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건강이 좋아서 앞으로 17년을 더 살수 있다면 내 나이 여든. 파삭 늙어버린 나이에 무엇을 할까마는 상상으로나마 여든 고개의 미래를 그려본다.

 

돋보기 도움을 받으면 드문드문 글이야 읽을 수 있겠지? 하지만 너무 나이들었으니 기억력은 감퇴되고 읽는 속도도 더딜 것이다. 이해력 떨어지고 건강 역시 좋지않겠지만 그렇다고 평생해온 독서와 공부는 중지 할 수 없다. 사실은 책 읽는거 말고는 달리 할게 없고 즐겁지도 않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공부는 죽는 순간까지 해야하니.     

 

60즈음에 시작한 단테읽기를 반복하고 스피노자를 읽으며, 들뢰즈, 라캉을 공부한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재독하거나 이해 불가인 헤겔과 칸트를 끝내 놓지않고 되찾아본다. 마찬가지로 평생 숙제 같은 셰익스피어,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 보르헤스의 작품도 조금씩이나마 읽어본다.  

 

세계영화사를 공부하고 '시네 21'을 탐독하며 새로 출시된 DVD 목록을 살핀다. 해마다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건만 여전히 타르코프스키, 앙겔로풀로스, 베르히만, 부뉴엘, 고다르, 안토니오니, 트뤼포아, 홍상수, 봉준호의 영화형식이 궁금해서 이미 수차례 감상한터지만 또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한 주에 한 번 컬렉션한 영화 중 두 어 편정도 감상하고 1년에 한 번이라도 아내와 함께 영화제에 들른다.    

 

매일 아침 한겨레신문을 읽으며 '시사 IN'을 구독하고, 가능하면 하루 한 시간 트럼펫 연습을 한다. 80나이가 되도록 호흡량에 큰 지장이 없다면 지금처럼 오케스트라 활동을 계속 할 수 있겠지? 주말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나가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1년에 한 차례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정기연주회도 할것이다. 글쎄,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하얀 백발, 주름깊게 패인 파파 노인차림으로 무대에 선 내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아침마다 아내와 함께 드립커피를 마시며 자식, 이웃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 특히 정치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정치는 태어나 죽을때까지 가장 중요한 사안이므로 아내와의 대화에서 가장 신나는 화제가 아닐 수 없다. 부부 대화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 나이들어도 대화는 더 풍성해야 한다. 주중 두어 번쯤 동네 카페에 들러 이웃들을 만나고, 점심은 빵과 커피로 때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지만 범부인 나는 이름을 남길 이유가 없으므로 잡글이라도 남겨야겠다. 비록 창조적인 글, 심오한  글, 긴 글은 쓰지 못해도, 또 누가 읽지 않을지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하루 단 한 줄이나마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   

 

햇볕 따사로운 어느날, 사위는 적막에 잠기고 인적이 없는 나의 집. 사랑하는 아내는 늙어 허리가 굽고 자식들 멀리 떠나 있으니 둘이만 있는 집은 그 어느때보다 고요할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 살다가 때가되면 죽음으로 돌아가는것. 만약 우리에게 죽음이 없다면 대체 인생이란 얼마나 무의미하고 지루하겠는가. 

 

살아온 나날 되짚어보니 마냥 즐거운 일만 있던게 아니라서 괴롭고 힘든일, 때로 기쁜일, 즐거움도 많았다. 서운할것 슬플것 없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재밌고 만족스런 삶이었으니 이쯤해서 슬슬 죽음을 마주해야겠지? 아, 깜박 잊은게 있다. 내가 만약 죽으면 관 속에 책이라도 한  두어권, DVD라도 두 어장 함께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저승길, 먼길 가는데 지루할게 분명하므로 심심파적 책 읽고 영화라도 보면서 가고싶으니....그러고는 편안하고 달콤한 긴잠에 빠져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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