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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다가오는 것들>(2016년)을 감상할 수 있겠냐고. 처음 들어보는 감독이다. 하긴 요즘 영화들을 거의 안 봤으니 모를밖에. 2016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전주국제영화제 등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으니 이정도만으로도 수작임이 틀림없다. 유튜브를 검색하니 짧은 홍보영상만 있다. 한가한 오전이라 마땅히 할일이 없다. 이럴때는 역시 KT 유료영화 체널이 제격이다. 엔간한 영화들은 거의 볼 수 있고 관람료도 저렴해서 그만인데 한 가지 흠은 TV브라운관으로 봐야 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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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철학교수, 교사, 학생 혹은 철학도를 비롯한 지식인들이다. 당연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적인 대화, 분위기로 일관된다. 하지만 제작비가 수월찮게 들어갔을테고, 흥행을 무시할 수 없을텐데 흡사 대학원 세미나를 방불케하니 참 놀라운 노릇이다. 여기서 언급된 책과 사상가를 한번 나열해볼까. 

플라톤, 알랭 [행복론], 칸트 "밤하늘엔 별이 총총  내 마음의 도덕률", 파스칼<팡세>,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푸코, 레비나스, 호르크 하이머, 유나바머 선언, 솔제니친, 한나 아렌트와 그녀의 남편인 귄터 슈테른, 레이몽 아롱, 아도르노, 슬라보예 지젝....68혁명, 프랑스 대혁명, 저항가수 밥 딜런의 우상 우디 거스리.....대충 떠오른게 이 정도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단순히 전시하듯 폼으로 나열되지 않는다는거다. 즉 지적물이 소도구로 이용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화 속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는것. 

 

대개 주인공이 지식인 나부랑이면 두툼한 책 몇 권, 혹은 책이 잔뜩 꽃힌 서가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대개는 들러리 전시용일뿐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것들>에서 책과 인물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는게 신기하다. 그나저나 이런 영화를 어떻게 큰 돈 들여 찍나. 흥행은 차치하고 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참 어지간하다. 새삼 프랑스라는 나라의 지적 무게가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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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현실, 관념적 세계와 현실세계를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 주인공 나탈리는 물론이고, 그녀의 남편인 하인츠, 나탈리의  제자인 파비앙 모두 공통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즉 철학이라는 순수지식, 관념의 세계는 현실, 혹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어떻게 타개하고 해결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현실을 관조하거나 관찰한다. 그래서 곧잘 철학은 현실을 대상으로하고,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문제삼으면서도 정작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치부되곤한다. 

 

고교 철학교사인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직업이면서 동시에 남편에게 딴 여자가 생기고, 모친의 죽음, 딸의 결혼 등 한꺼번에 몰려든 현실적 난제에 직면한다. 대개 이런 경우 영화와 소설의 상투적인 해결법은 연하의 제자인 파비앙 -   파비앙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탈리가 주도하는 총서 시리즈에 [아도르노]를 저술한 철학도다 - 를 과의 로맨틱한 결합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탈리는 냉철하게 정면돌파를 택한다. 현실과 지적관념의 세계 중 그 어떤것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 그대로 뚫고 나가는 정공법이다. 

 

그녀는"위기가 기회"임을 행동으로 증명한다. 즉 비록 일생을 함께하려했던 남편이 떠나갔고, 치매에 걸린 모친이 세상을 떠났으며, 딸은 결혼해서 엄마 곁을 떠났으니 분명 홀홀단신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를 오히려 자유를 찾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거다.   

 

아마 상투적인 영화였다면 지적인 제자 파비앙과 가정을 꾸미는게 순리일거다. 하지만 아나키스트 철학도인 젊은 파비앙에게 현실은 관심 밖이다. 그에겐 오로지 지식세계가 전부이며, 아직 세상 경험이 적은 급진적, 관념적인 젋은이인거다. 반면 나탈리는 현실의 신산을 모두 맞본 지식인이다.

그녀에게 철학은 남편처럼 관념놀이거나 단순한 지적, 이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과 조화를 이뤄야하며, 현실을 타개해 주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즉 철학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한다. 따라서 파비앙에게 향한 애틋한 로맨스는 마음에만 담아둘뿐 결국 각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나탈리는 이제사 한 여성으로서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게된거다. 즉 그동안 자신을 구속했던 모든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게된다. 그 어떤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 지적으로 충만한 삶, 세상을 당당히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 결국 행복한 삶이란 바로 이런 삶을 말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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