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만행, 6·25 동족상잔, 베트남전 민간학살, 박정희 시대의 무자비한 합법적 국가폭력, 광주 만행, 세월호, 한국의 라스푸틴 최순실과 박근혜, 탈북이주민/동남아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유린 내지는 학대, 성소수자에 대한 보수 기독교인들의 탄압 등 돌아보면 하나하나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지만 만천하에 내세울 자랑꺼리도 있다. IMF조기졸업과 촛불혁명! 우리는 지난한 역사 가운데 많은 헛발질을 했지만 단 한나,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위대한 촛불혁명을 일으킴으로써 동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임을, 아니 세계적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유일한 과제는 남북분단 하나뿐이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며칠째 가슴설레이는 나날을 보낸다. 남북회담이 처음이 아니건만 이처럼 손꼽아 기다리기도 처음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나 설날을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그러던차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칼럼이 눈길을 끈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의 글인데 회담을 하루 앞둔 싯점에서 시기적절한 글이라 일부 인용한다.   

"(...)북은 21일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23일 대규모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찰 3천여명을 동원해 사드기지 공사를 강행했다. 북이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중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시작했다면, 미사일 기지 공사를 강행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전쟁이 끝났다고 선포하는 종전선언을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 방안이 논의된다고 한다. 정전상태를 끝내고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찾으라는 것은 환갑이 넘은 정전협정에도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자고 한 것은 북이었고 최근까지 한국도 미국도 이러한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한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도 않았다. 정전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1년이 되어서야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며 정전에 합의했다. 북이 정전을 거부하고, 평화협정 협상을 거부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북은 1990년대 들어 핵무기 개발에 나서고 최근 몇년 ‘핵위협’을 가했다. 미국은 1950년 11월30일 “핵무기 사용의 적극적 고려”를 공언한 이후 ‘핵위협’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제 북은 평화체제에 대한 반대급부로 비핵화까지 내놓았다. 중국도 ‘쌍궤병행’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같은 제안을 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거부하고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만일 미국이 주도적으로 핵위협을 거두겠다며 평화체제 구축을 요구했을 때 북이 그 숨은 의도는 북-중 동맹 와해에 있다고 거부한다면 우리는 북을 어떻게 볼까?

찰스 오스굿은 1962년 ‘전쟁이나 항복이 아닌 대안’에서 분쟁 해소 방안을 제안했다. 점진적이고 상호적인 조치들을 주고받아 긴장을 완화하자는 제안으로 영문약자 ‘GRIT’로 많이 알려져 있다. 분쟁의 한 당사자가 작지만 일방적인 양보 조치를 취하고 상대방에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희망한다고 의사 표시를 하는 것으로 그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상호적 조치를 취하면 첫 당사자는 두번째의 양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바야흐로 ‘평화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긴장완화는 일방의 조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평화도 서로 바라보며 같이 노력해야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의 손만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손뼉 소리는 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과오만 비난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는 평화를 만들 수 없다. 요컨대 한반도 위기 상태는 쌍방과실이다. 쌍방이 노력해야 평화도 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묻는다. 우리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 서재정(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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