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같은 사랑이 어데있겠냐고,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기다릴 사람이 어데있겠냐고. 영화나 소설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그래서 남녀의 순진무구하고 절절한 사랑은 환상이거나 불가능한 일로 치부된다. 마이크 뉴웰 감독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이런 사랑의 의미를 영화를 통해 구현한다.
사랑은 결국 결혼으로 지속되지만 안정을 담보로 한 행복에 불과하다. 착각하지 말자. 결혼은 사랑을 빙자한 안정이라는 것. 세상 사람 99프로가 그렇듯 페르미나 다사 역시 사랑의 환상을 믿지 않는다. 그러기에 불확실한 사랑이 아닌 생활의 안정을 택하지만 우르비노 박사와의 결혼생활은 세상 모든 부부가 그러듯 갈등의 연속이다. 그러면 순애보 같은 사랑은 정말 없단 말인가? 앞에서 말한바대로 그건 환상이고 픽션이기에 소설이나 영화 속에나 있을뿐이다.
우르비노 박사의 장례식이 끝나자 어느덧 70중반의 노인이 된 플로렌티노가 다사 앞에 나타난다. 오직 이 날을 위해 51년 6개월을 기다렸던 플로렌티노. 어떨까. 그들이 17세 처음 만났을때처럼 순애보 같은 사랑이 가능할까? 비록 파파 노인들이지만 순도 100프로의 사랑이 이뤄질까? 관객들은 설마, 설마하며 호기심과 설레임을 억누를 수 없다. 영화나 소설이라는 마술은 현실에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상상력으로 포장해서 있음직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혹은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양 잠시 상상의 세계로 날아간다. 물론 우리는 극장에 들어서기 전, 혹은 책을 펴들기 전에 이건 허구라고 피차 약속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상상의 세계, 픽션의 세계라는 점을 잠시 망각한다. 아니 망각하고자 한다. 팍팍한 세상, 이마저 없다면 어떻게 통과하리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유토피아에 관한 영화다. 실제로는 없지만, 간절히 소망하면 언젠가 가능한 세계, 그게 바로 유토피아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간절히 소망하면, 설사 나이들어도 언젠가 가능하리라는 기대. 비록 속절없는 꿈이지만 꿈 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