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뮤직포유' 제 187회 토요음악회에 가다. 쌀쌀함이 느껴지는 겨울밤, 드문드믄 가게들이 불을 밝혔지만 인적이 없는 은파호수는 사뭇 고요하다. 아내와 함께 오랫만에 찾은 카페. 오늘 연주하실 연주자 분들이 강선생님과 대화중이셨다. 약간 빠른 시간인지 객석엔 아무도 없다. 

손님맞이 하랴, 프로젝터 작동에 마이크 셋팅까지 예나 지금이나 동분서주하는 선생의 모습은 여전하다. 정리가 안 된듯 약간은 어수선한 무대, 투박한 테이블이며 의자들, 문득 토요음악회를 처음 시작했던 16년전 3월 어느날이 풍경이 오롯이 떠오른다. 맨 앞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해설 진행을 앞둔듯 살짝 긴장이 된다. 아~ 당시도 항상 이랬었다.

오늘 연주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전 악장과 모리스 라벨의 <찌간느>. 이윽고 강 선생님의 인삿말, 이어서 연주를 하게될 바이올리니스트 최해성씨와 피아노 반주를 맡은 황수원씨가 간단한 곡 해설을 한다. 준비를 많이한듯 해설 내용은 친절하고 내용이 충실하다. 해설에 열중하는 모습이며 열정에 찬 연주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녀들의 진지한 연주 태도에 긴장했던 객석이 조금씩 활력을 찾아간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불과 1미터 남짓.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손에 잡힐듯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를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울까. 반면 객석은 마치 18세기 어느 궁중 한켠에 모여앉은 귀족들마냥 느긋하게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한다. 사실 대규모 연주홀은 오로지 연주회라는 규격에 맞춘 형식과 형식의 연속이다. 연주자와 관객은 무대와 객석이라는 아득한 거리에서 낯선 이방인마냥 연주 하고 감상한다. 하지만 오늘의 무대는 전혀 그런 풍경과 다르다. 

더없이 리얼하고 모두가 교감하는 활기찬 무대이니 말이다. 연주자들은 연출과 형식을 배재한 즉흥적인 퍼포먼스와 생동에 찬 기를 객석에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자연스럽게 관객과 연주자는 혼연일체가 된다. 설사 클래식에 조예가 없는 관객일지라도 마치 질 좋은 스펀치처럼 어떤 상태의 물이라도 완벽하게 빨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바뀐다. 

자, 우린 모든 준비를 끝냈으니 어서 연주를 들려주시오. 객석은 이미 어떤 연주, 어떤 곡이라도 받아들일 태세다. 순간 바이올리니스트 최해성의 연주가 작은 카페 안에 울려퍼진다.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 섬세함, 이윽고 강력한 포르테시모로 바뀌자 연주자는 활력에 찬 몸동작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내 평생 처음 경험한 감동과 음악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느낀 최상의 연주, 최상의 음악회였다. 아,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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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선생님은 연주가 끝나자 초창기 해설자라는 나의 소개와 함께 과분하게도 감상 소회를 한마디 해달라고 하셨다. 아래는 나의 감상 소회다.   

강 선생님과 제가 토요음악회를 처음 시작한게 16년전인 2003년 3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오랫만에 포유를 들렀는데요, 모든게 거의 변함없이 예전그대로군요. 강 선생님의 동분서주하시는 모습이며 방금 연주자들과 레퍼토리 선정으로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하셨는데, 뭐 그것도 그때와 똑같습니다. 

저는 늘 클래식만 고집했고, 강 선생님은 소프트한 팝을 가미하길 원하셨으니까요. 그뿐이 아닙니다. 다름아닌 음악회 분위기인데요, 맨앞자리에 앉아있자니 마치 16년전 그날, 음악회 진행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채 어떻게 해설을 진행할지 골몰하던 바로 그날로 착각이 될정도입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6년전 어느날로 되돌아간 느낌이라고나할까요. 당시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대체 어느게 실재이며 현재인지 구분이 안 되는군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가장 실재적이고 확실한건 지금 이 순간의 현재겠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현재라고 말하는게 과연 참일까요? 지금, 하고 말한 순간 시간은 눈깜박할사이에 흘러갑니다. 1초, 10분의 1초, 아니 더 빠르게 순식간에 지나가지요. 이런데도 정말 현재, 지금이라는게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생생하다고 느끼는 현재는 늘 과거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는 현재라는 모호한 착각 속에 살아갈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경험했던 과거야 말로 진정하고 구체적인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모든 과거가 다 진정성이 있는게 아닙니다. 어떤 기억은 아련하고, 어떤 기억은 이미 낡은 담벼락마냥 희미하게 기억될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파편화되었다고 믿었던 기억 중 어느 순간 오롯이, 생생하게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며 지금 이 순간으로 불려들어지는 기억들이 드물게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기억이 그러는게 아니라 기억중 특별한, 아주 특별한 순간들만이 그렇습니다. 이때 이 특별한 기억은 내 자신 스스로가 느낄 수도 있지만 누군가 제 3자가 촉매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불멸의 곡들조차 악보상으로만 전해질따름입니다. 흘러간 과거라는 것이지요.

어느 순간, 한 위대한 연주자는 그의 곡들을 연주함으로써 베토벤을 우리들 앞에 살아 숨쉬게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마술이지요. 여기서 중요한건 아무 연주가 그런건 아니고, 어느 특별하고 감동적인 연주만이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을 방금 감상했습니다. 어떤가요. 지금 우리앞에 계신 두 분의 창조적인 연주는 베토벤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지 않은가요?

아다시피 베토벤은 작은 키에 얼굴은 얽었고, 온갖 결함을 지닌 인간이며, 평생 조카 키우느라 고생고생 한 사람이지요. 게다가 만년에는 작곡가에게 치명적인 귀까지 멀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어찌보면 우리와 하등 다를바 없는 베토벤은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처럼 위대한 곡을 작곡했다는 것이지요. 이점이 바로 베토벤의 위대함인데요, 우리는 오늘 8번 소나타를 감상하면서 불굴의 투지로 삶의 역경을 이겨낸 베토벤과 그의 음악을 훌륭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통해 아주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요즘 군산은 여러가지로 힘겨운 고장입니다. 하루하루가 참으로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나날인데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 고난과 역경을 직면하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고 투쟁하며 극복해낼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었고, 이러한 배움은 다름아닌 두 연주자의 멋진 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훌륭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강 선생님, 그리고 두 분 연주자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더욱 훌륭한 연주자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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