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형국이랄까, 요즘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 공부가 그렇다. 인문학 탐구을 하다보면 으레 똑같은 난관에 부딪치곤한다. 다름아닌 철학의 기본 소양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으면 당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죽어라 연습해도 방법이 잘못되고, 기본이 안 되다보니 성과가 날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딜레탕트의 숙명인것을. 뭐 방법이고 뭐고 따로 없다. 그냥 디립다 파는 식인데, 좌충우돌 앞뒤없이 달리다보면 나도모르게 방법이 생긴다. 포기 할 수 없으니 뻘짓하는셈치고 그냥 이렇게 내달린다.

첫 시도는 '아트앤 스터디'에 개설된 몇 개의 벤야민 강좌인데 엉뚱하게도 강의 청취가 아니라 강의록 읽기였다. 독서실 일을 하려다보니 강의를 모두 들을수 없고 강의비는 절약해야겠고, 해서 고육지책으로 택한 방법이다. 최근에 타계한 김진영 선생의 강의는 강의록만으로도 무방하다. 선생의 육성 강의를 채록해서 글로 옮긴듯한 강의록은 현장 강의와 거의 차이가 없다. 원저 읽을 실력은 안 되고 여러가지로 엄두가 안 나니 최대한 2차서에 의존해야 한다. 권용선을 비롯해서 문광현, 최문규, 최성만 교까지 몇 권의 2차서를 대충 훓어봤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름 석자가 눈에 띄면 아무리 소소한 글, 단문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읽는다. 가령 이택광 선생의 블로그에서 파울 클레의 <앙겔로스 노부스>도 그렇게 읽은 글 가운데 하나다. 평전 읽기도 중요한 순서. 사실 벤야민의 글과 책 중에서<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순서상 맨 나중에 읽어야하지만 맘이 급하니 책을 펴들수밖에. 수잔 벅 모스의 <아케이트 프로젝트> 해설집도 그래서 두서없이 읽은 책이다. 어제 오늘 하워드 아일런드와 마이클 제닝스 공저의 <발터 벤야민 평전>(글항아리)을 열독했다.

강의록과 몇몇 책에서 얻어들은 사전 지식때문인지 예기치않게 제법 진도가 나갔다. 단숨에 150여쪽을 읽다보니 어느덧 300여쪽이 넘어간다. 모두  900여쪽에 가까운 두툼한 분량인데 언제 다 읽지? 했지만 막상 그게 아니다. 이 책의 장점은 벤야민이 살아간 그때그때의 행적과 삶의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동시에 글을 소개하는 식이다. 가령 1920년대 초반무렵의 생활을 소개하면서 첫 번째 책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개념>과 <괴테의 친화력> <독일 비애극의 기원>을 함께 설명한다. 그렇다보니 어떤 글과 사상이 발생한 배경을 알 수 있고, 저서의 내용을 입체감있게 이해 할 수 있다.

<벤야민 평전>을 그럭저럭 재밌게 읽을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지난 세 달에 걸쳐 여러 개의 강의록과 권용선, 최성만, 문광훈, 최문규의 2차서를 읽는 동안 슬슬 맷집이 커진 덕이 아닐까싶다. 평전 읽기를 마치면  또 다른 워밍업을 시도할 생각인데, 이미 구입해둔 게르셈 숄렘의 <한 우정의 역사>와 브루노 아르파이아의 <역사의 천사>, 제이 파리니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 등 두 권의 소설을 읽고, 계속해서 이미 읽은 강의록과 2차서를 한번 더 재독할 작정이다. 그런 후 최종적으로  원전 읽기에 도전할 생각인데, 여전히 의문 부호는 달렸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는건 분명하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벤야민에 매달릴까? 글쎄 나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건 끊이지 않는 호기심과 재미 때문이다. 사실 이것아니면 달리 할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다. 하긴 뭐를 하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냥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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