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이승우의 소설집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문학과지성사)의 제목대로 정말이지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사소한 물건에서부터 필수품에 이르기까지 집에 무엇이 있는지 의외로 모르는 게 많다.
오래 전 일인데 아내에게 점수 좀 따볼까 하고 동네 마트에서 커피잔 셑트를 구입한 적이 있다. 왜 하필 커피 잔이냐고?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 나 또한 부엌살림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지라 그저 아내가 주는 밥먹고 왔다 갔다 하는 터였지만, 그날따라 마트에 진열된 멋진 커피 잔 하나가 눈에 띄었던 거다. 워낙 커피를 좋아한 탓이다. 한데 내가 마음먹고 산 똑같은 커피 잔이 집에 또 있잖은가. 글쎄, 늘 사용하는 커피 잔인데도 같은 게 있는지 몰랐다니.
내가 가끔 사용하는 운동모자는 원래 아들녀석 것인데도 내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뭐 모자야 별 것 아니니 그렇다치더라도 애지중지 하는 책까지 이럴 때가 있다. 가끔 서점에 들러 읽을만한 책이 눈에 띄면 얼른 사들고 오는데, 집에 와서야 비로소 예전에 산 책인 것을 알고 교환하러 가는 일이 있다. 물건도 이럴진대 하물며 정신에 관해서랴! 아무튼 누구랄 것 없이 우리는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고 지낸다.
주인공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새댁으로, 남편의 근무지가 워낙 먼 곳이라 신혼초인데도 불구하고 떨어져 지낸다. 한데,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새댁에게 이상한 증세가 찾아온다. 환상? 아니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넓은 주택에 그녀 혼자뿐인데도 마치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냥 느낌으로 그랬는데, 날이 갈수록 실제 같다.
헛것을 봤나? 처음엔 긴가만가 했는데, 반복되다 보니 이게 장난이 아닌 거다. 남편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환상일 거라는 거다. 신혼인데 떨어져 지내다 보니 외로워서 그럴 거라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남편이 그립더라도 좀 참고 지내라고 그런다.
어렵쇼! 그런데 날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진다. 그녀는 분명 집에 누군가 있다고 확신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관심이 없는 터라, 부득이 결혼 전 가까이 지냈던 친정 오빠에게 하소연 한다. 그러나 오빠 역시 마찬가지다.
"애야! 눈앞에 어떤 물건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그 물건이 실제 눈에 보이기 때문에 정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물건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 혹은 감각 따위는 믿을 게 못되는 거란다. 물건에 대한 나중의 생각이란, 길이와 색깔, 모양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될 수 있으니 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동생은 지금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집에 있다고 하잖은가. 그러니 이런 그녀의 생각이란 오빠의 말을 따르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이 겠는가. 따라서 분명 헛것을 봤거나 환상일 거라는 게 오빠의 말이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오빠까지 이 지경이니 그녀의 답답함은 더욱 커간다. 착각이라는 것. 자신의 욕망을 현실에 투사해서 실제 있을 거라 착각하는데, 그건 잘못이라는 거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것. 구체적인 현실만이 진짜라는 거다.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 머릿속 생각이란 환상이며 비현실이니 절대 믿지 말라는 거다. 이런 답답할데가 있나. 적어도 그녀에겐 허상이 아니라 실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정신병원에 가보길 권한다. 그녀가 말한다. 내가 정신병자라구요? 이거 왜 이래요. 왜 쌩사람 잡느냐구요.
결국 부부는 집을 팔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왠 중년의 남자를 데리고 온다. 예전에 이 남자의 어머니가 어렵게 이 집을 작만했는데, 가난한 살림에 자식키우느라 고생고생하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어머니를 그리워한 나머지 다시 집을 사들이려고 한다는 거다. 그동안 온갖 고생을 마다하고 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남자는 집을 보자 마치 어머니를 대한 듯 당장 팔라고 통사정한다. 그러자 여자가 그런다. 어머니 키가 어느 정도였냐고. 어떤 모습이었냐고. 워낙 진지한 여자의 말에 남자가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1미터 50센티에 갸름한 몸매였고 이마에 점이 있었다고. 순간 여자가 깜짝 놀란다. 그동안 그녀가 봤던 사람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환상과 착각이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바로 이 남자의 어머니였다고?
하지만 남자의 어머닌 이미 죽었다고 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남자에게 그런다. 당신은 정말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습니다. 물론 실제로야 돌아가셨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지금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분명 우리 어머니는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머니는 이 집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그런다. 맞습니다. 나도 당신의 어머니를 봤어요. 그것도 매일 말이지요.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줄거리다.
글쓰기를 하는 당신. 소설과 시를 쓰는 당신. 당신은 자신의 글에 나타난 사실들이 평소 마음 속에 내재되었던 욕망이 투사된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소산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니 글쓰기로 드러난 모든 것들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며 상상에 불과한, 허구적 산물이라고 단정하는가? 하지만 당신이 비록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라 하더라도 실제인 양 느껴질 때가 있지 않는가? 아니, 단순히 느끼는 게 아니라 실제로 확신될 때는 없었는가?
옛날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어느 날 정말로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어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반해, 그는 더 이상 다른 여인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의 사랑은 날로 뜨거워갔지만, 조각상은 언제나 차갑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비너스 여신에게 빌기로 했다. 이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내려달라고. 그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한 비너스는 마친내 그 차가운 대리석을 생명이 있는 따뜻한 육체로 변신시켜주었다고 한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나는 별스럽지 않은 글을 쓰는 아마추어 문사지만, 가끔 내가 써논 글을 읽으며 나르시즘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쓴 글이 허구적, 상상력이 빚어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인 양 착각을 하곤 한다. 내가 이럴정도니, 뼈를 깍고 피말리는 듯한 사투를 벌이며 소설과 시를 창작하는 사람이야 오죽할까.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당신이 비록 가짜로 만들어낸 허구적 인물이지만 실제로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마 이런 식의 느낌은 너무 리얼하게, 전심전력을 다해 쓴 창조적인 작품일 경우 더 현저할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말한다. 그거 말짱 가짜고 엉터리라고. 절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라고 말한다. 당신 눈 앞에 있는 그 생생하게 실제하는 것.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그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그동안 확고하게 지녔던 신념이 스르르 무너지며 혼란에 시작된다. 급기야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인물과 실제를 가짜라고 믿기에 이른다. 그러다 종당에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마저 따른다. 이거 씰데없는 짓 아닌가? 이거 말짱 장난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면 차라리 신을 믿든지. 그런데 내가 만든 것을 믿는다? 그게 말이 되나? 내가 신인가? 아서라 그만두자. 글쓰기라니,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물론 처음은 이랬을 것이다. 심심해서. 할 일 없고, 무료해서. 그냥 글쓰기가 좋아 소설 흉내내고, 일기쓰듯 부담없는 글쓰기를 했던 거라고. 그거 심심풀이 땅콩이었다고. 그냥 할 일 없어 해 본 거라고.
때로 그것들은 허구일 수 있고, 소박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또는 착각이나 환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피그말리온처럼 당신의 소망이 절실하다면 그건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변한다. 비록 환상과 상상 속의 인물이지만 그것이 절실하고 리얼하면 실제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에 대해 바이블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라고.
당신은 지금 마음 속으로 뭔가를 절실히 바라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장 글쓰기로 드러내 보시기 바란다. 내 장담하거니와 그 바라는 것들이 분명 현실에서 실제화 될 수 있다고. 다만 유념할 게 하나 있다. 치열해야 한다는 것.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보다 처절하게, 오로지 죽기살기로 그것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믿음 하나로 뚝심있게 버텨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