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문제가 생긴다. 우선 돈 지출이 대책없어지고, 읽지않은 책이 책상에 자꾸 쌓이면 이 책 저 책 뒤죽박죽되어 종당에는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한 마리 쫓으면 될 것을 두 마리 세마리 할것없이 욕심껏 쫒다보니 한 마리는 커녕 모두 놓치는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당장 눈에 확 띄는 책이 있는데 어찌 참으란 말인가.
어제 한길문고에서 몇일전 주문했던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을 사들고 왔다. 그런데 하루를 못참고 오늘 오전 수협에 들러 무통장 입금으로 셰익스피어 연구서인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박소현 역, 민음사)를 또 주문했다. 얼른 셰익스피어를 읽고싶어서다.

계획대로 하자면 그리스 서사시, 그리스비극, 역사(헤로도토스, 투키티데스), 철학(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순서로 읽어갈 예정이니, 셰익스피어는 아직 한참 멀었다. 이전에 아카넷(강대진 역)에서 출간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감히 읽을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 덕분이다 - 를 비롯해서 라틴 고전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도 있고 단테도 읽어야 한다. 더욱이 단테는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강의>(안티쿠스)를 비롯 여러 연구서를 병행해서 읽어야 하기때문에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러니 셰익스피어는 아쉬워도 좀 기다려야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다.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속도 위반을 할밖에. 다만 본격적으로 덤벼들 수 없으니 변칙적인 방법을 쓰자. 가령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햄릿> <리어왕> <헨리 5세>, 오손 웰즈 주연의 <오셀로>, 맥베드를 영화화 한 쿠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집의 성>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향한 의지>를 읽는 것이다. 최종철이 번역한 민음사판 4대 비극은 이미 읽었으니 대충 영화를 보면서 스티븐 그린블랫을 읽는다면 셰익스피어 접근이 좀 용이할 것이다.
나는 요즘 읽고 있는 그리스 고전에 최대한 시간과 열정을 투입하고,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도 그리스 고전 못지않게 공을 들여야할 작가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김정환이 번역한 전집판, 시공사판 RSC본, 이경식 교수의 문학동네판(<햄릿> <템페스트> <베니스의 상인>)를 서로 비교하면서 읽으려고 한다. 병행해서 국내에 번역된 각종 연구서도 가능하면 최대한 찾아볼 작정이다.
새 책들은 얼마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가! 정말 매일 삶의 진리에 대해 새롭게 말해 주는 책들이 바구니 가득 하늘에서 떨어졌으면 좋겠다. 이 바람들은 자연스럽다. 이 기적은 쉽다. 저기 하늘에 있는 천당이란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 싶어서다.
한 편의 책을 잘 씹으세요, 조금씩 마시세요, 책의 장면들 하나 하나를 맛보세요. 이 모든 규범은 아름답고 좋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이 그것들을 관통한다. 우선 먹고 마시고 보려는 좋은 욕망이 있어야 한다.
많이 보고, 또 보고, 계속 보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내 책상 위에 쌓인 책들 앞에서, 혹은 도서관이나 서점의 서가에 쌓일 책들을 생각하며, 책의 신에게, 나는 게걸스런 독자로서의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 -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일부 문장을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