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고전 번역에 관한 한 천병희의 작업은 가히 독보적이다. 평생을 오로지 원전 번역에만 매달려온 그의 공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번역 보다 짜깁기 논문 한 편을 위에 두는 우리의 번역 풍토에선 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고전학자로서 그의 연구성과는 어떨까.   

 

그 역시 학자니만큼 오래 전에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라는 연구서를 내긴 했지만 구색을 갖춘정도지 엄밀히 말해 학문적 성과물로는 별로다. 어느덧 그가 번역한 그리스 고전이 30여권에 이른다. 이만하면 학자로서 자기 할일 충분히 다 한거고 이제 연구는 다른 이의 몫으로 남겨도 무방할 것 같다.  

 

영문학자이면서 그리스 고전을 연구한 임철규의<그리스 비극>(한길사)은 제반 연구성과를 인용, 비교, 정리, 소개하고 있지만 실증적인 작업에 그칠뿐, 주체적인 해석이나 견해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말하자면 각종 연구 성과물의 모듬이라고할까. 하지만 우리가 천병희의 역할에 만족해야했듯이 임철규에게도 더 이상 바라서는 안 될 것 같다. 불모지에서 이만한 지적 성과물을 비교, 소개한것만해도 어데인가.   

 

다음은 중견학자이자 정암학당 멤버인 강대진.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일리아스, ....> <오뒷세이아, ...>라는 두툼한 해설집을 냈고, <비극의 비밀>(문학동네)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 비극 해설집도 출간한바 있다. 하지만 세 권 모두 원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매 장면마다 자세하게 해설을 붙인 가이드북이다. 초보적인 독자, 청소년용으로 적당한 이런 해설서를 두고 무슨 학문적 성과니 주체적 해석이니 하는 말을 할 수는 없겠다.

 

섭섭한 일이지만 그리스 고전에 관한 한 주체적인 해석이 곁들인 국내연구서는 아직 없다고보면 된다. 다만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김상봉의 작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그리스 비극의 편지> <나르시스의 꿈>(한길사)에 서술된 단편적인 견해, 디지털강좌 '아트앤스터디'에 개설된 <그리스 비극론>강좌가  그것인데 일단 그리스 비극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끌어들인건 호감이 간다. 어쨌거나 난삽한 학문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끌어들인건 지식인에게든 일반 독자에게든 실천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다만 줏대있어보이는 그의 견해가 학문적 성과로서 어떤지, 어느정도 보편성과 객관성을 아우른 해석인지 나로서는 아직 판단할 능력이 없기에 다만 견강부회적 해석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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