, 화가, 시인 소설가, 배우, 디자이너등을 넘나드는 문화의 교차점을 찾는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은 글쓴이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한다는 나의 고리타분한 생각으로는 그녀의 글을 참으로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보여진다.
아름다운 사진이 바탕이 되어서 너무 화려한 바람에 작은 글씨들은 찾아서 읽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사진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읽는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글씨를 원하는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일관성이 없어서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글들은 여행지에서 잠자기 전에 끄적인 낙서같은 느낌으로 문법이 맞지 않는 비문이 난무하고, 지나친 외국어의 자연스런 사용은 정확한 의사 전달에 방해가 된다.
지금의 느낌으로는 그저 몽환적인 유럽의 풍경 속을 거닐었던 기분뿐이다.
이것이 글쓴이가 원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