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요시네마

격주로 진행하는 '금요시네마' 첫 번째 상영작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 참여자 2명.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단순 로맨스물이지만 접근하기에 따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언급할 수 있다. 사실 상영작 선정은 소수인 참석자들의 형편이 첫 번째 고려사항이다. 

맘 같아서는 타르코프스키, 고다르, 베르히만, 브레송  등의 명작부터 감상하고싶지만 어쩔 것인가. 이 점은 독서회도 마찬가지인데, 제 아무리 단테,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에서부터 카프카, 조이스, 포크너, 나보코프라는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다한들 당장 입에 넣을 수 없으니. 과연 누가 카뮈, 사르트르를 읽고자 할 것이며, 니체를 읽으려 할 것인가. 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태에 도스토예프스키를 과연 권유할 수 있을까? 요원하다. 비록 아쉬움투성이지만 프로젝터는 계속 돌아가야 하고, 독서회 역시 진행되어야 한다.   

2. 분주함

별 할일도 없는 사람이 실제 생활은 더 바쁘다.  그들은 놀기에 바빠 당최 시간을 낼 수 없다. 독서할 시간이 없다. 영화볼 시간도 없다. 글쓰기를 할 시간은 더욱 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어데어데 다녀왔다. 산책 하려고, 운동하느라, 해외여행 다녀오려고, 누구누구를 만나려고, 화장을 하느라 시간이 없다. 바쁘고 바쁘다. 술마시고, 커피 마시며 잡담할 시간은 있어도 사색할 시간, 독서할 시간은 없다.

3. 그림자 당신

나는 너에게, 당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건네고 또 건넨다. 그러나 너는, 당신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내 글을 읽고 속으로 짐작만 한다. 그러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군, 이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군. 좀 음흉한데? 거짓말 아냐? 내 생각과 살짝 다르군. 그럴듯하긴한데, 사실은 그게 아니지 등등.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건넨다. 말하고 또 말한다. 급기야 하루 한 꼭지씩 말하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 아마 죽을 때까지도 응답없는 메아리.

그래도 쓰고 또 쓴다. 다시 말을 건넨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떤가하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어느 때는 수줍게, 어느 때는 자만심으로 가득차서, 어느 때는 자신있게, 어느 때는 소심하게, 때로 현학적으로 어느 때는 솔직하게, 어느 때는 과장한 투로 말을 건넨다. 행여 한 마디 답을 하지 않겠냐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원히 허공 속의 메아리는 아니잖겠냐고. 하지만 누구도 대답이 없다.

다시 말을 건넨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속으로만 가늠하며 읽고 또 읽는다. 가만 속으로 되뇌인다. 거짓말! 건 아닌데! 그럴듯하군! 인형 같은 당신, 너. 그림자 같은 당신, 나에게 의미없는 당신, 죽은 자와 다름없는 그대. 실제는 살아있지만 교통이 불가능한 죽은 그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전할 수 없는 그대. 당신. 그래도 나는 쓴다. 쓰고 또 쓴다. 말을 건넨다. 다시 말한다.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 결국 나는 죽은 당신과 너 대신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를 향해 독백한다. 혼자 말하고 혼자 쓴다.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읽고.   -  오늘도 <딜레탕트>를 방문한 당신에게! ^^

4. 문화카페

최 작가가 방문했다. 홍차를 마시며 두어 시간 담소. 중학 동창생 P가 최 작가에게 맡긴 원고 교정에 대한 의견, '인문산책' 차기 토론주제인 이청준의 단편 <조만득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 

비록 회원 몇 안 되는 단촐한 문화 모임들이지만, 평소 원하던 모임을 내가 운영하는 독서실에서 하고 있으니 뭘 더바라랴. 모임의 수준이며 내용이야 차치하고, 오래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같이 회원들 누구라도 오다가다 들러 차 한 잔 나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5. 세속화 시대의 종교

독서실에 인접한 골목길은 대략 200여미터. 작은 골목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있다. 길 입구의 타일집, 자동차 수리센터, 빌딩 하나에 교회, 노래방, 중국집이 함께 세들어있고, 유치원, 독서실, 그리고 낡은 주택 몇 채, 마지막은 긴 대나무 끝에 붉은 깃발을 단 ** 보살 점집이다. 요즘 점집은 한창 성수기인데, 군산 경기가 크게 안 좋은 탓이다. 엊그제는 돈깨나 있는 손님이 들었는지 문 앞에 차린 음식이 푸짐하고, 짚신 몇 켤레, 촛불, 떡, 과일 등 평소와 달리 걸졌다.  하긴 절박할수록, 맘이 간절할 수록 음식도 많이 차리고 굿소리도 커야 귀신도 감동할거다.   

공교롭게도 한 빌딩 위 아래 층에 나란히 세든 노래방과 교회는 일요일 낮이든 밤이든 노래소리가 교대로 크게 들린다. 교회는 찬송가,  노래방은 대중가요. 마이크 소리 요란한 노래는 가사도 창법도 서로 다르지만, 노래하는 목소리만은 간절하다. 일상의 찌든 힘겨운 속내들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불경기 탓에 중국집은 지난 달 폐업했고, 임대라고 써붙인 건물이 여러 채다. 심야 노래방은 불빛만 환하지 손님이 없어 보인다. 반면 점집과 교회는 그럭저럭 현상 유지를 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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