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유튜브 보는 느낌이었다. 글 한 줄 한 줄에 분노가 너무 넘쳐나서 오히려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장애로 작용했다. 교도관이나 검사 등과의 대화 내용이나 본인 이력을 정리한 대목에서 저자의 성정을 짐작할 수 있었고 이런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으니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 편이라고 생각하는 쪽의 흠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는 쪽의 잘못에 대해서만 입에 거품을 무는 것은 양쪽 다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이 점입가경인데 이 풍경은 아름답거나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는 걸로 보일까. 언급이 없으니 알 도리가 없다. 민주 진보 진영이 바닥없이 타락한 나머지 이런 사람으로부터 “공익을 위해 취재하는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말까지 듣는 마당이니 기막히고 씁쓸하다.
사실 기대가 높은 책은 아니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연말 연휴를 맞아서야 구입해 읽었는데 내용이나 문체나 곰씹어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윤석열의 등장을 전후한 정치적 상황에 관한 묘사나 설명도 그 무렵 그리고 이후 현재까지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추앙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연민하기도 하고 비웃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쪼록 저자와 그 가족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이 무간지옥을 무사히 견뎌내길 기원할 뿐이다.
서이초 사건으로 대표되는 “괴물부모” 현상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홍콩 등 가부장적 문화의 변화가 더딘 반면 경제적으로는 빠른 발전을 이루어 학력과 경력 측면에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동아시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해결책은 여러 가지 좋은 말로 제시될 수 있겠지만 실천이 쉽진 않을 것 같다. 비틀거리더라도 조금씩 그래도 보다 나은 사회로의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여러 사람의 노력이 소중한 시점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갈한 문체와 적절한 구성으로 잘 정리한 것 같다. 본인도 구구절절 그렇게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도청에서든 캠프에서든 차근차근 꼼꼼하게 일을 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안희정의 몰락을 가져온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쪽으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각자가 주장하는 객관적 사실이나 입장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이 책을 캠프 막내 직원이었다는 다른 저자의 책과 함께 구입해 읽었다. 김지은이 쓴 책은 아직 읽지 않았고 당분간 읽을 의사도 없다. 안희정이 혹시 이 사건에 대해 책을 낸다면 그때나 함께 읽을지 모르겠다. 이 사건은 그 실체적 진실 여부를 떠나 보호 감독을 받는 자에 대한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범위를 사회적 통념보다 확장하여 인정 받음으로써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입을 가능성이 있는 피해를 줄이는 데에 일조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자가 가해자가 된 덕분(?)에 이런 것도 강간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온 세상이 알게 되었다. 안희정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사람의 인권이 충분히 존중 받는 세상을 정치인으로서 이루고자 하였다면, 억울하든 억울하지 않든 세상을 위해 결과적으로 큰 일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