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착수하지 못하고 미룬 책들이 있다. 조셉 콘라드의 소설도 그중 하나인데, 작가가 뱃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 <암흑의 핵심> <로드 짐> <나르시스호의 검둥이>를 비롯해서 단편 <청춘>, <문명의 전초지>등은 단순히 소재로서의 배나 바다가 등장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심층을 파헤친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야할 작품들이다.
더구나 나 역시 오랫동안 뱃생활을 한 터라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명칭과 용어들은 친숙하기조차하다. 요즘 발터 벤야민의 저서와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소로의 <월든>을 읽고있기 때문에 조셉 콘라드에 집중할 수는 없지만, 이번 기회에 전작을 한번 읽어볼까싶다.
실상 콘라드의 작품 자체가 많지않은데다 그나마 국내 번역도 몇 권 되지 않는다. 가령 위 작품을 빼고나면 <비밀요원>(문학과지성사), <노스트로모>(한길사), <서구인의 눈으로>(중앙일보사), 단편집 <청춘> 등이 거의 전부다. 연구서나 전기도 마찬가지인데, 평전으로는 제프리 마이어스의 <조셉 콘라드>(책세상)가 가장 충실하고, 서울대 이상옥 교수의 <조셉 콘라드 연구>(서울대출판부), 부피가 얇은 나영균 교수의 <조셉 콘라드>(정우), 전북대 왕은철 교수를 비롯 국내 전공자들의 논문을 엮은 <조셉 콘라드>(동인)정도다.

내가 콘라드의 작품을 처음 접한것은 소설이 아니라 <암흑의 핵심>을 원작으로 한 포란스시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인데다 당시 이 영화를 보고난 감동이 거의 충격 수준이어서 그 즉시 <암흑의 핵심>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은 영상 예술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여주는 영화로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베트남을 소재로한 반전 영화라면 <디어헌터>, <플래툰>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지옥의 묵시록>은 단연 그 위에 있다.
이 영화의 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는 J.프레이저의 인류학 저서 <황금의 가지>와 원작인 J.콘라드의 <암흑의 핵심>(단편 <문명의 전 초지> 역시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를 비롯해서 '묵시록적 역사관'에 대한 일차적 정보가 필요하다.
기실 사물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느낄 수밖에 없으므로. 인류학의 고전인 <황금의 가지>의 57∼59장에는(김상일 번역의 을유문화사, 83년판을 필자는 소장하고 있음) 고대인들의 희생제식으로서 집단의 속죄를 위해 그들의 속죄양을 선택, 그로 하여금 전체 집단을 대신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공적 속죄양' 의식이 기술되고 있다.(기독교의 예수는 공적 속죄양의 대표적 케이스)
영화 속에서 원주민들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전직 미군 대령 출신인 키츠(마론.브란도)는 바로 미국이라는 공적 집단의 속죄양으로 지목되어 특수부대 요원인 윌러드 대위(마틴 쉰)로 하여금 처단될 운명이다. 또 한가지 J.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은 아프리카에 대한 서양 제국주의 정책의 비판적 소설이다.
암흑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쟁의 가공 할 타락에 의해 인간이 저지른 참혹함이며 지옥의 모습이다.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은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탐욕스런 그들의 식민지 정책이 저지르는 인간 욕망의 타락된 모습을 제시한 것인데 <지옥의 묵시록>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의 탐욕스런, 전쟁에 대한 광신적, 타락된 욕망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암흑의 오지, 즉 속죄양으로 지목된 커츠대령이 있는 곳을 향하여 윌러드대위는 보트를 타고 밀림 지대를 끝없이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거의 직선적 코스이다. 이것은 서양인들의 역사관이 직선적 시간관(동양은 순환적이다.)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유 구조로서의 '이데아'로부터 근세 서양 철학의 종합이랄 수 있는 칸트의 '물 자체' 그리고 헤겔의 '절대정신', 마르크스의 미래의 '공산 사회' 등등은 직선적 역사관, 시간 관이라는 공통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부정되어야 하는 세계이다. 우리가 지향할 곳은 저 미래의 이데아의 세계이며 절대정신, 공산 사회가 구현되는 세계이어야 한다는 것이 서양인들의 역사관인 것이다. 그러나 F.포드 코플라가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제시하는 이상적 세계, 암흑의 오지는 바로 미국의 타락된 욕망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계이다.
코폴라 역시 지금 이곳이 부정되어야 할 곳으로 본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미래 역시도 희망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 비극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대부>시리즈 역시 코플라의 암울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결국 <지옥의 묵시록>은 현대 미국인들의 일그러진 욕망, 타락한 욕망을 고발한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시종일관하여 공포감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토록 인간의 광신적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공포의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커츠대령은 윌러드에게 묻는다. "너는 베트남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 물음을 커츠는 스스로 대답한다. "끔찍한 공포!!, 공포!!"였다고. 전쟁은, 미국은 우리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