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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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4 :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저, 2022(1647)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돌아가신지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위 대사는 영화 "아이언맨 2 Ironman 2 (2010)"의 한장면에서 나오는 토니 스타크의 감탄이다. 극중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가슴에 위치한 "아크 원자로"의 동력원이 거꾸로 자기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대체할 물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시간만 흘러가고, 좀처럼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서 애를 태우던 와중에 과거에 아버지(하워드 스타크)가 남긴 영상과 유품에서 힌트를 얻어 "신물질"을 합성하는데 성공하며, 아버지의 혜안에 경의를 바치며 이 대사를 내뱉는다.

우리가 가끔 "고전"이라는 것들에 매료될 때가 언제인지를 떠올리면, 앞서 서술한 상황이 자꾸 겹쳐진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인 것들에서 생각하지도 않게, 오늘의 현재에도 그 해답의 실마리를 얻고 도움을 받을 때의 그 경외감...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전"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비단, 문학 뿐 아니라 인간의 행위 양식 전반에 걸쳐서 고전은 유산으로 남아있고, 우리는 여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2. 저자의 의도...

본 저서는 스페인의 위대한 작가, 발타자르 그라시안 Baltasar Gracian (1601~1658)의 역작이다. 17세기 유럽 인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종교인이자 사상가이며, 다수의 저작이 알려져 있다. 그중, 이 책은 평소 자신의 설교 중 큰 반향을 일으킨 것들을 모아 집대성한 작품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일종의 "처세술"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당대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아마도 "진리"의 탐구와 "인간 내면의 성찰"에 대한 사상을 확립하고, 독자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일종의 "잠언집"이다. 성직자로서 일반 대중들을 설교할 때의 경험과 더불어 간결하고도 명료한 인용이나 문장도 적절히 구사하며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작품의 외견상 구성과 더불어 서술하는 방식을 따라가며 느낀 생각은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의 "명상록 Meditation"이다. 비록 황제였으나, 스스로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였던 아우렐리우스는 일기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단상과 지혜, 그리고 교훈에 대해 구도자처럼 기록을 남겨두었고, 이는 현재까지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대표 역작으로 남아있다. 나는 본 작인 "사람을 얻는 지혜"는 다름아닌 그라시안 자신의 "명상록"이었고, 그 위대한 고전에 비견되는 역작을 남기고 싶었던 야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야심은 성공했다!)

게다가 이번 서판에서는 위에 지적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한 페이지씩 할애하여 마치 일기를 읽는듯한 가독성을 최대한 살린 편집을 취하였고, 이는 매우 적절했다고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주 보게되는 각종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이름이나 일화들, 그리고 저자의 몇몇 문장들의 유연함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우상을 섬긴다...(중략) 따라서 저마다의 우상들을 알아내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이다...

앞서 밝혔듯이 그라시안은 엄연한 로마 카톨릭 사제이다. 매우 엄격한 카톨릭의 전통과 규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는 필시 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했을거라 짐작된다. (실제로도 말년에 교회의 허가없이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처벌과 감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문장처럼 과감히 주장을 하는 모습에서 종교인이라기 보다는 사상가로서의 측면이 더 엿보인다. 오히려 이와 같은 유연하고도 현실적인 측면이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추앙받은 근본 이유가 아닐까 사료된다. 단지 종교적 편협함에 머물러 "도덕성"을 설파한게 아니라, 인간 근본의 성찰과 그에 따른 진솔한 고백의 힘은 필시 독자들에게도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왔고, 이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저서로 남게된 힘이리라.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그 문장에 담긴 "통찰력"의 힘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우리가 "성경"이나 불경"을 읽을 때 받는 그 아우라는 문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이란 단어를 쓸 정도로 독자들에게 절대적이다.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인간의 근본을 지적하고,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조언하며, 그 "혜안"으로 마치 우리를 꿰뚫어 보는듯한 그 느낌은 엄청난 힘이자 권위로 자리잡게 된다. 나는 이 책 또한 그러한 아우라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단언코 말한다. 몇 줄을 읽어보면 그 힘에 매료되어 탁월한 지혜의 향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4. 아쉬운 부분...

누군가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일반화의 오류나 너무나도 선명한 저자의 주장에 때로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류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그라시안의 의도와 생각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절제의 미덕을 잃어버린 현대에 이보다 더 좋은 조언을 해주는 작품은 없다. 간결하고도 여운을 남기는 그의 문장과 비유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감흥을 안기며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다시말해, 나는 이 책에서 흠결을 찾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책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더불어 또 하나의 내 인생의 책이 될 것이다.)

5. 나오며...


"고전"은 영원불멸하다. 그 수많은 시간의 도전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 존재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고전"을 읽는다. 그리고 그 권위를 가지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후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책 또한 몇 백년의 담금질에서 생존하여 오늘의 나에게 말한다.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지혜를 목표로 삶을 영위하라..." 라고...나는 기꺼이 그라시안에게 응답할 것이다. "나 또한 당신의 생각을 존중하며 오늘을 살아가겠노라고..." 

#사람을얻는지혜 #발타자르그라시안 #현대지성 #니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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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난청 - 음악에 관한 어떤 산문시
조연호 지음 / 난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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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3 : 행복한 난청 음악에 관한 어떤 산문시, 조연호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I'm singin' in the rain
Just singin' in the rain
What a glorious feeling
I'm happy again.
I'm laughing at clouds.
So dark up above,
The sun's in my heart
And I'm ready for love.

사랑은 비를 타고 내려 추억은 비를 타고 흘러
내리는 빗소리에 또 그댈 떠올려요
눈물은 비를 타고 내려 기억은 비를 타고 흘러
굳은 가슴 적셔 놓고 떠나가네요 비를 타고

위 가사는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늘 꼽히는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g in the rain (1952)"의 동명의 곡을 부르는 한 장면이다. 너무나도 우리에게 그 이미지가 잘 각인되서 무수히 많은 매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인용되는 명장면이다. 그런데 정작 위에 언급한 그 가사를 들여다보면 그다지 대단할 거 없는 통속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누구나 알고 있다. 왜일까.... 아마도 사람들의 뇌리속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행복에 찬 표정으로 흐르는 선율을 따라 기꺼이 사랑에 대한 찬미를 바치는 진 켈리의 그 유려한 "율동"에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 "몸짓"에는 주인공이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이 녹아있고, 마치 마법과도 같은 몸짓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 장면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명장면의 비결이 아닐까...

사실 "음악"의 힘은 참 오묘하다. 수학적으로 일정한 규칙을 가지는 음의 집합이 패턴을 가지고 흐르는 가운데, 우리의 뇌가 즉흥적으로 그에 반응하는 "지각현상"일 뿐인데, 우리가 느끼고, 영향을 받는 그 힘은 지대하다. 우리는 격랑의 감정으로 이끌기도 하고, 홀로 고요한 남극에 가두어 두기도 하니 말이다. (심지어 애국가를 생각해보시면 그 힘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인류는 유사 이래로 음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가져왔으며, 이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지금까지 시인으로 활동한 정식 작가이고, 다수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중견 시인이다. 그런데, 정작 이 저서는 외견상 "시집"은 아니고 일종의 "에세이"에 가까운 모양새를 띄고 있다. 그 흔한 사진이나 일러스트도 없고, 매우 건조하게 보이는 "딱딱한" 그런 글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그런 책이 아니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정제된 언어로 삶에 대해 단상들을 "음악"과 관련하여 풀어나가고 있으며, 그 흐름은 자기의 주관적인 의식의 흐름에 따른다. (일반적인 서사가 아니다.) 따라서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불편할 수도 있지만, 마음을 열고 쭉 지켜보면 저자의 생각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된다. 마치 데이빗 린치 David lynch의 영화를 보듯이 서사가 무시되고, 일련의 "이미지"의 연속으로 일관된 영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때문에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산문으로 읽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운율로 보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작가가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적 스펙트럼에 일단 눈이 띄였다. 순수문학에 가까운 작품들을 주로 내놓았고, 흔히들 생각하는 "클래식"같은 순수음악을 들을거라 고정관념을 가지기 쉬운 배경임에도 그 목록을 보면 대단하다.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락 Progressive rock 으로부터 90년대 모던 락 Modern rock, 제 3세계의 민속음악까지... 일관성이 없다고 느껴질만큼 방대함을 자랑하지만,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보면 일면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삶의 한 순간에서 어떤 상념이나 사색을 각인시키기 마련이다. 다만, 이를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무언가 대상에 연동하여 이 작업을 하게 된다. (이걸 우리는 보통 "추억"이라고들 한다.) 따라서 작가는 "음악"이 그 대상이고, 이는 마치 최근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음악이 영화의 이미지를 선행해서 배치되는"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음악을 대단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대목이 보인다. 그냥 그 음악의 단순한 정보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글이 아닌 음악에 실려있는 "정서"와 작가가 각인된 "기억"의 단편을 중심으로 이미지들을 서술한다. 따라서 이 흐름에 동참한 독자들은 작가의 의식 흐름과 동기화되어 같이 음악을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런 서술이 가능할려면, 나는 그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심을 두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들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고, 그 주관적 서술을 매우 섬세한 단어들의 선택을 통해 운율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과 취향에 관한 책이다. 또한 서두에서도 그러한 의도를 천명하며 독자들을 자신의 서사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는 의도적으로 배제된 느낌이다. 선곡의 센스도 마찬가지여서 저자의 감상을 이해하기 위해 해당 곡의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독자 스스로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다. 나도 상당히 음악을 많이 들어온 애호가라 자부하지만 나조차도 처음 듣는 음악가들이 있는 것을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음악에 대한 서술인데 음악없이 되겠는가! 게다가 음악의 느낌에 대해 자의적인 감성을 주석으로 달고 있는 서적인데 말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범주 내의 곡들을 좀더 택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요즘 "유투브"의 힘을 빌리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것 같다. 정말 웬만한 곡들은 다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격세지감을 느낀다.)

5. 나오며...

다시 한번 말히지만, 이 책은 음악의 소개에 대한 책이 아니다. 분명히 이 책은 "음악을 듣고 난 그 느낌"에 대한 책이다. 따라서 그 음악에 관한 담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음악을 듣고난 후의 생각과 단상들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들을 난 좋아하게 되었다. 단순히 어떤 곡을 "해부하듯이" 감상평을 늘어놓는 글을 기대하고 이 책을 본 것이 아니다. 설령 그에 대해서 동의를 하지 못할 지언정, 나는 저자가 느낀 그 감성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활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더욱이 특유의 감수성이 가득한 표현으로 말이다. 술 한잔에 인생을 노래하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다.

#행복한난청 #조연호 #난다출판사 #호호당 #에세이 #책스타그램

@hoh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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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곁의 산 자들 -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배운 생의 의미
헤일리 캠벨 지음, 서미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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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2 : 죽은 자 곁의 산 자들, 헤일리 켐벨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선생님 : (동수의 볼을 잡고)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말해라 아부지 뭐하시노!"

동수 :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장의사입니더..."

선생님 : (화가 나서) "장의사?! 그래! 이놈아, 느그 아부지는 죽은 사람 해가며 니 공부시키는데, 공부를 이 꼬라지로 하나, 으이?! (바로 따귀를 날린다.)"

위 대사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영화 "친구(2001)"의 유명한 한 장면이다. 영화속 장면에서 성적 미달자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모진 말을 날리는 장면인데, 대사속에서 우리가 "장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은근히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예외없이 "죽은 자"들을 대면하고, 다루는 직업들은 두려워하며, 천시 여겨왔다. 분명히 인간의 "생과 사"는 모두에게 공평히 존재하지만, 유독 죽음과 관련된 직군들에 대해서 편견이 존재해왔다. 왜일까...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거부감의 산물아닐까 싶다. 의도적으로 금기시하고, 외면하여 애써 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숨기고, 망각하고자 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철학과 같은 분야는 일찍부터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다뤄왔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모든 공포와 의문은 "죽음 후의 정보"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문과 의미부여, 그리고 사색이 난무한 가운데, 그 누구도 정확한 해답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자체는 명백히 삶의 기준이 되었고, 통상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로 대표되는 주제는 지금도 여전히 논의 중이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다. 서문에서, 성장 배경에 만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물에 대한 관찰이나 묘사에 대한 남다른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 중 특이하게도 "죽음"의 이미지에 대한 고찰이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오며, 살아가면서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의문시하던 것은 주로 죽음을 대하는 일반적인 "살아있는" 우리들의 모습, 생각, 의미부여가 아닌, 어쩌면 냉정하고도 다소 집착이 담긴 (자칫 잘못하면 네크로필리아 Necrophilia로 비칠 여지도 다분한) 죽음 자체의 이미지와 그것을 대하는 다양한 인간상들의 담담한 모습이다. 장의사, 해부학자, 데스마스크, 사형집행인, 화장터 기사 등등...어쩌면 매일 무감각하게, 단지 "일"로써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일일히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우리에게 그동안 너무 과장되기도, 또 너무 과소평가되기도 하는 죽음의 이미지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전달해주는 일종의 르포르타주이다. (매우 드라이하게 최대한 다룰려고 하는 의도도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일단 책을 읽어나가면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저자의 "특이한 취향"에 대해 의심할 구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이미지와 사체에 대한 관찰, 또한 그런 것들에 대한 욕구들을 간간히 밝히고 있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라 존중하고 넘어갈수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미지의 것에 대한 "원초적인 마력"과 그 이미지에 탐닉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 강렬한 이미지는 인간에게 있어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종종 예술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저자 또한 그러한 힘에 압도당한 것이 아닐까 추측되고, 어찌보면 그것을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살아가면서 소위 "큰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만나볼 일이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의 공통된 면모가 죽음과 마주하는 직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게 활동을 하고, 또한 그런 사회적 편견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죽음 또한 인간의 당연한 삶의 일부분이며 이를 일찍이 자기의 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고, 이들이 대하는 죽음에 대한 자세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저자는 그런 부분을 가감없이 기록하며, 그들 또한 인간이고,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죽음을 받아들인 용기있는 분들로 묘사하고 있다. 나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사회적 편견없이 인간의 고귀한 마지막을 정중히 대하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오직 "인간만이 다른 인간이 죽었을 경우 묻어주는"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르포르타주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나 스킬텃들의 이미지가 하나도 없는것이 눈에 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죽음의 현장이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욕망은 다들 내면에 숨겨져 있지만, 그것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그 함의가 저자의 의도와 달리 전달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듯 싶다. 다시말해, 의도적으로 죽음의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지 않도록 최대한 드라이하게 서술을 했다는 것이다. 대신 글로써 세세한 디테일과 장면들의 묘사는 생동감이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죽음을 "직시"할 수 있게끔 하고, 우리 삶의 한부분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도한 것이 엿보인다. 

4. 아쉬운 부분...

최근에 "웰빙"을 넘어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만큼, 죽음에 관한 성찰과 의미를 표방하는 저서들이 꽤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와 같이 타국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국내 작가분들도 상당수 저작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이 책 또한 시류에 편승한 기획이라고 다소 폄하될 여지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책을 읽어보면 꽤나 진지한 작품이다. 적어도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죽음에 대한 단상들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런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오해없으시길 바란다.)

또한 얼핏보면 꽃에 가까운 표지디자인으로 인해서 곡해를 당할 여지도 존재한다. 허나 책을 다 읽어보면 너무나도 무거운 주제와 담론으로 갈수도 있는 관계로, 의도적으로 이런 디자인을 택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소설같은 뉘앙스의 표지때문에 이끌려 이 책을 편 독자가 크게 당황할 일은 없으시길 희망한다. 

5. 나오며...

우리는 누구던 한번은 죽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다만 불친절하게도 그 때가 언제인지, 어떤 상황에서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을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 미약한 인간들은 불만을 가지고, 그 힘을 경배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죽음 자체는 그 어떤 사상적 배경이 없다.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다. 사유하는 우리 인간들만이 이렇게 과도하게, 때론 미약하게 생각할 뿐이다.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후한도 없고, 미련도없으려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이 책의 저자는 그와 같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생각에 동의하시는 독자라면 저자의 글을 한번 접해보실걸 권한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삶도 훨씬 더 풍족해지리라 믿는다.


#죽은자곁의산자들 #시공사 #죽음 #북스타그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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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물 탐구 사전 - 우리와 함께 했던 그때 그 물건
정명섭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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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1 : 근대 사물 탐구 사전, 정명섭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중략)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 시는 잘 알려진 천재시인 이상의 "오감도"의 일부분이다. 역대 가장 난해한 시로도 알려져 있고, 발표되던 순간부터 엄청난 논란의 중심에서 있었고, 지금도 그 해석이 분분한 시이다. 워낙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이상의 시는 해석이 쉽지 않지만, 발표되던 당시의 배경을 미루어 짐작컨데, "근대 문명의 속도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한 표현이라고 조심스레 해석하는 측면이 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다. "근대성"과 전근대성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속도와 시간의 개념이 지적되고, 그야말로 서양 문물이 격변하는 당시에 많은 것들 (예를 들어 열차, 자동차, 증기선 등등)은 전근대의 문명에 익숙한 조선인에게 "질주의 공포"와 경이감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근대문명을 "강제로" 이식당한 당시 구한말의 사회는 나날이 경이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변화의 세태에 뒤쳐져 있던 고립주의가 무너지고, 말그대로 "신문물"의 폭격을 맞은 그 당시의 사회상은 지금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 변화가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더욱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반감 또한 사료들에서 적잖이 찾을 수 있다. 이후의 우리의 역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운한 시기로 기억될만큼 처절한 수난의 연속이고, 그를 극복한 지금에 와서 우리는 그 불운의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근대 또한 그에 포함되어 잊혀져만 갔다.그리고 한국 사회 그 특유의 "과거를 망각하는" 분위기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로 덧칠하면서 우리는 한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다. 최근에 와서 그때의 것들을 추억하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보존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며 근대 역사도 포용하려는 시도가 감지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시도는 무척 반갑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근대"를 재조명하고, 우리의 역사 한 장으로써 당당히 등장해야 한다는 일련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저서로 판단된다. 저자의 전작들을 보면, 구한말에서 근대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과연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온 흔적이 엿보인다. 몇년 전 이른바 모 국회의원을 상대로 제기된 일련의 의혹들의 한가운데에 "그 근대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한 담론들이 있었으며, 본의아니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소동이 있었다. 아마도 저자는 이 사건과 유사하게 우리 근대의 것들도 나름의 존재의미가 있으며, 이를 기억하는 세대가 아직 존재하고, 충분히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 근대의 것들에 대한 담론을 몇가지 근대 문물을 대표하는 사물들(축음기, 전차, 재봉틀 등)을 초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인상평을 시작하기 앞서 난 책표지의 "재봉틀" 사진부터 무장해제 당했다는 경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안방에 늘 두시던 "부라더 미싱"은 할머니만큼이나 나에겐 친숙한 물건이었고, 지금은 내 어머니께서 물려받아 당신께서 아직도 쓰시고 계신 소중한 유산이다.

어떤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유산"이라고 부르며, 나는 기꺼이 이것들에 대해 애정을 표할 수 밖에 없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어느덧 사라져버린 "성냥"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지금은 여러모로 훨씬 쓰기 좋고 발달된 도구가 존재하지만, 담뱃불을 붙일 때 성냥으로 "탁"하고 피어오르는 불꽃과 그 특유의 향은 한번 그 강렬한 이미지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것이리라. 이처럼 어느덧 기억의 저편에 사라진 사물들을 중심으로 다시한번 우리에게 그 추억을 돋우는 한편, 당대의 그 의미에 대해서도 세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어, 이야기에 대한 몰입이 좋다.

또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축음기도 아니고, 무성영화도 아닌 "곤로(석유풍로)"였다. 축음기나 무성영화는 음악애호가들이나 영화평론가들에 의해 현재에도 꾸준히 언급이 되거나, 간간히 미디어에 소품으로 등장하므로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곤로야 말로 정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물건 아니던가. 난 아직도 할머니께서 녹두전을 이것으로 부치시던 기억이 있다. 그 특유의 매캐한 향과 함께 묘하게 부엌에 있던 이 녀석은, 장난쳐서는 안될 물건으로 주의를 종종 받던 물건이었지만, 그 묘한 향수가 존재한다. 도시가스를 넘어 이제는 인덕션까지 쓰고 있는 이 마당에 무슨 골동품 이야기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그때로 회귀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명의 이기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각 사물은 그 당시의 필요와 배경에 의해 존재했었던 것이니만큼, 그 의미를 한번쯤 기록해두고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럽은 이런 "기억의 기록"을 매우 광범위하게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후대에 물려줄 유산으로 당당히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와 동일선상에서 저자의 아카이브는 "평가"를 떠나 그저 지난 날의 감흥으로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시도는 반드시 이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특성상 "사전식" 구성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 그 수많은 사물들을 모두 나열하고, 이에 대해 의미를 기록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꽤나 버거운 작업일텐데, 일개 한 대중저자가 이러한 시도를 완벽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물 몇개만을 시도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각종 사진과 그림으로 무겁지 않게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구성의 특성상 전체 맥락이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험요소는 있다. 이와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연표구성이나 서술의 범위를 처음부터 천명하고 시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다. 다시말해 예를 들어 "1930대"를 특정해서 서술한다던지, 일제강점기를 특정해서 서술하는 방법 말이다. 이는 아마도 보다 더 대중적인 저술을 원한 저자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사료되며, 이후에도 연작시리즈나 보강된 시리즈가 나와서 더 아카이브 성격의 저서가 나오면 좋겠다. 

5. 나오며...

개인적으로 나는 유년시절을 한국 최초의 개항장인 ""인천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이 있다. 그 곳은 일제시대의 적산가옥과 서구식 성당이 있었고, 그 때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 보다도 미적 관점에서 각인되었다. 지금도 으리으리한 모던하고 유리같은 신소재로 번쩍거리는 현대식 건물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서울역 구역사 (현 서울박물관)가 훨씬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그 당시가 우리의 "암흑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모습 중 하나이다. 후대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는 것이 결코 역사가 아니다. 우리의 가감없는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는 후대가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지워야할 역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금 근대의 그 멋과 역사를 편견없이 보존하려는 시도들에 박수를 보낸다.

#근대사물탐구사전 #정명섭 #초록비책공방 #근대문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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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전쟁 - 세계 역사와 지도를 바꾼, 만나, 삼나무, 파피루스, 밀, 양귀비, 양파, 파자마기름, 땅콩
도현신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0 : 세계 역사와 지도를 바꾼 씨앗전쟁, 도현신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Not enough minerals!... (자원이 부족합니다!) "

한국의 E-sports를 세계구 급으로 올려놓은 일등 공신인 블리자드Blizzard 사의 "스타 크래프트 Star-craft"에서 나오는 익숙한 대사이다. 이 게임은 각자의 진영에서 "자원"을 가지고 발전하며, 부족할 시 주어진 영토 내의 다른 자원을 찾아 개척하고, 상대방 진영과 전쟁을 하기도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고전이다. (게임을 하시는 분이라면 늘 보던 장면일 것이다.)

자, 이제 잠시 눈을 떼고 뉴스를 바라보자. 위 장면과 너무도 유사하지 않은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현장에는 다양한 갈등이 표면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실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전략자원"이 중심에 놓여있다. 어찌보면 인류의 역사는 이 전략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반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차 세계 대전은 "식민지(시장)"라는 전략자원이, 2차 세계 대전은 "석유"라는 전략자원이 그 주범으로 꼽히고, 이는 불행하게도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늘 전략자원을 탐하기 때문이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이전부터 다수의 작품을 통해 이른바  "전쟁"시리즈를 주제로, 인간의 역사를 다양하게 분석해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향신료, 질병, 종교, 환경, 건축 등 다방면에서 갈등의 역사를 파헤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욕망의 굴곡을 조명하는 일련의 작업으로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이번 저서는 그 중에서도 식물, 더 나아가 "전략자원"으로 간주될 곡식이나, 작물들을 포인트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멀리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종이)부터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아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들에 얽힌 욕망과 갈등의 역사를 조명하고, 우리가 앞으로 범할 수 있는 오류나 또는 미래에 존재할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는데 좋은 소재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기존에 많은 역사적 사료들과 이를 해석하는 사관의 관점은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대중적인 저술을 표방하는 저자가 선택한 표어는 "전쟁"이다.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인 "전쟁은 돈이 되지..."라는 말이 있듯이, 전쟁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결과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느 집단이나 국가 사이에 자리잡은 욕망들이 서로 부딪치고, 조정이 되지 않아 갈등이 고조되면 최종적으로 전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순서는, 아마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너무나도 많이 봐온 서사일 것이다. (다만, 이 뻔한 서사가 아직도 계속된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많은 행동양식 중에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보이는 이 "전쟁"은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에 대한 (나는 여기서 그것을 "전략자원"이라고 말한다.) 욕망이 그와 같은 야만적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현상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입으로만 "지속가능한 사회"를 부르짖는거 보다, 이 전략자원의 흐름과 분배에 집중하는 것이 전쟁을 막고자하는 측에 보다 더 현명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그런 측면에서 "식물"을 택하여 보여주고 있고, 대중들에게도 잘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온 "나르코스 Narcos"라는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듯이 '코카인"에 대한 욕망을 둘러싼 처절한 투쟁은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되며, 이 갈등의 근원에는 "나프타 NAFTA"로 대변되는 이른바 미국의 약탈적 경제침탈을 지목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이 수많은 제품으로 멕시코의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밀려난 농부들과 빈민들은 생계를 위해 극단적으로 마약을 재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것이다. 아무리 비도덕적이라고 우리가 그들을 비난할 지언정, 그들에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므로 여타의 선악개념을 그들에게 기대한다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사태를 해결하려면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수밖에 없다. 

또한 이 책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풍부한 사진과 일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의 구조상 다양한 소재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다루므로 자칫 잘못하면 내용이 방대하고, 일관되지 않으며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저자도 의식하는지, 각종 그림과 실제 작물의 여러 사진들을 보여주며 주목도를 유지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사실 역사책에서 남는 건 연표와 사진 뿐이라는 속설이 있다. 큰 흐름과 그 당대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 하나가 몇백줄이 넘어가는 서술보다 훨씬 전달력이 좋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4. 아쉬운 부분...



먼저 이 저서를 접하기 전에 사전 정보를 듣고,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종자전쟁"에 대한 비중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재 각국의 치열한 경쟁 중 하나로 소리없이 대두되는 분야가 "종자산업"이다. 농업은 어느 국가나 근간 산업이다. "식량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 외부 환경이나 정세에 얼마나 휘둘리는 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례에서 목도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대한민국도 상당히 우려스럽다.) 이 소리없는 전쟁의 한복판에는 "종자"에 대한 개발과 독점, 이로 인한 갈등과 극복을 위한 노력 등이 상당히 진행중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고무나무 같은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지만, 제목에서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좀더 많은 부분을 이 분야에 할애해야 옳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추후 저자의 시리즈에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5. 나오며...

오늘도 뉴스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기사가 나오고, 실제로 우리는 이로 인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불러오는 물가인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전 지구적으로 경제 네트워크는 구성이 되어 있고, 단순히 한 지역의 분쟁으로만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체 네트워크를 타고 매우 실시간으로 그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또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다시말해, 한 나라의 "전쟁"은 단순히 국지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국제전"으로 확대하지 않더라도 그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전례없이 평화가 위협받는 이 시대에 다시금 "평화를 원한다면 자원을 준비하고 논의"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세대에 다시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남기는 것은 후세대에 갚지못할 빚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a_seong-mo

#세계역사와지도를바꾼씨앗전쟁 #씨앗전쟁 #도현신 #이다북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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