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다. 칸투스 정기연주회, 부친상, 모친묘 승화원 안치 등 보름가까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트럼펫 연습부터 재개하였다. 하지만 아직 독서와 글쓰기는 엄두를 낼 수 없다. 머릿속이 산란해서 도무지 정신집중이 안 되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가능하다면 잠깐이라도 짬을 내 독서와 글쓰기, 트럼펫 연습만큼은 지속적으로 해야할 것 같다.

2
읽어야할 책, 읽고싶은 책은 차고 넘쳐나건만 점점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엔간한 일에도 쉬 피로감이 쌓이고, 몰입이 쉽지 않다. 덩달아 시력도 떨어진다. 열정이야 어찌해보겠는데, 문제는 체력이다. 과연 언제까지 읽을 수 있을지, 글쓰기는 또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것 없이 오늘만 생각하자. 오늘 무엇을 읽을 것인가, 또 내일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떤 글을 써볼것인가. 그것만이 기쁨을 줄 수 있으니 나중에야 어찌되든 당장 눈앞만 생각하기로 하자.  

3
비록 잡글, 낙서에 불과할지라도 오늘 쓴 글, 오늘 생각한것. 오늘 어떤 책을 읽고 이해한 것. 내가 지금 알고 가진것, 이해력은 실상 이게 전부다. 더 이상 대단한것이 있을 까닭이 없다. 따라서 과도한 낭만적인 생각은 자제하자. 되도록 현실적으로 생각할것. 나이답지 않게 불가능한 꿈을 쫒는것도 보기좋은 일은 아니잖겠는가?   

4
가령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예수의 정신과 너무도 동떨어진채 현대판 샤머니즘으로 전락했다. 신은 결국 사랑이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은 고난의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일이다. 고등종교란 기복적인것을 거부하고, 타자에 대한 사랑을 구현하는 일이다. 이렇게 말한 나는 무신론자다. 라는 식으로 내가 큰소리로 주장했다고 하자. 그런데 지금하고 있는 나의 행동, 나의 현재의 실상을 완벽히 배제한채 기독교를 향한 비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 그만두고 비판 할 자격이 있는가? 정말 내 행동에 부끄러움은 없는가? 무신론자라고 큰소리치면 만사 형통인가? 무책임한 비판은 아닌가?  사실상 비판은 누구나 하기쉽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이처럼 신랄하게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점이다. 행동이 없는 번지르한 말은 공허하다. 여하튼 중요한건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지금 하는 행동이 양심에 비춰 부끄러움이 없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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