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은 어느 한 지점에 명확하게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즉 찰라적인 순간들이다. 쉼없이 흘러갈뿐이니 세상 그 어떤 것도 고정된게 없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라것도 환상일뿐다. 수많은 과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덧없는 삶, 의미없이 주어진 삶은 그렇게 하염없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어느 때, 과거의 어떤 한 순간이 지금 내 앞에서 오롯이 되살아날 때, 마치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그 어떤 것처럼 생생하게, 명확하게 되살아난 그것이 오히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건 아닐까? 그러므로 과거란 이미 잊혀진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보다 더 실재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카뮈 혹은 사르트르와 또 다른 의미에서 실존의 의미를 말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프루스트,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는 동일하게 잃어버린 과거를 현재보다 더 뚜렷한 현재라고 증언한다. 

현실은 마냥 지루하고 덧없다. 반면 문학과 영화, 혹은 음악 속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가까운 지인 대신 죽은 이를 더 경배하고, 가깝게 느낀다고 핀잔한다. 현재보다 과거가 더 낯익다는 것.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현실이 지루하기 때문이고, 이런 나는 또 한 명의 보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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