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인 내가 왜 신학에 관심을 갖는가. 이유는 철학이나 역사처럼 신학도 인문학의 한 범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철학서를 읽듯이 단지 지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거다. 신학서를 가까이한 때문인지, 간혹 교회에 다니는 친척들, 이웃들은 나를 예배당으로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신론을 자처하는 터에 겨우 신학서 몇 권 읽는다고 교회에 나갈수 있을까?
무신론자인 내가 볼때, 칼 바르트의 하나님론(신론), 그리고 예수론(기독론), 교회론은 서구형이상학이 그렇듯 완벽한 픽션이다. 단지 오랜세월 공을 들인 정교한 허구적 체계, 지적체계의 산물이라는 것. 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설사 칼 바르트가 제 아무리 방대한 조직신학 체계를 세웠더라도, 문학적 상상력과는 유형이 다른 허구적 언설체계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가 조직신학, 즉 어떤 종교라는 이름아래 체계화된 논리들, 특히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등에 관심을 갖는건, 한 지식인의 진지하고 정교한 종교적 상상력의 세계를 엿보고싶고, 그 상상력의 결과가 어떤 글로 나타나는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적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