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 오전 9시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 카페에서 약 250여 명의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나는 꼼수다’의 멤버인 김용민 PD – 김용민에게는 다양한 직함이 있지만 요즘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편집’하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할 것 같아서 맘대로 PD라 부르기로 한다. – 가 인도하는 ‘벙커 1 교회’(가칭)가 창립 예배를 통해 교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지난달 20일 첫 예배를 통하여 시작된 모임이 창립예배를 통하여 본격적인 교회로 발돋움한 것이다.
첫 예배를 시작한지 한 달 만에 25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세계 교회사에 남을 만한 엄청난 부흥속도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췄다고 걱정하며 교회 부흥을 염려하는 이들을 위해, 벙커 교회에는 있고 다른 교회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벙커 교회를 방문, 취재했다.
오전 8시 30분 교회로 들어섰다. 주중에는 벙커1 카페로 운영된다고 한다. 주가조작혐의로 구속 된 김경준이 사실은 자기가 아니라 대통령이 실 소유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BBK 투자자문(주)’ 회사를 빗댄 비비케익, ‘나꼼수’멤버인 ‘시사 IN’ 주진우 기자의 이름을 본 딴 주진우유 같은 재밌는 메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열린 혹은 열려진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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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벙커1교회의 주보 |
예배가 열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벌써 50여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한 쪽에서는 음향 장비를 셋팅하고, 반대편에서는 주보를 접고 의자를 옮기는 등 예배 준비가 한창이다. 일찍 온 사람들은 저마다 앉아서 기도를 하거나, 주보를 읽기도 하며 예배를 기다리고 있다. 여느 교회의 예배 전 풍경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곧이어 예배가 시작됐다. 주보를 나눠주며 초코파이도 함께 준다. 일찍 오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정(情)’같은 배려다. 18년 전 군대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교회 이름도 벙커1이다.
예배는 형식이 따로 없다. 굳이 따지자면 예전에 의한 예배가 아니라 열린 예배에 가깝다. 복음성가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예배가 시작됐다. 중간에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도 함께 부른다. 대중가요다. 예배에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이 적잖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주보에 몇 가지 사항에 대해 교인투표를 하면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에 대하여 찬반을 묻는 항목을 실어놓았다.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라는 신학적 개념이 있다. 교회의 선교(Mission of Church)라는 개념에 반대되는 개념인데 쉽게 말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교회에만 갇혀 계시지 않고 교회를 초월해서도 일하신다는 것이다. 뭐 대단히 거창한 개념인 것 같지만 상식적인 개념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만들었지 교회가 하나님을 만든 건 아니니까...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교회’가 된다. 교조화 된 교회, 화석화 된 교회, 교회 그 자체가 신격화 돼버린 타락한 교회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유럽은 교회에 매 주일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그렇지만 유럽 사회는 사실 한국 사회보다 더 기독교적이다. 가령 자신의 월급에서 절반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유지가 되는, 잘 짜여진 ‘사회 보장 제도’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성경적 ‘나눔’에 그 사상적 기초를 두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이란 제도의 탄생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성경적 사고에서 싹을 틔웠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의 철학적 통찰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란 타락한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교회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뿐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내는 것이 참된 선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배 시간에 대중가요 부르는 것쯤은 괜찮겠다. 대중가요도 하나님이 주신 영감의 결과물 이니까 말이다 그것도 심지어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노래만 선별해서 부른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지금 우리가 거룩하다고 여기며 부르는 찬송가 중에도 알고 보면 그 당시 대중가요의 멜로디를 차용한 곡들이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마시라.
찬양이 끝났다. ‘함께 하는 기도’ 시간이다. 그 자리에서 자원한 다섯 명의 성도가 단위로 올라온다. 각본 없는 드라마다. 기도가 특이하다. 주보에는 이렇게 설명이 돼있다.
“인도자가 기도를 시작하면, 회중이 나와서 1분 이내로 하나님께 간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말합니다. 개인의 바람도 좋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대를 말해도 좋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두 눈을 뜨고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5명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사연들과 기도의 내용들을 풀어 놓는다. 낯설다. 사실 기자의 눈에는 기도를 한다기 보다는 기도 제목을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신선하긴 한데 그 5명의 사람들의 기도 제목을 모두 모아 정리하는 기도를 간단하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눈을 뜨고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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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에 나와 기도하는 성도들 |
벙커1 교회의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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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하고 있는 김용민 PD |
김용민 PD가 나와서 함께 말씀을 나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성경에 대해 깊은 통찰이 있다. 심지어 은혜롭기까지 하다. 혼자 몰래 스마트 폰을 찾아보니 김용민 PD가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어쩐지... ‘적어도 보수 언론에서 제기할지도 모르는 ’목회자 자격 논란‘ 같은 것에서는 자유롭겠구나.’
창립 예배 설교답게 벙커1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설교한다. 그는 근대의 산물인 인간 소외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소외를 한 개인의 심리적 차원으로만 다루면서 모든 문제를 신앙의 영역으로 환원시키는 기존 교회의 모델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어서 기독교적 실존주의적 접근을 통해서, 세상을 바꿈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실천하는 공동체’ ‘변혁하는 공동체’로 나가는 것이 벙커1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한다. 한편 일부 신학자들이 제기하는 ‘퀘이커 공동체’와의 유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벙커1 교회는 평화주의, 사회개혁, 예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배형식, 그리고 평신도 중심의 사역을 펼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자가 듣기에도 퀘이커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모든 성공한 사상은 속(俗)화 되는 법! 문제는 선포한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포한 그대로 살아 내는 실천(Praxis)에 있는 것이다. 이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평화가 실현되고, 사회적 모순과 갈등들이 해결되고, 이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과 위로를 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교회의 존재 이유를 120% 달성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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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 PT 영상 |
설교가 끝나고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가 끝난 후 교회들처럼 모였던 이들이 서로 인사하며 문을 나선다. 김용민 PD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밌다. 예배가 끝난 후 담임 목사와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교회는 없으니까 말이다.
삼무교회(三無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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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립예배를 위해 모인 사람들 |
벙커1 교회는 삼무(三無)교회이다. 말 그대로 3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첫째는 헌금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헌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교회에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보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들의 계좌번호와 홈페이지가 안내되어 있다. 헌금은 각자 자발적으로 그 곳에 하면 된다. 또는 주보에 기재되어 있지 않더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된다, 벙커1 교회의 헌금하는 방식이다. 신선했다.
그러나 모든 교회들이 따라할 수는 없겠다. 교회의 유지비(예배당 임대료, 전기세, 주보 인쇄비, 간식등등)는 벙커1 카페의 수익금으로 쓰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용민 PD도 만약 벙커1 카페가 문을 닫았을 때의 교회 유지와 운영에 관해서 ‘어떻게든 되겠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벙커1 교회는 입지적으로 다른 작은 교회들에 비해서 유리한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실험적인 재정관리가 가능한 것이리라.
신선하고 옳은 방향이긴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은 이러한 헌금제도가 다른 교회를 비판하는 잣대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에 들어 온 헌금을 100% 목회자가 소유하는 교회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 정서 이상으로 목회자의 수입이 지나치게 많은 아주 소수의 대형 교회가 있을 뿐이다. 이 기준으로 기성 교회를 모두 모아 한번에 비판해 버리면 곤란하다.
둘째는 등록 교인이 없다. 등록을 받지 않는다. 세를 불리며,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자신이 교회라는 드라마의 주연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장로도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직분이 없다. 심지어 목사직도 없다. 하나님 아래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자녀, 제자,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래 교회의 직제는 권력 질서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기능에 따른 분류였다. 교단마다 직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집사(deacon)는 교회의 관리에 관련한 행정과, 목회자의 사래비와 같은 재정적인 행정을 담당한다. 권사(exhorter)는 미국 감리교회에서 시작 된 제도인데 한자로는 勸師라고 쓴다.
권하는 스승! 즉 목회자가 청하면 목회자를 대신해 기도회와 사경회 등을 인도하는 기도회를 인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이었다. 장로는 장로교회의 제도로서 교회의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들로 이해할 수 있다.. 장로교회는 목사도 하나의 설교하는 장로(preaching elder)로 이해한다.
원래 그랬던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의 직제가 세속화되고 권력화 되면서 마치 교회 내의 계급체계처럼 변질되었다. 선교초기에는 한국의 장로교회는 권사 직분 자체가 없었다. 감리교회는 장로라는 직제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두 종파가 경쟁적으로 선교를 하면서 서로의 직제를 차용하게 된 것이다.
벙커1 예배당을 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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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립기념예배 알림 영상 |
벙커 교회는 기성 교회의 시각으로 보면 꽤 실험적인 모양새다. 그러나 벙커 교회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성교회가 보인다. 그런 면에서 벙커1 교회는 한국 교회의 거울이다. 기사를 위해 벙커교회 카페에 들어갔다가 담임 목사의 신도 추행 사건을 목도하고 1년 정도 교회를 쉬다가 이곳에 오게 됐다는 한 성도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다.
한국 개신교회라는 말은 실체가 없는 모호한 말이긴 하지만(한국 캐톨릭이라는 분류는 가능하다. 왜? 카톨릭은 교황과 각국의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 중앙의 통제를 철저하게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철저하게 개교회 중심이다. 교회적인 모든 일은 개교회가 알아서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한국 개신교회가 썩었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그러나 대형 교회(mega church)들이 사회적으로 개신교회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 교회가 타락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썩어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것을 하늘에 쌓으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본인은 한 오백년 살 것처럼 이 세상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재물을 꾸역꾸역 쌓아 두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성직자들, 돈으로 표를 사놓고도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는 바울의 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인용해 대는 교회 지도자들, 교회에 들어갈 때는 ‘세속의 옷’을 잠시 벗어두고 ‘거룩의 옷’으로 갈아 입고, 나올 때는 거룩의 옷을 가볍게 벗어 던지는 모순을 일상으로 살고 있는 교인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어떻든 이제 김용민은 예의 그 신랄한 교회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기자의 기억이 맞다면 김용민은 올해 말 대선이 끝난 후에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과정을 밟을 예정이었다. 무엇이 그의 일정을 앞당기게 했는지는 몰라도 벙커1 교회가 잘 됐으면 좋겠다. 몇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벙커1 교회는 목적지까지 대다수의 한국 교회들과 조금 다른 길로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기성교회가 갖고 있는 제도와 형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그것이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부흥의 비결이다. 부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시길! 진심으로 벙커1 교회의 백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