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이문 선집' 발간사
박이문 <남기고 싶은 말>
1. 나의 근황
눈에 덮인 들
학 한 마리
혼자
황혼에
서 있다
한 다리만으로
나는 지금 환자복을 입고 영원한 부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흰 시트가 깔린 일산의 한 노인요양원 병실
침대에 주로 누워 있다. 창문을 통해 바다같이 넓고 차고 푸른 하늘 그 위로 떠가는 뭉게구름을 자주 쳐다보곤 한다. 해가 지고 밤이 오거나 밤이
가고 낮이 오면, 낮과 밤의 사잇길을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과거도 돌이켜본다. 기억의 상처 속의 피의 뜨거운 바램도 생각해본다. 인생은 시인
천상병의 말대로 ‘잠깐 온 소풍’이다. 병원은 인생이 잠깐 쉬어가는 소풍지다.
나는 한평생 온 세계를 방랑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지성의
참모총장이 되겠다는 지적인 욕구로 프랑스며 미국이며 독일이며 전 세계를 헤매고 또 헤맸다. 여기, 그리고 저기를. 마치 저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처럼 계속, 또 계속. 때로는 마치 보이지 않는 별처럼.
학과 같은 내 아내 유영숙은 1주일에 두 번 정도 요양원을 방문한다.
아내는 원래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내가 병이 급격히 악화되어 오히려 아내의 병수발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요양원을 찾아오는 아내는 올 때마다 간식을 가져와 내게 먹여준다. 그리곤 내 손을 잡아 주고 볼을 부벼주기도 하며, 여러 가지
소식도 전해준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와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지금 내 의식 속에는
아내만이 뚜렷하고 아내 외의 사람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 노인장기요양등급 2급 판정을 받고 24시간 간호를 받고
있다. 아픈 아내 역시 지난 11월에 다행스럽게도 장기요양등급 4급 판정을 받아 요양사가 1주일에 2회씩 내가 없는 집을 방문하여 홀로 있는
아내를 보살펴주고 있다.
철학자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빌린 수탉 한 마리 값을 갚아달라는 것이었다. 칸트는 죽기 직전에 늙은 하인에게 포도주 한 잔을 청해 마시고 “좋다!”는 말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니체는 정신병원에서 극심한 치매 증상을 보이다 죽었다. 내가 좋아했던 비트겐슈타인이나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내 지도교수였던 자끄
데리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 은사 데리다의 특강에서 자주 거론하던 들뢰즈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 조용히 지내다가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하나뿐인 나의 아내, 맑고 깊고 시원한 큰 두 눈을 가진 희고 가냘픈 한 마리
학과 같은 아내와 함께. 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도 별과 구름, 산과 바다, 새와 꽃을 노래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자주 사무친다.
2. 다음 세대를 위하여
죽은 나뭇가지에서 터질 것 같은 초록빛 잎이 난다
죽은 잔디밭에서 처녀
같은 풀잎이 난다
어느덧 사방에 꽃이 피고
어느덧 가로수는 짙은 잎으로 무겁게 흔들린다
산으로 가 누워계신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많은 종류의 할 일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인생의 보배를 모두 다
동시에 소유할 수는 없다. 애국자가 되는 동시에 모리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생을 두고 나는 ‘목숨을 걸고 살 수 있는 어떤 이상, 어떤
가치’를 찾아내고자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가 나에겐 언제나 가장 절실했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우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차피 당장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죽는 날까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가장 보람있게 살 것인가?
그러나 슬프게도 어떠한 인생이 참다운
인생이며, 뜻있는 삶인가를 결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의 운명의 주인은 오로지 그 자신이며 자신의 운명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한 인간의 운명은 이미 밖으로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스스로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비록 모든 꽃나무가 언젠가는
시들거나 늙고 죽어 썪게 마련이지만, 꽃을 한 번이라도 피우고 죽는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꽃은 다
같이 지는 꽃이라도 그 중에 더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꽃과 그렇지 못한 꽃 사이에는 자로 측량할 수 없는 간격이 있다. 때가 되어 죽기는
마찬가지지만 꽃을 피우고 죽은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에 비해서 한결 아름답다. 때가 되면 다 같이 시들어 없어지기는 매일반이지만, 눈부시게
피어난 꽃은 그렇지 못한 꽃에 비해 훨씬 더 아름답다.
한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인생이 꽃나무에 비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꽃을 피우는 나무가 되고, 우리의 인생을 꽃에 비할 수 있다면 같은 값이면 보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죽는 순간 가슴에 손을 얹고, 누가 무엇이라든 간에 ‘나는 내 힘껏 내 뜻대로 옳게 살았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삶은 꽃이고, 성공한 삶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 곳은 저기가 아니고 오직 여기일 뿐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은 영원이 아니라 현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믿음직한 나무뿌리처럼 우리의 뿌리를 묻고 현재란 비바람을 맞을 때 비로소 우리들의 삶은 봉오리를 맺고 꽃으로 정화된다.
우리가 여기를 떠나 현재를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연못을 나와 둑에서 날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록 서리가 내리면
시들어버리고 말 꽃이지만 한 떨기의 장미꽃은 아름답고 한 줄기 난초꽃은 향기롭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저기 동네 어귀에 서 있는
전나무를 닮았으면 좋겠다. 삶이, 그 하루하루가, 아니 그 한순간 한순간이 자유와 그것이 동반하는 불안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의식하면
할수록 살아 있으면서 모든 정신적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초연하게 존재하는 전나무의 기개를 닮았으면 좋겠다.
썩고 병든 과거의
역사를 갈아엎고 미래를 개척할 젊은 세대들이 언제고 변함없이 푸르고, 어떠한 계절의 요란스러운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돌아가는 인간사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 딱 버티고 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서 마을에 중심과 질서를 잡아주는 묵은 전나무의
자신감과 지조를 배웠으면 좋겠다. 하늘로 곧장 높이 뻗어 뛰어나 보이면서도 단순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디 한 곳에서도 흩어짐 없이 잘 균형 잡힌
동네 한복판에 선 전나무처럼 황제와 같은 권위로 아주 당당하면서도 극히 겸손하고, 점잖으면서도 고귀한 품위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꽃이 진다고 해서 그 꽃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조만간 죽어 흙이 되고 벌레의 밥이 되게 마련이라고 해도
삶 일반, 특히 인간의 삶은 아름답고 귀하다. 우리 모두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우리들의 삶은 보람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삶의 존엄성과 절대적 가치를 의식하고 삶에 대한 경외, 삶의 성스러움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시들시들한 꽃보다 생생한 꽃이
더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로 적극적 삶, 인텐스한 삶은 그만큼 더 귀중하다. 인생의 의미의 문제는 도대체 삶 자체가 보람 있는가의 문제이며
어떻게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끝으로 남기는 말
소나무는
외솔길 숲속
소나무는
의젓하기만 하네
이유도 없이
뜻도 묻지 않고
그저 의젓하기만 하네
이럴 수가 있나!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이제 내게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나에게 죽음이 언제고 닥쳐올지 모른다는 사실은 아주 객관적인 자명한 일이다. 최근 들어
시력, 청력 그리고 특히 기억력도 나빠지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언제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나머지 삶의 하루하루를 좀 덜 부끄럽게, 그리고 좀
더 뜻있게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도 해보곤 한다. 나는 금년이, 아니 이 달이, 아니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임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때로 나는 나의 소원대로, 신조대로 살지 못한 채 허탈한 심정으로 지금 나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내가 정말 찾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한 인간으로서 큰 부끄러움
없이 살았던가? 어쩌면 무슨 변명을 다 대도 결국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살아가면서 나는 무엇을 어쩌자는 것이었던가? 나는
가짜가 아닌 진짜로 살았는가? 나는 어쩌면 가짜가 아니었던가? 나는 정말 진짜인가? 대답은 한결같이 불확실하다.
궁극적으로 의미가 없는데도
삶에 악착같이 매달려왔던 자신이 치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번밖에 못 사는 삶을 위해 더 잘 살고, 더
정당당당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나는 직업으로부터, 철학으로부터, 모든 물질적·사회적·관념적 속박과 구속으로부터는 물론
애착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자유분방하면서 충만한 생명체로서 흰 구름처럼, 끊임없이 떠도는 바람처럼 존재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철학적
사유처럼 투명하고,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고, 종교적 삶처럼 열정적으로 살고자 했다. 이제 삶의 마침표를 준비하는 지금 확실한 것은 위와 같은 모든
물음들에 대해서 마음 편히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내가 평생에 걸쳐 바로 ‘마음의 둥지’를 트는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둥지를 당신의 눈앞에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둥지는 어디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 지어야만 하는 각자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을 몸과 영혼과 정신을 바쳐 해온 작업은 철학적 둥지를 짓는 일이었다. 그것은
존재일반을 주제로 한 한편의 거대한 ‘철학적 시’이기도 했고, ‘시적 철학’이기도 했다.
세상을 사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 간의
물리적 정신적 관계의 총칭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한없이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의 경이로운 질서가 우리를 황홀케
한다. 나는 일찍부터 이런 상반된 감동을 시인으로서 언어에 담아두고 싶어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자로서 그러한 질서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시작한 시작(詩作)을 평생을 계속했고, 30대 후반부터 시작한 철학적 집필생활 또한
평생을 계속했다. ‘둥지의 철학’은 모순되어 보이는 위와 같은 나의 양면적 정신의 충동이자, 소망을 조화로운 세계관이자 동시에 인생관으로
통일된 하나의 시적 철학이자 철학적 서사시로 묶어낸 것이다. 인간의 시야는 0도에서 1도까지로 되어 있는 ‘존재-의미 매트릭스’의 눈금 사이에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육신의 존재가 비록 죽음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해도 ‘둥지의 철학’은 인간과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우주의 역사를
상상해서 풀어낸 내 필생의 시도였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