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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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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반백살이 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치킨은 얼핏 내 역사와 같이 걸어왔다. 어렸을 때의 치킨은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봉투에 담아줬고, 그때 아버지 월급날 손에 들린 검은 봉지가 과일인지 치킨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바삭한, 소위 크리스피라 말하는 치킨이 유행을 하더니만 파채와 닭을 함께 내주는 파닭이 입맛을 사로잡았고, 간장치킨에 이어 웰빙 열풍에 구운 치킨까지, 닭강정이 유행하고 다시 ‘옛날통닭’이라는 이름의 ‘레트로’까지, 짧고 굵은 이 치킨의 역사는 나의 유년기와 지금의 성인이 이르기까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음식의 역사가 나와 동시대를 살았을까.


고로 치킨의 역사를 되집는 것은 나의 삶을 다시금 회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그것을 먹고 자라왔고 그 체득의 역사는 내 이정표에 하나하나 점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킨의 역사를 되짚고 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현주소까지 다시금 살펴보는 것에 가깝다. 저자의 경험이 담겨 있기는 하나 독자가 이 책을 보면서 생생하게 치킨의 세월을 짚어볼 수 있는 이유는 내 경험이 책을 통해 더 생생하게 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사실 채식을 했던 경험이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하나는 여느 누구와 비슷하게 다이어트였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닭을 사육하는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닭은 압축사육을 통해 조기출하 시스템이다. 간단히 말해 철저히 먹기 위해, 팔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양계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7~8천원짜리 저렴한 치킨, 대기업의 ‘통큰치킨’을 얻었지만 이것이 옳은 육류 소비인지, 옳은 방식의 사육인지에 대한 논쟁은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식도락은 포기할 수 없고 지금에 와서는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타협했던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난 이 책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이면을 좀 더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 치킨의 종류나 역사 등은 인터넷을 뒤져도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내용이 부실하고 정제되지 않았을지언정 그 텍스트를 모아모아 정리하면 이 책의 텍스트에도 어느 정도는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내용 말고 우리가 소비하는 이면의 무언가를 좀 더 다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목차와 소제목은 일면 잘 정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전반적으로 글의 매듭이 엉성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각 파트마다 눈에 들어오는 동어반복이 주 원인이고 하고자하는 맥락의 이야기도 중복적으로 들린다. 잘 짜여진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명의 공동 저자가 펴낸 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 급했는지 다듬새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킨뿐만 아니라 치킨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보는 누군가가 그런 고민의 지점까지는 끌고 갈 수 있을 듯 싶다. 그 점에서 이 책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고민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 난 꽤 반가운 일이 될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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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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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jtbc의 <뉴스룸>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에 오른다. 손석희라는 인물이 종편에 간 것도 화제였는데 종편 뉴스가 보여주는 건실한 보도 태도가 눈에 띄더니 세월호 사건 이후 보여준 무브먼트는 인상적이었다. 연일 앞다투어 자극적이고 확인되지 않는 정보들로 채워내는 다른 언론과는 달리 조금 늦더라도 정제된 정보를 전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다른 언론들이 차츰 세월호를 지워나가는 와중에도 세월호 사건의 무게감을 인지하고 끝까지 성실하게 보도한 것도 jtbc가 유일했다. 미드 <뉴스룸>을 보면 극 중 맥커보이의 방송사 ACN만이 비중 있는 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하는 씬이 나오는데 난 한국에서 이걸 실현해낼 언론사가 이렇게 빨리 나와 줄줄은 몰랐다. 언론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jtbc는 유일한 승자였고 마침내 언론신뢰도 탑을 찍었다. 그 jtbc의 9시 뉴스를 1시간 땡기고 100분 편성의 <뉴스룸>을 내놓을 것이다. 좋은 말로 좀 더 심층적으로 취재하겠다는 것이고 속내는 8시 뉴스도 잡아먹겠다 뭐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책 얘기는 안 하고 특정 방송사 얘기를 왜 이렇게 오래 했냐면 언론의 속성이라는 것이 복잡해 보이지만 일면 간단한 부분도 있다. 난 언론사의 모든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써낼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써낸 기사가 취사선택되고 그 선택된 기사가 검열을 받고, 그 과정에서 또 편집을 거치고 하면서 완전히 다른 기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석희가 jtbc로 옮겨갈 때 내건 조건이 보도국의 완전한 자율운영이었다. 속보경쟁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꾸준히 밀착취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건 순전히 헤드의 의지로 보였다. 하루종일 특종!이럴수가!충격! 이따위 헤드라인 붙여놓고 탈북자 인터뷰나 유병언 일가 추적 같은 걸 하는 모 종편 방송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자극적인 속보를 원하는 편집부의 요구와 그 때문에 후배 기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팀장, 이 구조적인 문제가 답습되던 언론 사이에서 무언가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을 본 것이다.


그러니 고로 우리가 뉴스를 볼 땐 이것이 가공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진실을 전하는 것이 언론이라지만 언론은 팩트를 가지고 새로운 뉘앙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집단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뉴스를 보는 것은 습관적인 공포와 불안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보의 홍수라 말하는 시대에 살면서 내가 저들이 아는 정보를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뉴스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뉴스를 포기하고 살면 편할 일인가. 그렇지도 않은 것이 우린 9시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다고 해서 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출퇴근 길 스마트폰 속 포털 사이트에 떠오르는 기사들, 누군가의 게시판 글에 링크되어 날아오는 기사들, 언제 어디서든 언론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즉, 우리는 우리의 삶에 침투한 언론을 걸러내고 정제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언론에 대한 책은 동네 도서관에만 가도 수도 없이 많다. 그 수많은 책 중에서도 이 책의 미덕은 어렵지 않은 문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진보 싸가지론’처럼 사람들은 훈계조의 말투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소 딱딱하고 학문적인 어투의 글 속에서 보통의 팬이 되었던, 베스트셀러라 관심을 갖게 되었던 어떤 연유라도 쉽게 읽고 언론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한번이라도 가진다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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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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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독신주의자였다. 아마도 20대 초반까지 그러했던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에 책과 음악을 포함한 문화적 유희를 즐겨왔던 터라 혼자만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렇다고 히키코모리로 살아왔던 것도, 그렇게 살 생각은 없지만 분명히 내겐 문화적으로 투자하고 집중해야 할 시간이 필요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축복이다’라는 생각이 생기기 이전까지는. 주변인들이 하나하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레 조카들이 생겨났는데 아이는 정말 존재 자체가 축복인 미지의 생물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존귀한 행위를 통해 그런 축복을 잉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는 독신주의에 대한 꿈을 접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땅이 아니다 한국은. 남자들의 결혼적령기는 점점 더 늦어지고 있고, 결혼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독신을 강요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독신의 오후>는 시기적으로 꽤 흥미로운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노자의 책을 보며 한국인들이 통쾌해하는 지점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습속들을 3자적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모여 있으면 할 수 없던 피드백을 3자적 시선이 따끔하게 지적해주는 것이다. 외국에서 생활해왔던 진중권이나 홍세화 같은 저자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우린 3자적 시선, 즉 내가 속해있는 집단과 다른 이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독신의 오후>의 텍스트들은 충분히 약이 될 수 있다. 저자인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이고 고로 이 책은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독신 남성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에 따른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독신 남성이라니 으아 찌질해”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말자. 우려와 달리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 아니 아름다워질 수 있다.


꽤 많은 조언들이 숨어있지만 그 속에 관통하는 메시지는 ‘내려놓음’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불교적 상념 같은 것이 아니라 예컨대 나이에 걸맞게 치솟는 우리의 권위(쉬운 말로 꼰대성이라고 한다), 혹은 대인관계에서의 권력 같은 것을 경계하고 내려놓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아직은 두세 번 곱씹을 만큼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내가 좀 더 나이가 들고 이 책의 소제목처럼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를 생각할 시기가 찾아올 때, 그 땐 이 책을 한 번 더 펼쳐볼 것만 같다. 약간은 고정적인 젠더에 대한 관념이나 나와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례들의 기술은 이 책의 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서재 언저리에서 내 선택을 기다릴만한 책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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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마피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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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축구를 10년 넘게 봐오면서 매년 변함없이 느끼는 것이 있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관련된 행사가 있으면 어린이나 동물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며 순수와 스포츠 정신을 논하지만 결코 스포츠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자 2002년 이후로, 특히나 월드컵 시즌만 되면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리는 축구는 그 인기만큼이나 불편한 진실은 전쟁통의 지뢰처럼 도처에 널려있다.


피파라는 집단과 블래터라는 인물은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실상 양대리그라 볼 수 있는 잉글랜드와 스페인 축구협회 또한 말 많고 탈 많은 집단이긴 하지만 정치, 자본, 비리의 스케일면에서 피파를 압도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 피파의 부패 이미지를 척결하겠다 식의 취임사 같은 건 허울 좋은 말들에 불과하다. 각양각색의 설전이 오가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피파와 블래터는 평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로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던 축구팬들은 그들의 이야기만 나오면 거짓말처럼 입을 모으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노답’, 이 집단에는 대안도 없고 해결책도 없다. 집단의 자정작용 같은 건 애초에 사라져버린 썩을대로 썩어버린 집단이고, 집단이 할 수 있는 모든 비리를 시도한 듯 창의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원전 마피아, 관피아라는 신조어가 많이 언급되는데 아마도 ‘-마피아’라는 언어를 가장 먼저 대중화시킨 게 피파 마피아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된 축구 팬들 사이에서 그 말은 심심찮게 언급되어 왔다. 그런 부분을 생각해보면 피파의 온상을 다루는 책은 좀 더 많은 종류로 시중에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왜인지 특히나 국내에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왜인지는 피파가 가지고 있는 로비력과 현재까지 해왔던 수많은 비리들을 취합해보면 답을 도출해낼 수 있다.


<피파 마피아>는 국제축구연맹과 그 중심에 서있는 블래터를 ‘까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 출신인 저자가 봐왔던, 공공연히 알려져 왔던 그들의 진짜 얼굴을 까발리는 것이다. 스포츠라는 것이 얼마나 환상에 차있고 아름다운 플레이 속에서 ‘아트’를 논하지만 그 이면의 실상에 대해서 누군가를 말해야 하는 것이고, 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은 저자는 조목조목 성실하게 적어두었다. 월드컵 개최지에 따른 계략, 광고를 해주겠다며 요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 검은 돈으로 점철된 그들만의 투표, 결코 그들은 아름답지 않다.


가장 보편적인 스포츠 중에 하나인 축구를 보면서 우리는 ‘공정성’을 논한다. 불합리한 자본주의의 생리 속에 살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공 하나 앞에서 공정하게 승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플레이 뒤에 그들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의 내면을 알아야 하듯 단순히 축구를 보고 즐기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그 이면의 무언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 일을 하기에 이 책은 정말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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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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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 탁상공론 같은 말들이 가장 많이 쓰이는 대상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떠올리는 대상, 그리고 그 지점에서 철학은 자유롭지 않다. 대중에게 철학은 그런 이미지에 가깝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철학이 사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인식하는 철학은 삶의 저 언저리쯤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많은 학자들이 대중과 아래로부터 소통하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뒷짐 진 백발의 방관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곤 한다.

 

고병권 같은 학자가 그러하다. 그는 꾸준한 대중 강연과 집필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인문학을 행해왔던 사람이다. 철학하는 것이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모든 곳에서 철학이 시작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믿음 아래 수유너머같은 연구공동체에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해왔다. <철학자와 하녀>도 그런 믿음 아래 쓰여진, 그의 또 하나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 <철학자와 하녀>는 어떤 맥락에서 나온 제목일까. 친절하게도 프롤로그에서 설명을 해주고 시작한다.

 

어느 날 철학자 탈레스는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트라케의 하녀가 깔깔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히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트라케의 이 하녀는 총명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몸은 지구에 두면서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철학자의 삶을 이토록 재치 있게 조롱했으니 말이다.

 

이것이 철학이라는 학문과 대중 사이의 간극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간극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놓여있다.

 

책은 에세이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철학적 명제를 던질만한 준비가 되어있다. 큰 사건, 사고 외에도 삶 주변에 작은 에피소드 하나까지도 들여다보면 흥미로울 정도로 말이다. 이제 책을 펼쳤다면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인문학자는 어떻게 그 안에서 명제를 떠올리고 들여다보는지 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철학은 한가로운 학문이 아니라 내 삶을 되새김질할만한 길이 된다. 발치 앞에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이제는 저 밤하늘의 별을 한번 보는 것이다.

 

위대한 탈레스를 재치 있게 조롱했던 총명한 하녀가 어느 밤 다락밤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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