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왜 로봇의 도덕인가 / 웬델 월러치, 콜린 알렌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 <Her>나 <트랜스포머> 같이 로봇은 SF의 단골 소재이다. 그리고 끝내는 역시나 ‘도덕적 판단’이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로봇의 지능이 진화하고 생기는 딜레마, 즉 로봇의 도덕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수많은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관한 답을 조금이나마 구체화시킬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먼 이야기가 될지 몰라도 로봇에 대한 고민은 이어져야 하고 우린 그 속에서 답을 얻어내야 한다.







2. 짐승의 시간 / 박건웅


풍자만화 <삽질의 시대>나 <노근리 이야기> 등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건네왔던 박건웅의 신작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의원이 남영동에서 겪었던 ‘짐승의 시간’을 만화로 그려냈다. 몇 컷만 봐도 시대가 요구한 폭력과 그 폭력 속에서 타락한 쾌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망각에 저항하자. 










3. 이미지 인문학 1 / 진중권


진중권과 선완규가 만나면 작품이 된다. 이미지를 다루는 책은 아무래도 텍스트 위주의 책보다 편집이 중요한데 <미학 오디세이>를 시작으로 20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둘의 시너지는 아름답다. 미술관의 어떤 그림이나 사진 앞에서 멍 때려본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을까. 21세기 시대의 문맹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읽을 줄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시선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시선은 이 책에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끝으로 덮으면서 든 생각은 나처럼 과학에 소양이 부족한 사람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우선은 흉기에 가까운 두께에 쫄았고, 무엇보다 제목에 쫄았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라니 이게 뭐란 말인가.

 

책을 열어보니 불필요한 우려들이었다. 스티븐 제이굴드가 6년 동안 쓴 60편 중에서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한 35편을 선별한 책이다. 소설을 읽더라도 부담스러운 문체나 잘 모르는 분야를 다룰 때에는 단편만큼 편한 게 없다. 그 점에서 우선은 편안하게 다가왔고, 중요한 점은 글에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시원시원하게 써내려간 글이 있는가 하면 고심 속에서 몇 번을 망설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 있다. 굴드의 글은 대체로 시원시원하게 써내려간 힘이 느껴지는데, 이런 글은 관심분야에 대한 깊이뿐만 아니라 스펙트럼 자체를 넓게 가져가는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학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사회나 역사, 문화적 현상으로 풀어가고, 곳곳에 배치된 인문학적인 요소들은 이 책을 유연하게 만들어주고 있는데, 그뿐만 아니라 낮은 위치에서 대중적 글쓰기에 탁월한 저자의 능력 덕분에 눈꺼풀을 내려긋거나 몸을 배배 꼴 일은 없었다. 거창한 대주제로 글을 풀어가기보다는 작은 현상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줄기를 다양한 요소로 풀어가며 거부감 없이 대중에게 들이민다.

 

사실 고백컨대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나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구절을 발췌하거나 인용해 내 의견을 첨부하는 게 다소 부담스럽다. 그저 확실한 것은 과학에 대해 흥미를 심어주는 이 책을 누군가에게 권하거나 다시금 이 책을 읽을 의욕이 생긴다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고백하자면 난 평전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한 인물에 대해 깊게 들어가기에 평전만큼 좋은 텍스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균형감이 평전의 미덕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평전들이 균형감에서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개중에는 원칙에 근거한 깔끔한 텍스트 또한 많으나 혼탁하리만큼 즐비한 평전들 가운데 그런 옥색을 가려내는데 드는 수고스러움을 다른 책을 읽는 것으로 대체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다산과 관련된 연구서만 열권이 넘고 다산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이다. 시간을 흘러도 변함이 없는, 우리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핵심 가치를 다산의 삶을 통해 관통하려 했고 다산의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평생을 바쳤던 저자는 책의 서두에 미리 이렇게 밝힌다.

 

다산에 대한 당대의 평가이건 먼 뒷날의 평가이건, 대체로 다산의 사람됨과 학문에 대해서는 훌륭하다는 칭찬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잘못되었다거나 좋지 않다는 평가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평에 따른 이 책 또한 찬양 위주의 평전이 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여겨 또다시 부끄러움을 면할 길이 없다. 조선 선비들의 공통적인 자세이기도 하지만, 학자들이 다른 학자를 평가할 때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지 야박한 점수를 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다산의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잘했다는 평가가 많았고 잘못했다는 평가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책 서두부터 적혀있는 이 글을 읽고 글에 대한 겸손이거나 우려이려나 추측할 수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엄밀히 후자 쪽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건 저자 스스로 느끼는 우려이자 미리 내다보는 독자들의 평가에 가깝다. 잘 쓰인 평전은 토론의 균형감 있는 사회자 같은 것이다. 한쪽의 의견을 듣고 또 한쪽의 의견을 듣고, 그 후에 갖게 되는 평가는 시청자 스스로 내리게끔 유도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평전이라는 위태로운 시소게임에서 이 책의 균형감은 뭔가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책의 가치가 약간은 색이 바랬지만 ‘평전’이라는 두 글자만 뺀다면 여전히 빛나는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600페이지가 넘는 공간을 할애하여 다산의 가치와 공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낸 책이 또 있을까. 개혁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과학, 수학, 기계학 등 실용적인 학문까지 집중해낸 실학자이기도 한 다산의 삶을 일화나 후세의 평가를 열거하며 새로운 삶을 꿈꿨던 학자임을 분명히 해내고 있다.

 

분명한 건 다산의 삶은 우리 사회에 시사 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가 꾸준히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청렴함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과 윤리 의식이다. 자본주의가 대두되고 윤리 의식이 불필요한 가치로 치부되기도 하는 요즘 다산의 삶은 다시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이 총체적 저서는 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못된 건축 / 이경훈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문제적(?) 제목의 책을 펴냈던 저자가 다시 한 번 도시를 이야기한다. 일전에는 다소 광의적인 의미에서 녹지나 공원 조성이 아닌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조금 구체적으로 건축에 대한 썰을 풀어낸다. 서울토박이인 내가 부산이나 제주를 여행하게 되면 그곳에는 확연한 문화가 있음을 느낀다.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반문한다. 서울과 자본 사이에 문화가 존재할까. 서울은 어스름한 새벽에도 침묵하지 않는다. 하지만 못된 건축에 소외된 이들은 이 화려한 도시 한편 침묵에 머무르고 있다. 타의적 침묵이 사라지고 도시에 문화가 존재케 하는 것, 우리가 다시금 이 도시의 건축을 돌아보는 것이다.

 

 

 

켄 로치 / 존 힐

 

내가 본 최초의 켄 로치 영화는 <달콤한 열여섯>이었다. 꽤나 늦게 켄 로치를 접한 셈이었는데, 현실을 바라보는 낮은 시선과 과한 의미부여가 없는 묘사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지라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켄 로치나 앙겔로플로스 같은 감독들에게는 그런 담담한 시선이 존재하는데, 불편한 진실을 담아내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고 충격적인 시선일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영국의 영화학자 존 힐이 쓴 감독론이다.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언급하며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논쟁들을 들춰낸다.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는 그의 일갈은 결코 순간의 감정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역자는 씨네21 기자이자 현재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이후경이 맡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의 도시는 지금도 수없이 변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가게부터 대형건축물까지. 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밀접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들여다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반란의 도시>는 지리학자인 저자의 영역과 사회학적인 요소들을 합쳐 들여다 본 도서로 읽혔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 관해 특별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우리가 요구해야 할 권리를 이야기한다.

 

도시는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어떤 도시에 사는가의 문제는 우리가 어떤 가치관의 인간이 되어가느냐, 어떤 관계를 맺고 삶을 구축해나가느냐의 문제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도시가 우리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그 도시를 일궈내는 주체가 궁금해진다. 저자는 도시의 주체가 곧 자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에게 도시는 일부 상위계층의 사람들이 도시에 있는 자본을 약탈하고 독식하며 축적해나가는 장소로 이야기한다. 하비의 말에 따르면 도시는 도시 생산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의 것이고, 누군가 사유할 수 없으며, 소수 계층의 사람들에 한해서 독식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저자가 하는 것은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 축적의 방식으로 도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시를 되찾기 위해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끌어내고 몇 가지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발발된 저항의 움직임과 더불어 우린 몇가지 희망의 불씨를 확인한다. 도시의 주체를 바꿔낼 수 있느냐, 그리고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느냐. 이 책은 도시를 일궈내는 시민들이 저항해야 할 사유를 제공한다.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철저히 가공되어지고 있다. 도시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환경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재설계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