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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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라이터인 신이치는 늘 수줍고 남 앞에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가 하는 일은 SF소설의 번역이지만 지명도가 없어서 늘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잡지의 객원 지자로 일하고 있다. 학벌도 별로고 키도 작고 돈도 잘 못버는 그야말로 3저인 남자인 것이다.

적은 수입이지만 근근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입이 떡 벌어질 행운이 찾아왔다.

멋지고 능력있고 똑똑한 여자 리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동안 대놓고 신이치를 무시하던 학교 선후배나 직장 동료들은 리카코의 남편 신이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신이치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으니 아내 리카코에 대한 것이다.

늘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는 성질이 사나워 고집을 부리고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곤 한다.

게다가 집안 일에 젬병이라서 어느 새 신이치가 가정 주부의 일을 맡게 되었다.

항상 깔끔한 신이치와는 달리 너무나 지저분한 리카코. 아내의 역할이라곤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못되어 먹은 여자인 것이다.

신이치는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기가 찾아온다.

힘겨운 임신 기간동안 아내의 시중을 들고, 성미를 받아주고, 살림을 하고, 출산 준비를 한다.

심지어 아기의 출산용품조차도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준비를 하게 된다.

갓 태어난 미키는 너무너무 사랑스런 딸이지만 그 아이를 돌보는 일 역시 신이치가 맡는다.

그에게는 딸이 둘이나 생겨버린 기분이다.

그런데 아내 리카코는 어느틈에 복직해 버리고 갓난 아기를 돌보아 줄 곳은 없다.

아기를 돌보느라 프리랜서 일도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사람들과도 만나지 못하니 부자캡슐이 되어버린 느낌에 힘들어한다.

그러면서도 아기의 예쁜 모습에 감동하고, 어설픈 "아빠" 소리에 모든 것을 잊는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뭔가 심각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지 순진해 터진 남자.

그에 반해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능력있으나 사악한 아내.

신이치의 의심대로 혹시나 무슨 다른 의도로 신이치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읽히는 바람에 아침에 시작한 것이 오후에 다 읽게 되었다.)

그의 아내 리카코는 신이치의 말마따나 어린 아이같은 여성인 것 같다.

남들에게는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나 늘 편하고 의지하고픈 남편에게는 마구마구 성질을 부려대는 철부지 아내말이다.

어쩌면 자기에게 딱 맞는 그런 남자를 찾아내었는지.

누구나 살 길을 있는 법인가 보다.

 

초보아빠이자 엄마인 신이치의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보면서 웃음을 참기는 어려웠다.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면서 어찌나 허둥대었는가 말이다.

내게 신이치같은 남편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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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펭귄클래식 36
다니엘 디포 지음,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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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좋아하던 책들이 몇 권 있다.

그 책들의 제목이나 등장인물의 이름을 들으면 그 시절 내가 그 책을 읽던 방의 냄새와 방바닥의 따스한 온기가 떠오른다.

부엌에서는 찌개 끓는 소리가 들리고, 말라깽이에다가 울보였던 동생은 낮잠을 자곤 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지 못해서 오히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던 그 시절.

책을 통해서 들어간 세계는 어찌나 나를 흥분시켰던지 모른다.

 

이 책 <로빈슨 크루소>가 그 대표적인 책이다.

항해를 하던 중 난파를 당한 로빈슨이 한 섬에 도착하여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마련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을 만끽하게 하였다.

무인도라는 아득한 공간에 대한 부러움과 그리고 스스로 물건과 음식들을 만들어가는 로빈슨의 삶에 대한 연민이 어쩐지 어린 나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서 지금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촉매가 되곤한다.

 

항상 내게는 그리움의 소재가 된 <로빈슨 크루소>를 완역본으로 읽어보고픈 소망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은 어린이용이어서 아무래도 그 내용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이번에 읽게된 펭귄의 <로빈슨 크루소>는 서문과 판본에 대한 해설, 그리고 본문, 작가 연보, 주해를 포함하여 총 435쪽에 이르렀다.

결코 짧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한 로빈슨의 삶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정보들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기까지 했다.

서문에서는 시대적 배경과 작가 디포의 삶을 통해서 '로빈슨 크루소'라는 인간의 사상과 행위에 대해 분석하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여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어린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알게되었다.

물론 모든 것이 당시의 사회적, 시대적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먼저 로빈슨이 스스로 '절망의 섬'으로 부른 섬에 당도하기 전의 그의 삶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게되어서 그가 섬에서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게되었다.

그는 여러번 위험한 항해를 하고 해적에게 납치되어서 노예의 삶을 산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해적에게서 탈출할 때 자기를 도와준 노예 소년 수리를 자신을 구해준 포루투갈 선장에게 팔아넘긴다. 게다가 그가 난파하게 된 마지막 항해의 목적은 아프리카 해안에 당도하여 노예를 사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섬에 찾아 오게 된 프라이데이를 스스럼없이 노예롤 삼는다. 그와 그 시대인들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학은 사회의 거울이라지 않는가.

또한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따른 것이지만, 너무나 종교적인 색채들(가톨릭 교도, 기독교도, 이교도들)이 짙어서 읽는 내내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별할 때 종교를 이용했다. 로빈슨은 프라이데이를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데 프라이데이의 의사를 묻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프라이데이를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니까 그는 프라이데이를 개종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그 섬의 왕이라 칭하는 봉건적인 사고들을 보여주고, 탈출한 후에는 자기(?)의 섬에 여자를 사서 보내기까지 한다.

 

어릴 때는 깨닫지 못했던 못마땅한 점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여전히 로빈슨이 섬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로웠다. 더 길고 더 자세하게 나는 로빈슨이 집을 짓고 빵을 굽고 염소젖을 짜는 일들을 구경했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그는 일기를 썼고, 날짜를 헤아려 신을 찬미하며 경건한 생활을 했다.

그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버려진 삶에서도 신의 뜻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상황.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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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책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코널리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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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언제 죽게될 지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누구나 자기만은 불멸의 존재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본 사람은 그날부터 잠자는 것, 먹는 것은 물론 그 어떤 삶의 축복도 즐길 수가 없고 자기가 본 죽음만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더이상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오직 두려움과 슬픔만이 가득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이 찾아오면 그들은 마침내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

                                                                    

                                                                                       본문 389-390쪽

 

 같은 글을 읽거나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읽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들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다.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공통의 정서라는 것도 있다. (사실 누구나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개성이라는 부분은 보편성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정서를 형성하는 바탕에는 태초에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지속되어 온 각종 문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중에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서양에서는 특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그 대표적인 문화의 아이콘이다.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아이콘은 바로 이 동화라는 이름의 전설들이다.

 어린이들에게 들려 주기 좋게 각색되고 첨삭되어서 우리에게까지 흘러온 이 동화들은 실은 알고 보면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말이 애들 말마따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우리는 별 생각없이 흘리는 경우가 많지만 곰곰이 내용을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를 과연 어린이에게 들려줘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 <잃어버린 것들의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동화의 아이콘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름답게 각색되기 이전의 본래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가끔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 데이빗은 유럽에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엄마를 잃는다.

늘 책을 함께 읽어주던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서 데이빗은 그 나이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나, 엄마는 떠나고 말았다.

혹시나 자기가 잘못해서 엄마가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시달리며 환상을 보고 책들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데이빗에게 더욱 안 좋은 소식은 아빠의 재혼과 새엄마 로즈와 새 동생 조지의 출현이었다.

로즈의 집으로 이사 온 그들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으나 데이빗은 로즈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 더 책들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방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죽은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는 데이빗에게 구해달라는 말을 하고, 데이빗은 지하정원의 문을 거쳐서 엄마를 찾으러 간다.

커다란 나무의 구멍을 통해서 어딘가에 도착한 데이빗. 그런데, 그 세계는 너무나 위험한 세계였다.

숲 속에는 늑대인간이 사람을 위협하고 어린아이의 얼굴울 닮은 꽃들이 두려운 눈으로 데이빗을 바라본다.

그 이상한 세계에서 데이빗은 왕을 만나야하는 이유를 찾는다. 왕만이 그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을 만나러 가는 여정동안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만나고,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을 보고 트롤과 내기를 하고 하피들을 피한다.

숲사람을 만나고, 롤랜드와 플렛처에게서 부성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떼를 쓰고 동생을 질투하는 어린 아이같던 데이빗은 자신과 주변을 지키는 책임감과 사랑을 배워간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그 많은 동화와 전설들을 모른다면 이 책은 너무나 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한 책일 것이다.

빨간 모자, 거위소녀, 미녀와 야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등이 이 소설을 엮어가는 중요한 사슬이 되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사실들이 거짓일 경우도 있다.

빨깐 모자가 귀엽기만 한 소녀가 아닐 수 도 있다.

난장이들이 모두 백설공주를 사랑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어른들의 마음 속에 아직도 잠자고 있는 어린 아이를 깨우는 이 책은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는 동화의 의미 만큼이나 사실의 뒷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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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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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죽음만큼 강하고 지옥처럼 가혹하다."

죽음은 육신에서 영혼을 분리하지만, 사랑은 영혼에서 전부를 분리한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독일 신비주의 설교 '영원한 탄생'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가고일'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성당의 지붕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괴물인 가고일은 내게는 어쩐지 너무 슬픈 짐승이었다.

무엇인가 거대한 힘에 붙잡혀서 날개를 펼치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운명이 슬펐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 "나"의 이름은 '가고일'인지도 모른다.

 

타락하긴 했으나 나름 행복한 인생을 살던 매력 만점의 그에게 어느 날, 사고를 당한다.

약과 술에 취한 그는 자신의 몸이 도화선이 되어서 블이 난 것을 경험한다.

"사고는 마치 사랑처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종종 격렬하게 기습한다."(본문 9쪽)

그리고 모든 게 변했다.

아름다웠던 그는 끔찍한 괴물의 형상(가고일)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지나 온 세월을 반추하고 스스로의 죄를 깨달으면서,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자살을 꿈꾸던 그에게 미친 여자 마리안네가 나타난다.

700년 전 14세기부터 너를 사랑해 왔다는 그녀.

아름다운 머리칼과 빛나는 초록눈이 매혹적인 마리안네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둘 사이의 사랑을 증명한다.

흑사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죽음을 선택한 이탈리아 대장장이 프란체스코, 바다에 나간 톰을 기다리다가 선 자리에서 죽어 간 비키,  사랑을 위해 산 채로 묻힌 유리 세공사 세이와 죽어가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이를 살린 시귀르드르의 이야기들은 700년 동안의 마리안네와 '나'의 사랑이야기를 증명한다.

14세기 수도원에 버려진 아이 마리안네와 전직 용병이었던 석공의 슬픈 사랑은 촉망받고 실력있던 필경사이자 주님께 서원한 수녀였던 마리안네로 하여금 세상의 고난과 마주하게 한다.

그들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그들의 고통은 너무도 커서 살라의 완성을 보지 못하지만, 영원하 사랑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만난 마리안네는 자신의 심장을 가고일들에게 나누어주고 사라진다.

마지막 남은 심장은 네게 주었으므로 네가 그것을 해방해야만 내가 주님에게 이를 수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이소설의 주된 축은 단테의 <지옥편>이다. 그 안의 다양한 괴물과 지옥의 모습들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하게 하는 키워드가 된다. 주인공 '나'는 프란체스코와 시귀르드르와 세이와 비키의 안내로, 마리안네의 힘을 빌어서 그 지옥을 건넌다.

 

누구에게나 마치 사고처럼 다가오는 사랑이 어쩌면 700년 전에 이미 시작되어 온 사랑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은 너무나 당연해서 이제야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어느 언어로든 사랑을 말하면 들린다.

마음으로 듣기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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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동경 - 김경주 시인, 문봉섭 감독의 도쿄 에세이
김경주.문봉섭 지음 / 넥서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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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와 '동경'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근사하게 어울릴 줄이야.

이 동경은 東京이지만 어딘지 憧憬의 냄새가 난다.

간절히 그리운 그 곳,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타자기와 낡은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그 곳이다.

그 곳에 갈 때는 꼭 연필을 챙겨야 한다.

낯선 그 곳에서 보랏빛 저녁을 맞을 때,

저들은 스스럼없이 그들의 쉴 곳을 찾아가는 그 시간에,

낯선 까페의 테라스에 어설프게 앉아서 영화와 사진과 음악과 시를 떠올릴 때,

그 곳의 그 냄새를 적어둘 연필이 꼭 필요하다.

책장마다 빼곡한 그 곳의 풍경들,

사람과 자전거와 골목들에서 웃음과 슬픔이 번져나고

가로등의 창백한 빛은 그 곳에도 낙서와 술잔과 한숨과 눈물이 존재함을 일깨운다.

빗물만 가득한 포스트박스는 자신을 가득 채우던 그 사랑의 언어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골덴가에서 올드보이를 떠올린다.

 

세상 어느 곳에도 세상에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담담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젊은이가 있기에,

낙서가 그림이 되고 낙서가 시가 된다.

작은 사각틀에 담긴 저 곳의 풍경이 오늘 나를 가라앉게 한다.

아마도 화면 가득 비가 내리는 동경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도 거기인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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