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벤야민인가

 

 

공부든 예술활동이든 열정이 지독한 딜레탕트는 여러 딜레마에 직면하곤 한다. 가령 어느정도까지 즐길것인가? 어느 수준에서 만족할것인가? 이런 의문들은 추구대상을 향한 노력의 정도, 탐구의 방향과 수준, 열정과 시간을 어떻게, 얼마나 분배하고 투입할것인가와도 관련이 있는데, 평생 인문학을 가까이하고 공부하는 나로서는 수시로 직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딜레탕트의 전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마치 럭비공처럼 그때그때 기분과 흥미에따라 관심사, 추구하는 방향이 바뀌고 심지어 즉흥적일때도 있다. 결국 매사 끝을 보지 못하고 엉거주춤 도중에 중지되곤 한다. 그래서 주마간산격이니, 겉핥기, 피상적이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다니기 마련이다

 

한동안 문학, 특히 소설작품 주변을 맴돌았다. 인문학에 대한 은근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거듭 되풀이 된 일이지만 막상 뭘 해야할지, 무엇을 알고싶은지 딱히 떠오르질 않았다. 하긴해야하는데....그저 이런 상태였던거다. 여하튼 지속성있게 몇 개월쯤이라도 매달리려면 어떤 계기, 강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강력한 임펙트, 흥미를 유발할 그 어떤 것그러던차 발터 벤야민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왜 벤야민인가? 지난 주 우연히 한신대 이상철 교수의 <죽은 신의 인문학>(돌베게, 2018)을 읽은게 계기였다.

 

신학과 인문학을 종합적으로 살피려는 저자의 글 가운데 서구의 유물론자들이 새삼 신학에 관심을 갖게된 배경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관심을 끌었다. 나로서 신학은 철학의 한 분야(종교철학)로 여기는데다 특히 젊은시절 한때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어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과 전혀 멀어보이는 유물론자들이 신학을 끌어들인다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던거다. 일전에 알랑 바디우의 <사도 바울>을 구입한 것도 그런 관심사의 연장이었다. 우선 <죽은 신의 인문학>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발터 벤야민 관련 일부 내용을 옮긴다. 


유물론자들에 의해 관념론의 최종 포식자라 할 수 있는 신학이 새롭게 조명받은 기이한 현상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유물론자인 그들로 하여금 신학에 심취하게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20세기 말에 몰아닥친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형성된 전지구적 자본의 생태계가 인민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는 위기감이 마르크스주의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혁명을 상상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용했다.

현대 좌파 철학자 가운데 신학적 상상력으로부터 혁명의 기운을 취하려는 인물들은 앞서 언급했던 데리다, 바디우, 아감벤, 타우베스, 지젝, 이글턴 등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앞서서 20세기 초반에 벌써 유물론적인 신학, 혹은 유물론자의 신학을 언급한 사상가가 있었다.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 벤야민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공히 취급되는 메시아주의를 유물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혁명을 위한 정치술로 제안했다.

벤야민은 그 유명한 소논문 <역사철학테제>에서 신학과 역사적 유물론의 결합을 동화와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난쟁이 꼽추로 그려진 숨어 있는 신은 메시아 혹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상징된다. (...) 벤야민의 발언은 포스트마르크스 주의가 걸어가야 할 바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역할을 했다. 혁명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단절된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혁명이란 인간의 하부구조뿐 아니라 그동안 혁명의 요소에서 도외시 되어온 인간의 상부구조, 즉 정신, 신화, 무의식, 그리고 종교적 믿음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한다고 벤야민은 조언한다. 그의 연구에 영감을 받은 현대의 유물론자들은 이제 현실의 문제를 돌파하는데 있어 신학적 상상력을 요청하게 되었다.

우리는 결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굳이 메시아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메시아는 수미일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계열에 따라 도래하지 않는다. 하지만 메시아는 부재하면서 존재한다. 그(녀)는 시간과 사건이 자아내는 의미의 계열로 엮이지 않고 정지된 어느 한순간에 솟아오른다.     - 이상철 <죽은 신의 인문학> 202쪽~ 209쪽
블로그에 <발터 벤야민을 찾아서>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긴 했는데 막상 무슨 글을 써야할지 막막하다. 어쨌거나 내가 이 코너를 만든 것은 우선 벤야민을 공부하고 이해한 결과를 기록해보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같은 초심자가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도움이 좀 될까해서다.  

내가 벤야민을 공부한다고 했을때 무엇보다 여러 핸디캡이 떠오른다. 먼저 나는 아마추어로서 철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학문을 하기엔 너무 늦은 60중반의 나이다. 게다가 외국어는 일체 까막눈이고, 철학의 기본 소양조차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다가 무엇하나 할 수가 없다. 그냥 좋아하면 하고  끌리는게 있으면 따라가보는거다. 그게 또 아마추어의 특권이니까.

2. 공부 계획(총 1년) 

1) 1단계 : 아트 앤 스터디 강좌 수강(4개월)

'아트 앤 스터디'에 개설된 강좌를 청취하는 것을 첫 번째 순서로 잡았다. 정규 과정을 공부할 수 없는 나로서는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게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디지털 인문강좌들이다. 발터 벤야민 관련 강좌는 모두 일곱 개로 개설되어있다. '아트 앤 스터디' 강좌는 디지털 강의와 함께 강의록이 함께 제공되는데, 다행히 비수강자도 강의록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나는 사정상 위 강좌 모두 모니터로 청취하기 보다 직접 강의록을 읽는 방식을 택했다.(* 김남시의 <과거...>와 김진영의 <파리에 대한...> 두 강좌는 강의록이 없음)  

- 김진영 <꿈꾸는 우울 : 벤야민을 이해하기 위하여> 21강
- 권용선 <아케이드 프로젝트> 12강
- 고지현 <세 가지 개념을 통해 본 벤야민의 철학>12강
- 강수미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 텍스트 읽기를 통한 '이미지-의미'의 생산> 8강 
- 김남시 <과거, 역사, 현실 : 벤야민 읽기> 6강 *강의록 없음
- 김진영 <파리에 대한 우울한 사랑 : 벤야민의 보들레르 읽기> 8강 *강의록 없음
- 합동강좌 <벤야민 핵심 가이드> 8강/진중권, 이영준, 김진영, 권용선, 정윤수, 조정환

2) 2단계 :  2차서 및 전기 & 평전 읽기(4개월)

-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 권용선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역사비평사
- 강수미 <아이스테시스 :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글항아리
- 최성만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 길
- 문광훈 <가면들의 병기창>, 한길사
- 최문규 <파편과 형세>, 서강대출판부
- 수잔 벅 모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김정아 역, 문학동네
-  베르너 풀터 <발터 벤야민>, 이기식, 김영옥 역, 문학과지성사

3) 3단계 : 원저 읽기(4개월)

-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 역, 민음사 (* 글 모음집)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길, 벤야민 선집 1권
-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길, 벤야민 선집 3권  

* <독일 비애극의 원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아케이드 프로젝트> 읽기는 추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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