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본 사소설의 사전적 정의 두 가지와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글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거의 허구를 섞지 않고 충실하게 재현한 자전적인 산문작품을 일컫는데 20세기 초 일본 자연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됐다. 원래 자연주의는 프랑스의 에밀 졸라에서 보듯이 추악한 사회현실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지만 일본의 자연주의는 특이하게도 가치관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현실묘사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변형되면서 사회와 유리된 채 작가의 사생활만을 노골적으로 고백하는 모습을 갖게 된다.” - 다음 사전

 

작가가 대개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어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소설'20세기 초반 수십 년 동안 일본 문학을 지배했던 자연주의 운동에서 생겨났다. 이 용어는 고백소설과 '정신자세' 소설이라는 2가지 유형의 소설을 가리킬 때 쓰이는데, 고백소설은 흔히 자신을 비하하는 장황한 토로가 특징이며, 정신자세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생각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 박현수 <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책세상 

 

직장이나 가정이 없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오직 글쓰기 위해서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 자기를 놓지 않으면 글쓰기란 당초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글쓰기를 일러 '사소설'이라 한다. 심경소설이라든가 자기를 소재로 한 글쓰기와 '사소설'은 이점에 크게 구분된다. '사소설'이란 인공적인 글쓰기라는 것. 그러니까 놀이의 일종이라는 것. 생활=현실과 무관하면 할수록 투명, 순수해진다는 것, 적어도 이런 원칙 위에서 씌어지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당연히도 독자적인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생활이 지닌 가치관과는 별개의 가치관을 가져야 함이 그것이다. 이를 일러 구도 정신으로서의 예술성이라 할 것이다.” - 이태준 <까마귀>(문학과지성사), 작품해설 

 

첫 번째와 두 번째 인용문에 의하면 사소설은 개인의 사생활이나 심경을 쓴 소설이다. 그런데 세 번째 인용문의 <까마귀> 작품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사소설과 심경소설을 명확하게 구분한 후 일본의 사소설을 "구도 정신으로서의 예술성"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사소설과 심경소설의 구분이다보다시피 위 인용문들은 사소설과 심경소설을 한쪽에서는 구분 하지 않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명확하게 구분한다. 그 이유가 뭘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인용문을 소개한다.

 

여기에서부터 예술가 생활이라는 문제, 예술과 실생활과의 상관 관계가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다. 예술가의 경우, 그중에서도 일본의 사소설가와 같은 경우, 예술가 생활의 지속과 가정 생활의 평온과는 종종 일치하지 않는다. 가정의 행복과 기쁨은 예술가의 정열을 조금씩 침체시키고, 가정의 위기라는 희생물에 의해, 비로소 그 예술 충동은 절박감을 획득한다. 사소설이 생의 위기 의식에 모티브를 가지고 있고, 그 위기감이 형이상적인 생의 불안과 고독에서 단절된 구체적인 것으로서 성립된 이상, 그러한 경사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도쿄에서 조촐한 하숙 생활을 시작으로 하여, 그 하숙비를 계속 떼어먹는 데다, 여자를 데려와 동거하고, 그러면서도 남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 생활 불능자, 성격 파산자로서 출발한다. 이미 그들은 출발시점부터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생활 실격자였다. 그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긍지는 예술가로서의 진실성 밖에 없었다. 겨우 그 진실성을 알리바이로 삼으며, 그들은 극빈한 생활도 참고 견디어 냈다.

 

그들은 예술가로서 작품의 리얼리티가 아닌, 제작 태도의 성실성에 매달리는 일 이외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라고 한다면, 그들이 근대소설로서의 예술적 방법 따위는 확립할 틈도 없이, 비참한 일상생활의 단편을 그 파멸적인 모습으로 문학 세계에 들여놓을 수 밖에 도리가 없었음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일상성의 차원과 예술의 차원을 등가로 묶음으로써, 간신히 직업 작가로서의 생활이 성립된다. 그러나, 그런 작가 생활에서도(혹은 그런 작가 생활이기 때문이야말로), 예술가 생활 고유의 이율배반은, 그런 모습을 통째로 보여준다. '소설을 쓸 수 없는 소설가''소설 쓰기에 번민하는 소설가'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 거기서는 현실 처리와 예술 처리의 구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다만 꼬리를 삼키는 뱀의 괴로운 듯 또아리를 튼 모습뿐이다.

 

사소설에서는 어디까지나 예술 처리에 악센트가 나타나고, 거기에 예술지상주의적인 마지막 카타르시스를 희구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심경소설에서는 현실 처리를 위해서 예술 처리를 일단 희생으로 삼아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 이토 세이() <일본 사소설의 이해>( 유은경 역, 소화) /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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