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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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부시맨을 기억한다.

아프리카 사막의 부시맨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발견한다.

그 우연한 발견은 조용하기만한 부시맨의 마을에 일대 파란을 몰고오는데...........

 

그런데, 그 부시맨이라는 호칭이 실은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부시맨이고 호텐토트이지 그들의 이름은 !쿵San산족이다. 칼라하리 사막 근처에 살면서 인류의 가장 오랜 생존방식인 채집으로 일상을 꾸려가는 민족이다.

다른 아프리칸들보다 훨씬 밝은 피부를 지녔고 채집과 사냥으로 다져진 그들의 몸은 날씬하고 건강하다.

그들은 오두막을 짓고 모여살며 아이들과 부모가 오랜 시간을 같은 잠자리에서 생활한다. 또, 슬링이라는 도구로 아이를 업고 다니며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젖을 물린다. 자기 자랑을 하거나 교만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모든 음식을 당연히 나눈다.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제 자식이거나 남의 자식이거나 가리지 않고 돌본다. 어떤 인류 문화권에서보다 여성의 입지가 강하다. 남자와 여자가 특별히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어린 소녀의 나이에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흔히들 남편이 아내를 키운다는 표현을 한다.

 

인류학을 전공한 남편을 따라서 칼라하리에서 연구를 시작한 저자는 실은 영문학도라고 한다. 

그녀는 인류의 근원적인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조상들처럼 생할하는 !쿵족을 만났고 아름답고 활달한 여인 니사를 만나서 이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아마도 저자는 인류학을 공부할 운명이었나보다. 니사를 우리에게 데려다 주는 것이 그녀의 소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쿵족의 여성인 니사- 본명은 아니라고 한다-의 첫인상은 저자에게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니사는 그 유려한 말솜씨를 알아본 저자와 긴 시간동안 인터뷰를 한다. 처음에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였지만, 차츰 그들의 관계는 마치 아줌마와 조카처럼 친근하게 발전을 한다. 니사는 저자를 "마저리, 나의 조카!"라고 부른다.

책의 내용은 !쿵족 여성 니사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한 생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니사는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가 젖을 떼던 무렵부터 기억을 한다고 주장한다. 엄마는 젖을 떼려고 쓴 약을 발랐으나 니사는 자꾸만 젖을 보챘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네와 그리 비슷한지.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 오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니사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지만, 신랑을 거부한다. 그리고도 몇 차례 부모는 니사를 결혼 시키려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서야 제대로된 결혼을 한다. 남편은 타셰이라는 이름의 남자다. 여러명의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소년과 소녀로 자란 것은 둘 뿐이었다. 그러나 그 둘도 사고와 병으로 잃고, 남편 또한 아이들이 어릴 당시에 죽었다. 그 뒤로 베사와 재혼하였으나 베사가 그녀를 버리고 떠난 뒤에 이혼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남편이 지금까지 같이 사는 보라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니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고 남편이 죽고 아이들을 잃는다. 그러면서도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하고 살아간다. 그녀는 늘 가족들을 거두어 먹였고 모닥불을 지켰다.

 

니사의 삶은 변화기의 !쿵족여성의 삶으로 많은 격랑과 고통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니사는 그것을 특별히 불행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니사는 "살고 또 살았다."라는 표현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의 갈피갈피에 얼마나 큰 결심과 고통과 선택이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니사의 "살고 또 살았다."는 표현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 !쿵족여인 니사의 삶이 전 세계의 다른 모든 여성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부모의 사랑 아래서 성장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늙어지는 여성의 삶의 큰 틀이 어디라고 다르겠는가 말이다.

니사는 그 삶의 과정 속에서 충분히 표현하고 느끼고 즐긴다. 인류의 조상과 가장 닮은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경건하고, 낙천적이다. 병이 나서 치료의 기도를 받아도 낳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의 나라로 갈 때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신의 뜻이 아닐 것이다. 그들처럼 경건하면서도 즐겁게 즐기며 살아야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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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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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새로 생긴 출판사의 이름이 눈길을 끈다.

<책과 콩나무>라는 이름의 출판사이다. '잭과 콩나무'라면 우리가 다들 잘 알다시피 어린이 동화 이름이다. 어린 시절 쭉쭉 자라는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잭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읽은 동화책은 삽화가 근사했었다. 잭이 하늘에서 본 궁전의 모습이라니,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책과 콩나무> 라는 이름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 모든 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이름대로 이 출판사에서는 청소년의 성장을 돕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지금까지 출판된 책들을 다 읽어보았는데, 모두가 성장소설이다.

 나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성장소설은 나에겐 교과서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의 일을 하고 있다. 가끔씩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인 "선생님'이란 말에 느껴지는 무게를 두려워하긴 하지만 오랜 시간 나의 이름은 선생님이었다. 또한 내게는 십대의 자식이 둘이나 있다. 한창 예민하기도 하고 다루기 어렵기도 하지만

늘 웃음과 사랑을 주는 귀여운 아이들이다. 그러기에 더욱 성장 소설이 내게는 귀하다. 조숙한 아이들이 은밀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성장소설은 내 아이들, 내 학생들을 이해하는 열쇠를 쥐어주기도 하고, 그들과 나의 공감대를 열어놓아 더욱 친숙하게 다가서게 한다.

 

 이 책 <누더기 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독특한 종교를 믿는 부모의 아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때문에 왕따의 삶을 사는 착한 마사.

마사는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주는 괴상한 옷을 입고 다닌다. 마사의 집에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텔레비전도 없다. 라디오는 뉴스만 들을 수 있다. 부모가 다니는 교회인 의로운 사람들은 다른 교회와는 다르다. 그들은 금욕을 믿음의 실천으로 보는 듯하다. 그들은 육체적 즐거움이나 편안한 생활을 죄악시한다. 그래도 마사는 십대 소녀답게 몰래 음악을 듣고 미래를 꿈꾼다. 언젠가 자라면 이 집을 떠나 메리 언니처럼 자유로와지리라. 그런 마사에게 친구가 생긴다. 그는 전학 온 스콧이다. 이유없이 마사를 괴롭히는 아이들 앞에서 마사의 편을 들어주었다가 같이 따돌림을 당하지만, 스콧은 마사를 더욱 도와주고 싶어한다. 게다가 마사의 집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바로 지하에 사는 '혐오'였다 혐오는 마사가 돌봐주어야할 무엇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사는 부모,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의 집, 그리고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마사의 생활과 혐오가 마사에겐 너무나 큰 고통이지만 스콧과의 우정으로 조금은 행복해진 마사에게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용감하게 친구를 돕는 스콧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을 보면 영문도 모른 채 함께 행동하곤 한다. 그것은 다수의 무리 속에 섞여야 안전하다는 정글의 법칙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가엾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앞장 서서 도와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자신도 함께 따돌림을 받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콧은 그러지 않았고 그의 용감한 행동은 마사의 삶을 구원했다. 자신의 사소한 용기가 친구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음을 우리의 아이들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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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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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만나게 될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간이 갖는 다양한 즐거움 중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교감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게 때문이다.

아무리 어여쁜 사람도, 아무리 인격이 훌륭한 사람도, 아무리 부와 명예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나와 비슷한 지적 관심이 없다면 잠깐의 즐거운 만남은 가능할지라도 긴 시간 즐거움을 함께 하기는 어렵다.

오랜 세월 두고두고 멀리 있어도 가까운 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다.

나와 같은 책을 읽은 사람,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사람을 우리는 지음(知音)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지적인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인가 두근거렸나보다.

나의 지성이 부족하므로 영구의 신사인 저자의 지성을 배우고 싶었다.

삶과 사람과 우주와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후학들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들을 기대했었다.

 

"지적 탐구가 지닌 매력의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씩 우주 영원의 진리를 탐구해 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확고한 신뢰를 품게 되면 알려지지 않은 것, 혹은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을 지배하고 있는 신의 법칙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게 되는 지적 탐구가 지닌 매력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까요

 

해머튼 서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총 10파트로 나우어 지적인 삶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지적 생활에서의 육체적 기반에서는 건강의 중요성에 대하여, 지적 생활에 있어서 정신적 기반에서는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지적 삶에 있어서의 시간에서는 학문 연구를 위한 시간 확보의 어려움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을 들어서 편지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지적인 삶에서의 금전의 필요성과 그것에 대한 자세,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결혼에서는 저자의 결혼에 대한 생각과 여성에 대한 가치관을 엿보았다. 물론 모두다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와 나는 살아가는 시대와 환경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 이외에도 교제와 고독, 지적 즐거움, 그리고 직업과 주저 환경까지 저자가 다루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것은 19세기의 영국식 지적인 삶이다. 현대와는 많이 다른 고루한 생각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나의 신경을 자극하기도 하고,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책의 분량은 본문만 449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하루에 읽기에는 벅차서 파트를 나누어 여러 주에 걸쳐서 꼼꼼히 읽으면서 밑줄을 긋기도 하고 메모를 달기도 했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시대적 괴리가 너무 컸다.

 

그러나, 후학들에게 자적 생활의 소중한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방대한 지식과 삶에 대한 근면 성실한 태도와 가치관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귀감이 된다.

 

"진실한 결혼이란 숲 속게 바짝 붙여서 심은 두 그루의 나무가 오랜 세월 조금씩 서로 바라보면서 성장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본문 236쪽  지적인 삶에서의 결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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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다이어리 2008 - Bon Voyage
김성신 지음 / 샘터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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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는 것이다.

읽을거리가 없어서 국화빵을 사온 봉지까지 읽었다는 사람, 학교 도서관을 자기집 서재인 양 드나들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또 하나는 늘 글을 썼다는 것이다. 항상 무엇이나 기록하고 메모했다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래서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한다는 옛날 그 중국 어른의 이야기가 진짜 참말이란 것을 안다.

글 쓰는 연습을 쉽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일기 쓰기이다.

어떤 아이들은 일기를 쓰려면 매일 똑같은 일만 일어나기 때문에 쓸게 없다고 한다거나, 또는 하루의 일과를 모조리 쓰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일기, 잘 쓴 일기란 하루의 사건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 하나만을 골라서 그것에 대한 깊은 생각이 곁들여지면 된다.

어린 시절에 이런 것을 알았더라면 그 긴 방학을 그렇게 괴롭게 보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일기 쓰기가 가장 싫었다.

일기가 싫어서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렇게 기록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그동안 그런대로 총기가 좋아서 특별히 메모를 남길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일고 있는 책이 언젠가 읽은 책인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갖고 있는 책을 또 사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탁상용 달력에 읽은 책의 제목을 써 넣는 것이었다.

한달 동안 읽은 책이 기록된 달력은 참 뿌듯했다.

그러다가 자꾸만 쓸 거리가 늘어났다.

그래서 다이어리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 얻었다.

날마다 일과 중 특별한 것, 꼭 기억해야할 전화번호, 혹은 입금할 계좌번호들이 읽은 책의 제목과 함께 적혀있는 다이어리는 이젠 너무나 소중한 재산이다.

지나간 일년을 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한다.

다이어리를 기록하기 시작한 지 이젠 3년 째 올해는 너무나 특별한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바로 <악몽 다이어리> 제목이 악몽이라서 어째 이상하지 않은가?

악몽은 樂夢 이다. 그야말로 즐거운 꿈이다. 책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로 핸드백에 쏘옥 들어간다.

월간 계획이 있어서 한달의 일정을 계획하고, 양쪽으로 펼쳐지는 한 장이 한 주일이다.

너무 넓어서 휑하지도 않고 너무 좁아서 깨알같이 쓸 필요도 없다. 게다가 깔끔한 디자인, 예쁜 캐릭터, 맨 뒷쪽의 메모지는 읽을 책의 목록으로 채우고 싶게 커피빛이다.

누구에게나 잘아하고 싶은 다이어리이다. 주변에 탐내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모양의 스티커와 꼭 어울리는 상자까지 내 맘에 쏙 든다. 소녀시절 이후로 이런 예쁜 물건을 나만을 위해서 마련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 작은 책 속에 나의 2009년을 담을 생각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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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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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의 표지에는 붉은 머리의 백인 여성이 도발적인 눈빛으로 독자를 노려보고 있다.

커다란 눈동자와 섹시한 입술로 짓고 있는 묘한 미소는 이 책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 소설의 부제는 "20세기 누아르 소설의 고전"이다.

프랑스어로 '검다'라는 뜻인 누아르는 영화와 소설의 장르에서 곧잘 사용되는 용어로 누아르 소설이란 "음침하고 무언가 악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지는 복잡한 플롯의 탐정소설 "을 가리킨다고 한다. 흔히들 '홍콩 누아르'라고 하는 영화들이 대부분 조직 폭력배의 알력과 다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누아르란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누아르 소설의 초기작이어서인지 탐정 소설의 분위기와 복잡한 플롯은 느끼기 어려웠고, 오히려 줄거리는 아주 간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처음 소설을 읽기 전에는 광고와 표지의 그림만 보고 주인공이 여자인 줄 알았다.

 

 주인공 리 앤더슨은 어느날 가상 도시인 벅튼에 나타난다. 그는 클렘이라는 형의 친구에게 이 일자리를 얻었다. 리는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소설의 전편에서 서서히 밝혀지는데,  리의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되고 이 소설의 큰 줄기가 된다. 리는 백인들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다. 리는 백인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백인 여자들을 농락하기로 한다. 사실은 흑인의 피가 1/8이나 흐르지만 완벽한 백인의 외모를 갖춘데다가 아름다운 몸매와 약간의 경제적 여유, 뛰어난 기타실력으로 벅튼의 망나니 여자들을 정복해 가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과제가 나타난다. 아름답고 도도한 부잣집의 두 딸들인 애스퀴스 자매들이었다. 애스퀴스 자매들은 그가 같이 놀다가 버린 주디나 지키와는 달랐다. 리는 이 둘을 농락한 뒤에 죽여서 동생의 원수를 갚을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둘에게 접근을 하지만, 그것이 그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동안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리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작품 안에서 리가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은 정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백인들을 이 땅에서 없애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한 두명의 백인을 죽인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리도 알 것이다.

 짧지는 않은 경험의 길이를 갖고 있는 나로서도 리의 행동은 스스로를 버리는 자학적인 행동으로 밖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결국엔 가장 상처받은 이는 복수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리였던 것이다. 누구든 미운 사람이 생기면 가장 힘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이 뿜는 독 때문에 스스로가 위험에 빠진다고 한다. 리는 스스로가 만든 구렁텅이에 빠져서 죽어간 셈이다.

 

 가끔 작가의 의도나 글의 목적을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나의 배움이 부족해서 그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자라서는 글의 내용이 너무 수준이 높아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들인지 모른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읽는 사람이 이해한만큼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누구나 이해하는 말로 쉽게 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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