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감상했습니다. 근자 피아노 소나타는 주로 모차르트, 베토벤 등 빈 고전파에서 서성대거나 요며칠 슈베르트만 줄창 들었습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D959> 2악장 안단티노. 실은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의 <윈터 슬립>의 여운이 꽤 오래 간 셈이죠. 영화음악치고 이처럼 탁월한 선곡이 또 있을까요. 슈베르트와 <윈터 슬립>은 한 치 오차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궁합입니다. 자 다시 쇼팽입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피아노 연주입니다. 1악장 주제 선율은 23마디부터인데 이 지점에 도달하면, 아하~ 쇼팽이로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되어있죠. 특유의 서정성, 유려한 선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아다지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2악장도 쇼팽 못지않게 유려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점은 고전파와 낭만파의 가교 격인 슈베르트도 마찬가지죠. 쇼팽의 매력이랄까, 센티멘털리즘과 서정성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눈부신 햇살너머 찰랑이는 서정의 아린 물결, 틈새로 빚어내는 섬세한 아름다움은 정해진 박자 내에서 슬며시 느려지는 것, 바로 루바토에 있습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일컫는 쇼팽의 전매특허죠. 쇼팽을 말하다보니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는군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쇼팽을 연주할 때 곧잘 애를 먹습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은 연주회 단골 레퍼토리라 프로든 아마든 자주 무대에 올려지죠. 하지만 워낙 루바토가 잦다보니 오케스트라는 반드시 지휘자의 지휘를 잘 봐야합니다. 물론 지휘자야 피아니스트의 흐름을 따라가며 루바토를 멋스럽게 처리하고싶지만 어데 그런가요. 악보 보기에 급급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니 말이죠. 그러니까 트롯트의 멋이 어떻게 음을 잘 꺽는지에 달려있다면 쇼팽의 멋은 루바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피아노의 향연에 한껏 느긋한 초봄 오후녁입니다. 모든 예술에서 음악이야말로 가장 즉물적인 장르가 아닐까싶군요. 애써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니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귀에 들려오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되니 말이죠. 때로 아름다운 선율에 귀기울이다보면, 내가 이렇게 느긋해도 되나, 아름다움에 무방비로 빠져들어도 되나? 라는 좀 우스운 생각이 듭니다.  

아마 우리 세대라면 대개 그럴것입니다. 못 먹고 고생하던 사람들이 느끼는 특유의 걱정 같은것. 살림이 좀 펴진 지금도 궁상스런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어쩌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보면 무심코 떠오르는 부모, 가족들의 모습. 나 혼자 호사를 누려도 되나? 이런 맛있는 걸 어떻게 나 혼자.....지금 쇼팽이 그런거죠.

다시 쇼팽입니다. 딸 은별이의 사진, 초등학교 시절, 고사리 손으로 피아노를 치던 은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전에 잠깐 비가 내리더니 한낮 초봄 햇살은 여전하군요. 바람 살랑이는 옥상 컨테이너. 잠결에 죽은 막내동생을 떠올리다 잠이 깼습니다. 콘테이너 근처 바로 저 곳이었죠. 엘리베이터 계단을 오르다 처음 발병을 알게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다돼가네요.

음악은 이러저런 추억에 잠기게 하고, 때로 오래 전 어느 순간의 기억을 오롯이 불러내기도 합니다. 순간 눈앞에 재생된 옛 일들은 무심한 세월 속에 사라지지 않고, 생생한 현실로 뒤바뀝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음악의 매력일터인데, 유일하게 음악만이 가능한 신비로움이자 마술 같은게 아닐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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