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카알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나때만해도 중학교에 가려면 입학시험을 치뤄야했다. 뭐 소도시 중학교이니 시험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한데 시골에서 좀 한다는 축에 들었건만 나는 한심하게도 미역국을 먹고 말았으니 내 인생 최초의 쓴맛이었다.
어린시절, 백수기질에 한량기까지 농후하던 아버지는 방앗간일은 제쳐두고 밖으로만 돌았다. 그래도 장남인 아들이 입학시험에 미역국을 먹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어느날 아버지가 책을 한 권 사들고 왔다. 평생 학교문턱을 밟지 않았으니 책하고는 담을 쌓았을게 분명한데,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카알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일기 형태의 에세이집이었다. 힐티는 독일 태생의 변호사이자 철학자이고, 철학 교수를 한 이력의 문필가다. 어린나이라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십대 후반쯤 돼서야 다시 손에 잡은 것 같다. 어지됐든 그후로 힐티의 책은 애독서 중 한 권이 되었다.
힐티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책 도처에 신앙고백이 주를 이룬다. 한때 크리스천이던 나는 힐티의 책을 성경 대하듯 읽고, 숭앙하는 마음까지 일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에 가지 않을뿐 아니라 저자의 보수성과 경건주의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중용, 절제, 올곧음을 강조하는 그의 생활철학은 나의 취향이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후로 아버지가 사준 책은 낡아서 어덴가로 사라졌고, 20대인 70년대 초에 신조사에서 발행한 덤핑책을 다시 구입했다. 이 책 또한 어지간히 읽은탓에 책 커버에 손때가 묻었고, 자연 많이 낡았다. 최근에 새 번역판이 눈에 띄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다시 구입했다. 워낙 젊은시절부터 가까이 할 탓에 두 책 모두 맘 속에 간직되었기 때문이다.
2.우게쓰 이야기
늘푸른도서관 <소설 120권 영화 120편 읽고보기> 다음 시간은 우에다 아키나리와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쓰 이야기>다. 그런데 아키나리의 원작이나 미조구치 겐지 영화 모두 토론할만한 내용이 빈약해 걱정이다. 일본의 고대문학을 전공한 이들이거나 영화학도라면 몰라도 이정도 작품을 토론작으로 삼기엔 마땅찮은 것이다. 대개 고대 민담이나 설화는 '권선징악'이 주류를 이루기 때에 국학, 문학적 가치를 따지면 몰라도 특별히 할말이 없는 것이다.
더욱 문제는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쓰 이야기>다. 온통 영화사에서 최고로 추겨세우고, 실제 유럽영화인들을 몰아갔지만 이 정도 영화가 롱테이크 패닝인 이른바 두루마리 쇼트, 시퀀스쇼트가 특징인것은 틀림없으나 대체 이 영화가 왜 영화사적으로 유명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보기엔 전형적인 익조티즘이다. 물론 <오하루의 일생>은 그만한 명성에 그리 차이가 나진 않는다, 하지만 <우게쓰 이야기>만큼은 도무지 알수 없다, 일본판 전설의 고향에서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3.독서회
늘푸른도서관 <문학과 영화>- 소설 120편 영화 120편 읽고보기- 목록은 5년분이다. 언젠가 회원인 H씨가 "뭐를 하든 3년은 해야 성과를 알 수 있잖겠어요?" 라고 했다. 그래서 아예 5년치 목록을 짠거다.
예상은 했지만 참석률이 너무 저조하다. 많아야 다섯 명, 그렇잖으면 세 명, 이번 주는 한 명. 이래도 해야하나, 괜스레 시간 낭비하는게 아닐까. 열정도 지적호기심도 그리 뜨겁지않은 참석자들,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주부들이다보니 목록짜는데 신경 써야한다. 조금만 난해하면 머리에 쥐가난다고하니...어쩔수 없이 쉽고, 흥미있고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들이다.
< 러브 레터> <휴먼 스테인> <리스본행 야간열차> <세월>따위를 읽고 뭣을 얻을 수 있단말인가. 가능하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영화나 베스트셀러는 외면하는게 상책이다.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가.
진즉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구입했지만 짬을 낼수가 없다.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도 마찬가지. 책을 손에서 놓진 않는데, 막상 읽고싶은 책을 못 읽고 있다. 3년째 소설책만 붙들고있는것도 불만이다. 소설읽는 와중에 <서양철학사>, 쇼펜하우어의 <부록과 성찰> 카알 힐티의 <잠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같은 인생론집이나 기웃거리고 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몰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점점 나이 들고, 몸은 약해지고, 그렇다고 항상 건강하라는 법도 없잖은가. 앞으로 독서 할 수 있는 시간이래야 기껏 10년? 잘 해야 15년이다.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귀중하게 써야하는데, 허투루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는데....
한 주에 한 번하는 오케스트라만 참여하고, 사무실 틀어박혀 원하는 책만 읽을까? 그러면 사람관계가 끊어질까? 진지한 대화가 사라진 세상, 누구도 책을 읽지 않는 세태, 맛집, 운동, 연애, 돈벌기에 바쁜 세상이니 까짓 관계 끊어지면 어때? 일단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
4.이승우의 소설들
잔뜩 기대하고 한꺼번에 작품집을 여러 권 구입했다. 우선 읽은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 <지상의 노래>에만 한정하면 솔직히 실망이다. 한국문학에서 보기드문 종교, 신을 주제로 한 관념투 서사는 좀 희귀하는 점에서 꼽을 수 있지만 그래서? 그것말고 뭐가 있는데? 하면 뭐라 대답해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흐름,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연출한다는 느낌, 즉 작위적이라는거다.
물론 밀란 쿤데라가 그러듯이 여러 에피소드를 뒤섞어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는 이승우 식 소설 구성, 전략을 모르는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상의 노래> 경우 후와 연희의 에피소드는 너무 속이 보이고 억지스럽다. 이야기 진행 방식이 유치하다고나할까, 사촌 연희를 사랑한다는 관계설정 때문이겠지만 헤라헤어숍 사모님과의 관계는 참 뜬금없는 삽화다. 그렇다보니 이 소설의 가장 밀도있고, 흥미를 일으키는 천산의 벽서를 중심으로 한 한정효, 장의 에피소드가 긴장이 떨어지고, 마치 양복에 갓쓴 꼴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의도하는것까진 좋은데,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