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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강력한 진보적 가치관을 가졌다해보자. 한데 생활은 그냥 보통사람과 하나 다를바 없다. 가령 독실한 종교인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생활은 그냥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이 한다. 이럴경우 진보적 가치관이니 종교의 독실함 여부가 생활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건 어떤 가치관을 지녔다든가 종교적 신실성 여부가 아니라 그것들을 생활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하느냐 여부다. 백날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떠들면 뭘해, 그게 만약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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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칸투스문학살롱 토론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관심사를 소설하나로 좁히면 어떨까. 실은 이것도 만만하지 않다. 한국문학 하나면 모를까, 세계문학이면 말이 달라지지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선 언어권으로 나누면 영미문학, 불문학, 독문학, 중남미문학, 동유럽문학, 러시아문학, 일문학, 중문학으로 퍼진다. 영미권 하나만으로 좁혀도 고대, 중세, 근대, 현대문학으로 구분되고, 장편과 단편으로 또 나뉜다. 다 그만두고 셰익스피어,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등은 한 작가에 집중해도 아마 단기간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피상적으로 이해하는거야 문제가 다르지만 하다못해 평전, 작품론까지 병행한다면 평생 투자해도 세계문학을 고르게 읽어내지 못할것이다.  

남은 여생 기껏 15년 남짓한데 소설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것저것 호기심만 들썩이다간 필경 겉핥기로 끝날것 같다. 자, 끝까지 가볍게 호기심만으로 갈거냐, 아니면 하나만을 심도있게 파볼거냐. 여하튼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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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후반을 소설읽기로 보낸다? 괜찮을 것 같다. 그리스 고전, 단테,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프랑스 고전희곡, 시골장터에 쌓인 수많은 물건들마냥 개성 가득한 불문학, 체홉을 비롯한 근대 러시아문학, 영미문학, 괴테, 실러 등 독문학, 중남미와 스페인 문학, 일본문학, 중국문학, 게다가 현대문학만해도 얼마나 광범위한가. 여전히 접근을 허용치 않는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보르헤스, 나보코프,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등등. 나열하기도 벅찬 수많은 작가들, 밤하늘의 별,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단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서가를 세계문학 작품으로 채우는것도 보기 좋을 것 같다. 여러 출판사, 양질의 번역서들, 양장본, 보급판 할것 없이 알록달록 다양한 소설들이 서가 빼곡이 들어서서 읽기를 기다린다면 얼마나 기분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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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많이 변했다. 몇가지 신상명세서를 밝힌 후 단 한 번 클릭으로 번듯하게 <문학서재>를 지었으니..... 어째 세상살기가 너무 번잡스럽고 각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우리 모두 같을 터이다. 하지만 어느 한구석을 곰곰히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요즘 몇몇 문우들께서 개설한 문학서재들을 보니 멋져 보였다. 해서 나 역시 남들따라 서재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데, 너무 쉽게 집이 지어지다 보니 좀 싱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재미도 있고 그 옛날 스므살 때 처음 글쓸 때 처럼 기분이 요상해진다. 문제는 서재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속 내용일 것이다. 비록 손쉽고 값싸게 짓긴 했지만 기왕 지은 서재, 멋지게 꾸며볼 작정이다. 바라건대, 여러 문우들께서 서재를 자주 찾아주셨으면 참 좋겠다.>     - 2001년 10월 문학서재를 개설하며 


평생 살면서 처음으로 개인 홈페이지라는걸 만든게 <문학서재>라는 곳이었다. 17년전인 2001년 당시 '한국문학도서관'에서 무료로 제공한 <문학서재>는 개인 블로그의 원조쯤될것이다. 우후죽순! 한마디로 문학을 가까이 하는 이들치고 한번쯤 <문학서재>를 만들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휴대폰이 발달해서 카톡이니 트위터 등 SNS가 워낙 유행이라 굳이 개인 홈페이지를 사용할 일이 없다보니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글을 게시해도 읽는 이가 거의 없다. 

 

그 옛날 <문학서재>에 글을 쓰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데갔을까? 글을 쓰긴 할까? 짐작컨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쓰지 않을 것 같다. 간혹 <문학서재> 이곳 저곳을 들어가봐도 누구 글쓴 흔적이 없다. 글은 고사하고 썰렁하니 주인조차 출입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보다 글 쓴다는 그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니 지난 16년여를 누가 계속 글을 쓴단 말인가. 사실 문학은 직업 작가가 아닌담에야 젊은시절 한때의 관심사일뿐이다. 말 그대로 20, 30대 문학청년 시절의 열병의 하나일뿐이며, 그 이후는 어쩌다 옛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일종의 추억거리에 불과하다.


늦가을, 오후들어 부슬부슬 비가 내리자 낙엽이 흩날린다. 그동안은 좀 따뜻하더니 갑자기 을씨년스럽다. 하긴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될 때다. 책, 글쓰기.....평생 가까이 한 단어들이지만 오늘따라 문득 정겹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그 많던 사람들은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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