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뭔놈의 술을 고렇게들 마시나. 글쎄 양주 한 병을 한 자리에서 싸그리 비워버리니 원~. 작지도 않은 컵에 한 잔 가득 따른 후 단숨에 쭈욱~ 아이고 기가 막혀서. 접때 사위가 큰맘먹고 사다준 양주 한 병을 한 자리에서 둘이 깨끗히 비우더란 말이지. 실은 술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마무시한 주량 땜에 놀랐다네.

하두 놀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지. 이렇게 술마시는 사람이 정상이요 아니요 그랬더니, 어떤 이는 비정상이라고하고, 또 어떤 이는 그런 사람 한 둘이 아니라고해서 또 놀랬다네. 아니 일정시대도 아닌데 대주불사하는 이가 요즘도 많다구요? 그렇다네. 나만 몰랐던거지. 내가 알기로 술이란 조곤조곤 한 잔 따라갖고, 한 번, 두 번 시나브로 몇 번이고 배어마시는게 아니겠나? 그럼서 이런 애기 저런 애기 하는거거든. 때로 한 잔 술로 밤을 지새울수도 있고.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양주 한 병을 깡그리 비울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참 놀랄 일도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니까.  

물론 술이 좋긴하지. 몇 잔 들어가면 없던 용기 생기고 기분 올라가고, 뭐 머쓱하던 기분 느슨하게 풀어지고, 하다보면 줄곧 침묵하던 사람도 슬슬 말문이 터지니. 여하튼 감정과 기분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알콜의 효용성은 분명하지. 다만 술이라는게 없던 기분나게 하거나 반대로 가라앉은 기분을 해소시키는 이른바 스트레스 푸는데 좋은 거라는건 틀림없는데, 문제는 고놈의 술에 취하기만하면 할 말 못할 말, 감당할 수 없는 말까지 마구 내뱉질 않나 주절주절 씨잘데없는 말로 밤을 지새우고, 방금 했던 말 하고 또 하고.....뿐만인가. 아까운 돈들어가, 시간 뺐겨, 건강 뺏겨, 하지 않아도 될 말하고 괜히 실없는 사람되고, 부끄럽고, 자괴감들고....

실은 모처럼의 만남이고, 귀한 자리이니 뭔가 이들에게 해줄 말 있을까 고심했다네. 뭔놈의 술자린데 준비까지 하다니, 너무 진중한거 아닌가, 하고 의아할지 모르지만, 글쎄 워낙 모처럼의 만남이고 반가운 사람이기에 심심풀이거나 실없는 대화나 할게 아니라고 생각했던거지. 그런데, 그런데 말일세. 도무지 나는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네. 자기들끼리만 연신 주고받는거야. 내 의견도 좀 물어보고, 자기들 하는 말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기도하면서 말을 해야하는것 아니겠나? 또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든 생산적인 대화란 마땅히 그래야만하는거고. 

가만 돌아보니 긴밤이 가도록 그렇게 많은 말을 했건만 내가 한 말이란 겨우....당연히 준비했던 말은 한 마디 꺼내지도 못했다네. 말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냥 가볍게 가볍게, 심심풀이 땅콩이 따로 없더라니까. 그날 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술마시며 시간 때우기' 뭐 그랬달까. 피날레야 굳이 말 안해도 짐작할 수 있잖겠나?

새벽 2시. 구름 한 점 없는 겨울밤 아스팔트 위로 황량한 바람이 스쳐가고, 적막이 감도는 골목 근처로 차 몇 대가 달려갔다네. 어스름 전신주 네온 사인마저 왜 그렇게 차갑게 보이던지. 아~ 따스함이 감돌던 술자리, 그토록 대화 풍성하던 술자리 끝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그렇게 많은 말을 했건만 어째 내 속은 이렇게 허전한가.  

 

너 먼저 가라, 차를 타라 손 흔들고 외치며 걸어가던 그들의 뒷 모습이 어째 그렇게 연민스럽던지. 그 긴 시간을 보내며 세상살이의 힘겨움과 절망과 회한과 기쁨을 토로했으니 이쯤해서 좀 가벼워졌을까? 이쯤해서 없던 기력 되찾았을까? 하지만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들의 어깨 위엔 여전히 털어내지 못한 속절없는 세상사의 힘겨움이 가득했다네. 그렇게 오래도록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서 얼른 돌아섰다네. 그리곤 호주머니에 손넣은채 골목길 힘 없이 걸어왔다네. 술 마시던 그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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