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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으로 아는것과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어떤 책을 읽은 것만으로 마치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양 착각한다. 하긴 그 책을 쓴 저자조차도 이점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독자야 오죽하랴. 따라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점은 알고 있는바를 실천했느냐 안 했느냐다. 살면서 누구나 괴리감을 느낀다. 가령 현실/이상, 지식/실천, 생각/실천 사이의 괴리감 등등. 중요한 것은 이런 괴리감,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얼마나 좁혔는가가 최종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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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비논리적인 세상을 고상하게, 교양있게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산속 절간의 중이 아닌담에야 어찌 매사에 초연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도도한 자본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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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이해가 안 되는 책은 일단 덮자. 제아무리 위대한 명저라도 지금 이해 할 수 없다면 시도는 하되 미련두지 말고 유보하자. 내가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않다. 잘해야 15년 정도? 이쯤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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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럽고 좁아터지고 소심하고 줏대가 없고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쉽게 화를 내고 다혈질적이고 호오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깊이가 없고 쉽게 포기하고 원칙이 없고....이것이 나의 실제 모습이다. 어쩌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그나마 위로는 몽테뉴의 에세 한 대목이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
5
미리 죽음을 준비하기. 우선 일상 속에서 죽음을 자주 떠올리고, 배우기. 둘째, 내일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것. 다음으로 죽음을 공부하기. 죽음에 따른 두려움과 공포 감정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죽음을 당하지 말고 맞이하기. 오랜 세월 거친 세상에 살았는데, 떠나는 순간 어찌 아프지않고, 힘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조차 견뎌야 하는게 인생살이다. 한 해를 보낼때마다 최대한 기록을 남길것.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1)황당하고 두렵다 2)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진다 3)받아들이고 수용한다 4)통증 완화제를 쓰며 육체적 고통을 견딘다 5)가능한 한 병석에서라도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낸다 6)단 한 문장이라도 책읽고, 명상하고, 이야기하기 7)의식이 있는 한 몸과 복장은 품위있게 단정하게 깨끗하게 8)가능한한 집에서 보낼것 9) 유머, 웃음을 잃지 않기 10)모두에게 감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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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의 <일포스티노>. 황지우는 같은 제목의 시에서 "나도 가해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가해자! 영화 후반부 장면에서 시인 지망생이자 네루다의 전담 우편배달부인 마리오는 네루다에 바치는 시를 낭독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던 중 시위대 무리의 발에 밟혀 결국 압사당한다.
마리오의 경우 시는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아기, 그리고 아름다운 섬의 풍경을 노래하는 행위 그 자체다. 반면에 네루다의 경우 시는 이른바 참여시, 정치적인 주제로 나아간다. 따라서 마리오의 죽음은 네루다의 시적행위가 민중으로 승화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황지우는 '가해자'를 떠올린다. 즉 시가 정치적으로 되는 순간 마리오의 죽음, 시의 죽음에 직면한다는 거다. 참여시와 순수시의 대립 속에서 시적 순수성이 깨지는 것. 그것이 곧 마리오의 죽음이고, 황지우는 "나도 한 사람의 가해자가 아닌가" 라며 회한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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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박식함은 실로 엄청나다. 문사철은 물론이고, 종교, 정치, 사상을 가로지르며 음악, 미술 등 온갖 분야를 섭렵한다. 우리사회에서 흔치않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 분명하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한 고전 강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엔티테이너 기질은 물론이고,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테크닉은 가히 독보적이다. 뿐만인가. 그토록 복잡하고 심오한(?) 동양사상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학자,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은 좀 문제가 있다. 가령 독창성이 결여되었고, 잡다한 관심으로 인한 전문성 결여(학문적 깊이 결여). 동양학내지 국학에 대한 과잉집착 내지는 과장, 학자.학문으로서 객관성 결여 등등.
학자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대중계몽, 다른 하나는 자기 분야의 전문적 학자. 짐작컨대 도올은 이중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 같다. 여하튼 그의 수많은 저서들은 대중에게 다양한 지식을 체득케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학문적 성과, 사상가, 독창적 저술로서는 함량미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