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TV방송에서 소설가 헤밍웨이를 소개하고 있었다. 평생 광적으로 낚시와 사냥을 즐긴 헤밍웨이. 그가 한때 살았다는 쿠바의 한적한 어촌풍경이 나오자 문득 대서양 원양어선 시절이 떠올랐다.
천 길 심해, 가도가도 끝없는 수평선, 광대무변의 바다, 적막! 대양 위 반짝이는 별들. 그런 장엄한 바다를 배경으로 헤밍웨이의 위대한 작품이 탄생했으리라. 그러나 내가 경험한 대서양은 지루하고 힘겨운 노동현장에 불과했다.
망망대해 수평선은 반복되는 일상과 무엇이 다를까. 간혹 우리 배 곁을 지나던 거대한 화물선조차 그저 그런 풍경 중 하나였다. 특징없는 모래 절벽,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아프리카 사막은 동해의 포구와 다를바 없었다. 세네갈 항구는 포항의 장기곶이거나 스무 살, 노가리 잡느라 소금기 비린내 풍기는 작업복을 입고 정신없이 드나들던 강구 항이나 모로코 다카르 항이나 그게 그거였던거다. 푹풍과 거친 파도, 어로작업 틈틈이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으며 심오한 그 무엇을 기대했지만 고기잡느라 지친 몸은 몇 십 분 토막잠만이 유일한 휴식이요 낙이었다.
평생 낚시, 사냥을 광적으로 즐겼던 헤밍웨이는 쿠바의 평범한 코이마르 어촌 생활을 바탕으로 불후의 단편 <노인과 바다>를 썼다. 코이마르는 우리의 해망동, 남해 어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어촌이다. 작가들은 흔히 보통사람이 겪을 수 없는 기이한 체험, 기이한 곳으로의 여행 – 가령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 – 특별한 체험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빗자루를 주라, 당장 소설을 써낼 수 있으니” 라고 말한 빅토르 위고 경우 소설을 쓰는데 특별한 경험과 소재는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