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무엇이 나를 책으로 이끌까. 그 무엇이 나를 글쓰기로 이끌까. 일상의 일부에 불과한 단순한 습관일까. 아니면 지식에 대한 열정 때문일까. 하긴 그게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냥 읽고 쓰면 되는 것을.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그게 좋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서....단지 이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2

줄곧 어떤 글을 쓸까,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영화를 볼까. 어떤 음악을 듣고, 트럼펫은 잘 연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것만이 자연스럽고 즐거워서다. 생각 같아선 평생 책 읽고 공부만하다 죽어도 좋겠다. 지극히 단조롭고, 재미없고, 정형화된 생활. 하지만 어쩌랴! 나만 행복하고 즐거우면 되니....   실상 내 생활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게 없다. 트럼펫 연습이 그나마 하는 유일한 소일거리이니 결국은 독서와 트럼펫 불기, 그리고 독서실 업무가 근자 내 생활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누구 만나는 사람도 없고, 만나고싶지도 않다. 공식 모임은 오케스트라와 독서회 단 두 개지만 크게 불만은 없다. 아마 모임이 더 잦고,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면 오히려 번거로울 것 같다. 바라기는 독서회가 좀 활성화되고, 영화감상 모임이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모임이라는게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다. 더욱이 내 뜻과 맞는 모임을 만든다는건 언감생심이니 그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해야한다.

 

쓰고 탄내가 날정도로 생두를 강하게 볶았다. 버리기가 아깝다. 열매 하나하나를 손으로 따고 건조하고, 완제품으로 만들기까지 공력을 생각하면 콩 알 하나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아침 식사로 바나나 두 개, 커피에 우유를 탄 밀크커피로 대신하다.

오전엔 <자유의 언덕>을 마저 감상. 오늘 중 한길문고에 들러 일전에 주문한 파트릭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이상철 <죽은 신의 인문학>,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전집 두 권 가져올것. 오는 길에 독서실 벤치에 칠할 방부목용 페인트 두 통 구입할 것.

 

3

10대 후반부터 60중반이 되도록 평생 책을 가까이했다. 이쯤이면 독서가 축에 드는셈인데, 나이에 따라 책읽기가 좀 차이가 있다. 가장 알찬 독서를 한 나이가 언제쯤일까. 청춘시절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라 문학작품을 읽기에 적절하다. 촉촉한 감수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쉬 감동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30대까지는 문학작품을 읽기엔 최상의 시기일듯싶다. 그렇다면 나이든 지금은 어떨까. 

 

일단 감동면에서는 예전만 못하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과<악령>을 접한 때가 10대후반이었다. 당시는 읽기는 읽었어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었다. 반면에 감동은 지금보다 더 컸다. 젊은 시절 특유의 감수성 탓이다.

 

밤을 지새워 소설을 읽고, 감동이 컸던 장면을 떠올리며 몽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단지 좋은 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일뿐 감동은 크지 않다. 요즘 읽고 있는 <전쟁과 평화>만해도 작가의 사상과 이념에 주목되는 편이지 작품 자체의 미학이나 스토리에 몰입되진 않는다. 이점은 철학서를 비롯한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젊은시절의 독서는 비록 이해도는 떨어지지만 감동만큼은 결코 적지 않다. 다만 인문학서는 논리적 이성에 따른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젊은시절보다 지금이 더 읽기에 적절할 것 같다. 

 

어느덧 40여년이라는 꽤 긴 세월을 책을 읽어왔다. 한데 나이 든 지금이 오히려 독서열이 더 왕성하고, 이해도도 깊다. 문.사.철 모두를 두루 탐독하고, 문학만하더라도 세계문학을 집중해서 읽기 때문에 열정으로보면 결코 젊은 시절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해도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되게 깊기 때문에 책읽기에 최상의 시기가 아닐까싶다. 다만 체력이나 그밖의 사정으로 집중력을 길게 가져갈 수 없다는것 하나가 문제일뿐이다. 그 외에는 시간, 돈, 열정, 그 어느것도 뒤질게 없다. 어찌보면 독서는 60대부터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다.

 

4 

나만의 방, 나만의 공간 확보. 늘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동안 옥상 컨테이너를 이용한 탓도 있고 최근에 새로 꾸민 서재와 트럼펫 연습실을 겸한 큰방이 있지만 실제는 내 방이라고 할 수 없다. 가족들이 무시로 출입하는데다 큰방에 딸린 화장실에 세탁기까지 있다보니 들락날락 도무지 어수선해서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이 무더운 여름에 냉방이 안 되니 실상 여름 한 철은 책을 보관한 서재라고나 할밖에.  

 

나 혼자만의 방이라니, 사치가 아닐까싶어 차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독서실 빈방이 있었지만 이조차 선뜻 내키지 않는다. 행여 이용자가 있지않을까, 이렇게 좋은 방을 굳이 나 혼자 사용해도될까. 어쩔 수 없는 소시민 근성은 결단을 자꾸 지연시켰다. 좀 더 자신에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지금 좋아하는 것, 당장 하고싶은게 있다면 뭘 망설여야하나. 일단 나만의 방을 만드는게 우선 순위다.

 

급기야 35도까지 치오르는 수은주를 보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그동안 사용하던 큰방에서 독서실에 딸린 311호실로 옮겼다. 독서와 글쓰기, 낮잠은 조용한 이곳을 이용하고, 트럼펫 연습은 책으로 자연방음이 된 큰방을 이용하려고 한다

 

5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인적이 없는 월든 호숫가, 숲속 자연생활을 하는 소로와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다. 가령 소로는 거의 금욕적인 생활 위주여서 여성은 물론이고 육식도 멀리한다. 그는 소박하고 잔잔하게 살지만 삶의 기쁨을 얻는데는 조르바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한 사람은 욕망의 절제를 통해서 행복을 얻는반면, 다른 한 사람은 아예 욕망조차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삶을 산다. 이처럼 외견상 두 사람은 전혀 상반적인 삶 같지만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들은 물욕, 명예욕, 권력욕 등 세상의 그 어떤 가치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6

아내는 친정에 가고 지훈이와 둘이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화염에 불타는듯한 여름 한낮. 다시 독서실로 오다. 311호실. 최근에 새로 만든 나의 휴식공간이자 공부방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저녁 근무전까지 여기서 줄창 시간을 보낸다. 워낙에 조용한 독서실 방이라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둘 중 하나밖에 할게 없지만 그래도 이런 무더위에 시원하고 누구 찾는 사람없이 최상의 안식처이다.

 

 권의 책을 교대로 읽는다. <월든>, <전쟁과 평화> 권용선의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조재룡의 <번역과 책의 처소들> <번역의 유령들>, 수잔 벅 모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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