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이 최근 타계했다. 생전의 선생의 글은 전문성과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였고, 특히 시평과 불문학 번역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지니셨다. 그러기에 선생의 번역서나 문학평론집은 되도록 찾아 읽으려고 한 편이다. 가령 문학평론서인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을 비롯해서 번역서인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는 이미 읽은바 있고 역시 선생이 번역한 스테판 말라르메 시집,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등도 언제 시간되면 읽어보려고 했었다. 특히 베스트셀러로 한창 줏가를 올린바 있던 산문집<밤이 선생이다>와 최근 출간된 <사소한 부탁>은 마침 칸투스독서회에서도 한번 읽어보려고했던 차다.  

 

 

비록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역시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김현 선생이 타계했을 때와 흡사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만큼 선생의 글에 공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연히 서평가인 로쟈(이현우)의 블로그에 들렀더니 선생에 대한 짧은 글이 있어 옮긴다.

 

"(...) 육성을 들어본 독자라면 이 산문집(<사소한 부탁>)이 음성지원이 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경우라서 조리 있으면서 말의 기품이 살아있는 글들을 선생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육신과 이렇듯 분리돼 있으면서도 실재하는 이 음성의 주인은 누구인가? 손택이 인용한 롤랑 바르트의 말이 떠오른다. ˝말하는 사람은 쓰는 사람과 다르고, 쓰는 사람은 그 사람의 존재와 다르다.˝ 바르트의 원의와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다름을 ‘같지만 다름‘으로 이해한다.

황현산 산문집에서 우리가 듣는 목소리의 주인은 황현산 선생이면서 또한 그렇지 않다. 만약 같다면 그건 우리가 환청이라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쓰는 사람의 목소리, 곧 저자의 목소리이고 이는 ˝그 사람의 존재˝와 다르며 다른 운명의 삶을 산다. 우리 곁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라고 내가 이미 말한 바 있는 바로 그 존재다. 선생은 떠났지만 또한 그대로 남아있다.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익숙한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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