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은 대부분 읽기가 고통스럽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빼곡히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느끼지 않은 걸 쓸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그릴 수는 없을 터. 작가 자신은 이런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지 의문이다. 도움을 준 여성에게 남성이 신체 접촉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선의로 도와준 젊은 여성을 추행하는 남성 시각장애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 불편했다. 무슨 의도로 그런 장면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뭔가 소통이 단절된 사람 간의 연결 같은 걸 그리고자 했다면 그냥 악수나 팔 잡는 정도로는 안 되었나. 한강 소설에서 이런 뜬금 없는 성적 접촉이 종종 나오는데, 소년이 온다로 감동을 먹어 집중적으로 그의 소설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중단한 게 그 지점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다시 재개했는데 첫 소설부터 다시 그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