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함께 시골길, 봉숭아 꽃무리 앞에 발길이 멎었다. 다른 꽃은 없고 붉은색, 분홍색, 하얀색 봉숭아 꽃잎으로 가득찬 쬐그만 화단이었다. "봉숭아 물을 들여보면 어떨까?" 아내 역시 좋겠다고 했다. 화단 주인의 허락을 얻고 빨간 봉숭아 꽃잎을 땄다.
"봉숭아 물을 들이다" 라는 표현이 예뻐 입 속으로 말해봤다. "봉숭아 꽃물 들이다".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 잘 배이기 하려면 꽃잎과 이파리를 함께 사용해야 하고, 약간의 백반이 필요하다고.
예전에는 꽈리도 심심찮게 눈에 띠었는데 요즘은 시골에서도 꽈리를 보기 힘들다. 꽈리로도 물 들일 수 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꽈리....문득 대구 '물빛' 동인인 김세현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그대를 보내고 나는 꽈리를 불고 싶었다
씨앗을 빼버린 둥근 허공을 가볍게 말아
앞니로 살짝 깨물면
뽀드득, 가슴 속에 굽이치는
사랑한다는 그 말
꽃잎처럼 날아가
그대 마른 입술에 샘물로 흐르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대도 나처럼 꽈리를 불고 싶어질 것이다
- 김세현의 시 <꽈리를 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