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달픈 세상, 인생길, 오늘, 여전히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나를 누가 구해줄 수 있나? 잠시 마르셀 프루스트에게서 작은 위로를 구해본다.

2
어떤 기회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작은 행복이 내게 닥아왔을때 느낄법한 심정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귀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 우네 인생길은 행복보다 슬픔과 연민스러움, 노고가 더 많다. 그런 삶을 프루스트는 원래 그랬던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은 여러가지 있을 수 있지만 모든것이 기억되고 회상해야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대부분 이미 죽어버린 것이므로. 그와달리 내가 잘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 그것만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기억해서 오늘의 시간에 되살려 놓을때 그것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현실이 되고, 순간의 실존에 이르게된다.

3
글쓰기의 원리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과거의 시간들을 떠올리기, 그래서 그것들을 오롯이 현실에 불러들인다. 바로 그 순간 과거는 오늘 되살아난다. 그래서 푸코는 말했다. "우리는 죽어간다. 남아 있는 것은 글쓰기의 모험뿐"이라고.

4
이 세상에서 나는 사멸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한다. 어떻게? 이 세상은 내 몸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죽으면 그 순간 나는 무가 되므로 세상 역시 무가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승이 나보다 더 영속 할 수 있을까보냐?" 라는 문장은 세상에 대한 절대적 허무의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가 죽은 후에도 자연은 그대로 존재하고 세상은 변함없이 게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자연과 세상은 나라는 존재와 하등 관련이 없는 것이므로 내가 살아서 평소 인식하던 자연과 세상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살아 있을때만 관련짓는 것이므로. 따라서 현재의 세상은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을때만 존재하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순간만이 나에게는 전부인것이다.

5
"우리가 한 여인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를 관찰할 충분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곁에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의 부재와, 그녀를 다시 만나지못할 위험이 그녀에게 매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같은 여인의 매력은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 숨어버림으로써 극대화된다. 또한 우리의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까다로운 여인들, 다시 말해 곧바로 소유할 수 없으며, 소유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곧바로 알 수 없는 여인들이다. 우리와 그녀들 사이의 거리는 넘을 수 없을만큼 크며, 그리하여 그녀들의 삶은 미지의 것으로 둘러싸인다. 가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매력은 화자에게 거리를 두고서만 나타나며 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버리고 만다." - 이성복 <프르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6
프루스트 경우 '정신'이 시간의 저장소였다면 영화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함께 저장되는 곳이다. 영상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투영한다. 그것은 경이요 아름다움이고 슬픔이다. 그 미적 공간 속에서 나는 삶을 바라보거나 때로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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