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물 탐구 사전 - 우리와 함께 했던 그때 그 물건
정명섭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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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1 : 근대 사물 탐구 사전, 정명섭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중략)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 시는 잘 알려진 천재시인 이상의 "오감도"의 일부분이다. 역대 가장 난해한 시로도 알려져 있고, 발표되던 순간부터 엄청난 논란의 중심에서 있었고, 지금도 그 해석이 분분한 시이다. 워낙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이상의 시는 해석이 쉽지 않지만, 발표되던 당시의 배경을 미루어 짐작컨데, "근대 문명의 속도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한 표현이라고 조심스레 해석하는 측면이 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다. "근대성"과 전근대성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속도와 시간의 개념이 지적되고, 그야말로 서양 문물이 격변하는 당시에 많은 것들 (예를 들어 열차, 자동차, 증기선 등등)은 전근대의 문명에 익숙한 조선인에게 "질주의 공포"와 경이감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근대문명을 "강제로" 이식당한 당시 구한말의 사회는 나날이 경이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변화의 세태에 뒤쳐져 있던 고립주의가 무너지고, 말그대로 "신문물"의 폭격을 맞은 그 당시의 사회상은 지금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 변화가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더욱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반감 또한 사료들에서 적잖이 찾을 수 있다. 이후의 우리의 역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운한 시기로 기억될만큼 처절한 수난의 연속이고, 그를 극복한 지금에 와서 우리는 그 불운의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근대 또한 그에 포함되어 잊혀져만 갔다.그리고 한국 사회 그 특유의 "과거를 망각하는" 분위기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로 덧칠하면서 우리는 한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다. 최근에 와서 그때의 것들을 추억하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보존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며 근대 역사도 포용하려는 시도가 감지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시도는 무척 반갑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근대"를 재조명하고, 우리의 역사 한 장으로써 당당히 등장해야 한다는 일련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저서로 판단된다. 저자의 전작들을 보면, 구한말에서 근대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과연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온 흔적이 엿보인다. 몇년 전 이른바 모 국회의원을 상대로 제기된 일련의 의혹들의 한가운데에 "그 근대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한 담론들이 있었으며, 본의아니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소동이 있었다. 아마도 저자는 이 사건과 유사하게 우리 근대의 것들도 나름의 존재의미가 있으며, 이를 기억하는 세대가 아직 존재하고, 충분히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 근대의 것들에 대한 담론을 몇가지 근대 문물을 대표하는 사물들(축음기, 전차, 재봉틀 등)을 초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인상평을 시작하기 앞서 난 책표지의 "재봉틀" 사진부터 무장해제 당했다는 경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안방에 늘 두시던 "부라더 미싱"은 할머니만큼이나 나에겐 친숙한 물건이었고, 지금은 내 어머니께서 물려받아 당신께서 아직도 쓰시고 계신 소중한 유산이다.

어떤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유산"이라고 부르며, 나는 기꺼이 이것들에 대해 애정을 표할 수 밖에 없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어느덧 사라져버린 "성냥"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지금은 여러모로 훨씬 쓰기 좋고 발달된 도구가 존재하지만, 담뱃불을 붙일 때 성냥으로 "탁"하고 피어오르는 불꽃과 그 특유의 향은 한번 그 강렬한 이미지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것이리라. 이처럼 어느덧 기억의 저편에 사라진 사물들을 중심으로 다시한번 우리에게 그 추억을 돋우는 한편, 당대의 그 의미에 대해서도 세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어, 이야기에 대한 몰입이 좋다.

또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축음기도 아니고, 무성영화도 아닌 "곤로(석유풍로)"였다. 축음기나 무성영화는 음악애호가들이나 영화평론가들에 의해 현재에도 꾸준히 언급이 되거나, 간간히 미디어에 소품으로 등장하므로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곤로야 말로 정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물건 아니던가. 난 아직도 할머니께서 녹두전을 이것으로 부치시던 기억이 있다. 그 특유의 매캐한 향과 함께 묘하게 부엌에 있던 이 녀석은, 장난쳐서는 안될 물건으로 주의를 종종 받던 물건이었지만, 그 묘한 향수가 존재한다. 도시가스를 넘어 이제는 인덕션까지 쓰고 있는 이 마당에 무슨 골동품 이야기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그때로 회귀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명의 이기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각 사물은 그 당시의 필요와 배경에 의해 존재했었던 것이니만큼, 그 의미를 한번쯤 기록해두고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럽은 이런 "기억의 기록"을 매우 광범위하게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후대에 물려줄 유산으로 당당히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와 동일선상에서 저자의 아카이브는 "평가"를 떠나 그저 지난 날의 감흥으로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시도는 반드시 이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특성상 "사전식" 구성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 그 수많은 사물들을 모두 나열하고, 이에 대해 의미를 기록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꽤나 버거운 작업일텐데, 일개 한 대중저자가 이러한 시도를 완벽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물 몇개만을 시도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각종 사진과 그림으로 무겁지 않게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구성의 특성상 전체 맥락이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험요소는 있다. 이와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연표구성이나 서술의 범위를 처음부터 천명하고 시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다. 다시말해 예를 들어 "1930대"를 특정해서 서술한다던지, 일제강점기를 특정해서 서술하는 방법 말이다. 이는 아마도 보다 더 대중적인 저술을 원한 저자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사료되며, 이후에도 연작시리즈나 보강된 시리즈가 나와서 더 아카이브 성격의 저서가 나오면 좋겠다. 

5. 나오며...

개인적으로 나는 유년시절을 한국 최초의 개항장인 ""인천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이 있다. 그 곳은 일제시대의 적산가옥과 서구식 성당이 있었고, 그 때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 보다도 미적 관점에서 각인되었다. 지금도 으리으리한 모던하고 유리같은 신소재로 번쩍거리는 현대식 건물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서울역 구역사 (현 서울박물관)가 훨씬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그 당시가 우리의 "암흑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모습 중 하나이다. 후대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는 것이 결코 역사가 아니다. 우리의 가감없는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는 후대가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지워야할 역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금 근대의 그 멋과 역사를 편견없이 보존하려는 시도들에 박수를 보낸다.

#근대사물탐구사전 #정명섭 #초록비책공방 #근대문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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