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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사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왕은 없었다. 그리스인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평등이었다. 권력 관계에 있어 상하는 있지만 왕이 가진 권력과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의 전통은 고전기에까지 이어진다. 그리스인들에겐, 동일한 공동체에 속하는 인간은 평등하며, 권력자들은 힘과 탁월함으로 백성들을 지켜줘야지 무력으로 군림하려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이 자리잡았다. 기원전 5세기는 이것이 꽃핀 시대였다. 우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 초기 페리클레스가 전몰 장병 추도 연설을 하는 장면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설문에서 페리클레스는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아테네인의 우리는 자긍심을 남김 없이 보여 준다. 그는 자유민의 본질적인 존재 양식이 정치에의 참여라는 것을,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쓸모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그 어떤 근대인들보다 근대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국가의 본질은 자유에 있고 자유가 있을 때 인간은 최고로 행복할 수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고의 덕목은 용기이다. 자유인은 만약 노예로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다면, 위기의 순간에 용기를 보임으로써 자기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고전기 5세기 그리스인 삶의 최고의 이상은 이와 같은 의미의 자유에 놓여 있었다.”    - 김상봉 '아트앤스터디' <그리스 비극론> 강의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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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날 그리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몇몇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아주 별난 상황에서 살고 있었고 가장 예외적인 민족성을 타고났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을 눈부시고 안정된 문명이라고 여기는 습관에 깊이 젖어 있지만, 실은 에게 해 연안에서 서부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아주 짧은 기간 빛을 발휘했다가 사라진 일련의 화려한 문명일 뿐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그리스 문학과 예술이라는 유산은 지극히 값지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삶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본보기일 뿐이다. 그리스인들은 연구해야 할 외래의 문화가 없었고, 배울 만한 외국어나 사어(死語)조차 없었다. 그들은 책도 별로 읽지 않았고 남의 말이나 즐겨 경청한 편이었다.

 

그들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민족으로서, 사교적 환락에 깊이 빠지는 한편 우리가 근면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척 많았고 그들의 지혜는 제신(諸紳)이 내린 은총이었을뿐이다. 그들에게는 쓸만한 지능이 있기는 했지만, 반면에 중대한 도덕적 결함도 있었다. 만약 오늘날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의 보통시민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는 우리를 적잖게 실망시킬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애당초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야만성뿐 아니라 퇴폐성까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체격마저 우리에게는 환멸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리스인들을 그들이 살던 고대 세계에 고이 모셔두라고 하자. 그 세계는 몇몇 사람들의 상상력을 위해서는 소중하지만 현대를 사는 다수 대중의 일이나 정서를 위해서는 마치 멤피스나 바빌론만큼이나 무의미할 뿐이다.    - 조지 기싱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상록> (효형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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