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사람은 많고 책 읽는 사람은 적은 시대라고 한다. 예전 출판이나 방송 등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시절에는 소설가나 작가에게 자기 얘기를 써달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구절절 사연을 보냈다고 하던데. 지금은 적은 비용과 부담으로 출판과 영상 제작이 쉬워져서 저마다 자기 얘기를 세상에 쏟아 놓느라 여념이 없다.문프 추천이 아니었으면 이런 책은 돌아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위기/비행 청소년 상담/보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짧은 경험담을 엮은 것인데, 사연이 조금씩 달라도 어차피 본인 직업이 너무 힘들고 바쁘지만 보람 있다는 내용으로 천편일률이다. 글 쓰는 걸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 짧은 글을 엮어 책을 내자고 했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할 한계인데, 출판사가 이걸 미리 예상했다면 좀 더 참신한 아이디어와 구성으로 기획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세상에 자기 얘기 하고 싶은 사람들이 욕심껏 이런 식으로 책을 내다보면 나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2쇄를 찍었네. 문프 덕인가 혹시. 출판사 검색을 해보니 이 책 포함 달랑 2권, 그것도 작년에 낸 신생 업체인 듯 하다.
평론가 강계숙 님의 해설과 같이 이 책은 “각각의 개인이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을 안고 각각의 ”여수“를 향해 느릿느릿, 그러나 마치 주어진 운명의 수락을 조용히 거부하는 수난자처럼 자기 몫의 고통을 지고 회귀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병, 우울, 죽음, 어둠에 관한 묘사와 상황이 반복된다.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읽는 사람도 이리 고통스러운데 쓰는 사람의 고통은 어땠을까. 1993-4년에 쓴 소설이라 그 시대적 상황이 나오는 게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휴대폰이 일상적이지 않을 때라 집이나 회사 전화로 연락을 취하는 것. 집 전화가 휴대용 무선인 것으로 보이는 묘사가 있는 점, 경비실이 아파트 동 입구마다 따로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등. 나이가 드니 접하는 컨텐츠에서 자꾸 부모 입장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빨강 머리 앤은 그래서 더 이상 편하게 볼 수가 없다. 이 소설에서 형제나 자매나 부모 중 한 명을 상실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남은 아이들(이 자란 청년들)의 고통에 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나는 주된 묘사의 대상이 아닌 그 부모의 처지나 심정에 더 몰입이 되었다. 수치로 비교할 일은 아니나 더하면 더했지 덜 절절하거나 절망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네 대형 학원이 망해 주변 상가가 모두 철수하는 가운데 끝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자정까지 문을 열어두었던 소설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남은 아이들 키울 생각 먹고 살 생각 방황하는 아이들 다독일 생각에 막막하고 먹먹했을 그 밤을 생각한다. 이래저래 한강 작가의 소설은 고통스럽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껄껄 웃었다. 깨알같은 지식, 빛나는 통찰,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하는 유머와 냉소, 비틀기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글을 좋아한다. 이 책도 좋다. 이 재미있는 책이 초판 1쇄만 발행되었다가 개정증보판에 이르러 2쇄를 발행했다. 더 많이 팔려도 좋은 책이련만 아쉽네.
엄마를 잃은 가족의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독특한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언뜻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옮긴이의 해설을 읽어 보면 그게 저자 고유의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고 그러면 왜 이런 구조와 형식으로 글을 썼는지 왜 이런 내용인지 얼핏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강 작가가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주문한 책인데 역시 한강 작가와 나는 취향이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