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라이터인 신이치는 늘 수줍고 남 앞에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가 하는 일은 SF소설의 번역이지만 지명도가 없어서 늘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잡지의 객원 지자로 일하고 있다. 학벌도 별로고 키도 작고 돈도 잘 못버는 그야말로 3저인 남자인 것이다. 적은 수입이지만 근근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입이 떡 벌어질 행운이 찾아왔다. 멋지고 능력있고 똑똑한 여자 리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동안 대놓고 신이치를 무시하던 학교 선후배나 직장 동료들은 리카코의 남편 신이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신이치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으니 아내 리카코에 대한 것이다. 늘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는 성질이 사나워 고집을 부리고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곤 한다. 게다가 집안 일에 젬병이라서 어느 새 신이치가 가정 주부의 일을 맡게 되었다. 항상 깔끔한 신이치와는 달리 너무나 지저분한 리카코. 아내의 역할이라곤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못되어 먹은 여자인 것이다. 신이치는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기가 찾아온다. 힘겨운 임신 기간동안 아내의 시중을 들고, 성미를 받아주고, 살림을 하고, 출산 준비를 한다. 심지어 아기의 출산용품조차도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준비를 하게 된다. 갓 태어난 미키는 너무너무 사랑스런 딸이지만 그 아이를 돌보는 일 역시 신이치가 맡는다. 그에게는 딸이 둘이나 생겨버린 기분이다. 그런데 아내 리카코는 어느틈에 복직해 버리고 갓난 아기를 돌보아 줄 곳은 없다. 아기를 돌보느라 프리랜서 일도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사람들과도 만나지 못하니 부자캡슐이 되어버린 느낌에 힘들어한다. 그러면서도 아기의 예쁜 모습에 감동하고, 어설픈 "아빠" 소리에 모든 것을 잊는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뭔가 심각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지 순진해 터진 남자. 그에 반해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능력있으나 사악한 아내. 신이치의 의심대로 혹시나 무슨 다른 의도로 신이치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읽히는 바람에 아침에 시작한 것이 오후에 다 읽게 되었다.) 그의 아내 리카코는 신이치의 말마따나 어린 아이같은 여성인 것 같다. 남들에게는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나 늘 편하고 의지하고픈 남편에게는 마구마구 성질을 부려대는 철부지 아내말이다. 어쩌면 자기에게 딱 맞는 그런 남자를 찾아내었는지. 누구나 살 길을 있는 법인가 보다. 초보아빠이자 엄마인 신이치의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보면서 웃음을 참기는 어려웠다.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면서 어찌나 허둥대었는가 말이다. 내게 신이치같은 남편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