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들>

 

1
대체로 남녀의 사랑은 물론이고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상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서로를 명확하게 모르니 갈등과 상처가 발생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도 우리의 만남은 중지되지 않고 계속된다. 태생적으로 온갖 결함을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만약 상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만남 자체가 아예 성립되지 않을수 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타인을 알려고한들 얼마나 알겠는가. 따라서 인간사 - 풀잎들- 는 처음부터 이해불가이며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2
홍상수의 주장은 이렇다.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고 좋아해도 좀 알아보고 만나자는것. 남녀의 사랑엔 불가피하게 감정이 먼저 앞서기 마련이라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한 자세히 알아봐야한다는것. 이런 주장은 너무 당연해서 지극히 상식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막상 삶의 세세한 현장은 감정이 앞선 성급함, 비합리, 충동에 이끌린 만남이 난무한다. 그렇다보니 결국은 상처를 주면서 피차 힘겹게 살아간다. 영화엔 기주봉의 자살미수까지 세 명의 죽음이 나온다. 애초에 잘못된 만남, 즉 사랑의 번짓수가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3
앤딩 장면. 극중 김민희의 동생이 연인과 함께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 카페에서 일행과 술마시던 정진영이 잠깐 담배를 태우러 밖에 나오고, 바로 그 자리에 옆좌석의 김민희가 함께 합석하는 장면이 교대로 나오면서 끝난다. 그렇다면 이 장면이 뜻한바는 무엇일까.

그동안 김민희는 시종일관 합석을 완곡히 거절했다. 하지만 앤딩 장면에서 결국 합석을 하는데, 그 직전 카페 밖에서 한복입은 동생 커플의 기념사진 찍는 장면을 잠깐 목격한다. 누나의 시선으로 볼때 동생 커플은 감정이 앞선 단순한 만남이다. 하지만 한복을 입은 장면을 통해 그녀는 어차피 풀잎들의 삶이란 다 그렇고 그런게 아니냐는듯 따뜻한 이해의 시선, 혹은 그동안 견지했던 냉철한 이성적 시선을 누그러트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합석이 이뤄지는데, 이는 아이러니한 풀잎들의 삶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 변화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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